‘구름빵’, ‘정글에서 살아남기’, ‘시크릿 쥬쥬’, ‘또봇-K와 시간탐험대’, ‘뽀로로’… 자녀를 둔 부모라면 한 번쯤은 들어 본 적 있을 인기 가족뮤지컬이다. 이 모든 작품을 연출한 허승민 감독은 한국 가족뮤지컬 최고의 연출가로 손꼽힌다. 뮤지컬 ‘와이? 두 번째 이야기 - 발명도둑을 잡아랏!’의 상연을 준비 중인 허승민 감독을 최근 서울 동소문로의 한 카페에서 만나 가족뮤지컬에 관해 물었다.
15일부터 서울 서빙고로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에서 상연하는 가족뮤지컬 ‘발명도둑을 잡아랏!(이하 발명도둑)’은 6900만 부가 판매된 ‘학습만화 와이(Why)? 발명·발견’이 원작이다. 주요 관객층인 어린이들이 과학과 발명을 더욱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책 내용을 무대 위에 구현했다.
허승민 감독에게 전작들과는 다른 ‘발명도둑’만의 특징을 질문하니 “뮤지컬을 만들며 처음으로 ‘대박’, ‘헐’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는 의외의 대답을 했다. 이전의 작품들은 미취학 아동 대상 뮤지컬이었기 때문에 ‘바보야’라는 단어조차 사용하지 않았다고.
“이번 뮤지컬에서는 요즘 아이들이 사용하는 ‘헐’이나 ‘대박’ 같은 단어가 대사에 쓰였어요. 초등학교 1학년 정도를 기준으로 만들었거든요. 제 아이가 그 또래라서 아이의 언어 습관을 관찰하기도 했습니다. 아이가 없었다면 만들기 어려웠을 거예요.”
허승민 감독이 가족뮤지컬을 만들게 된 것은 아이들의 영향이 크다. 허승민 감독은 슬하에 2남의 자녀를 두고 있다. 아이들은 허 감독의 작품을 모니터링해주고 허 감독에게 영감을 주는 고마운 존재다.
허승민 감독이 가족뮤지컬을 만들게 된 계기는 '잡기'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허 감독이 ‘잡기’라고 표현한 것은 사실 ‘융합 장르’다. 미술 하는 사람들과 함께 퍼포먼스 팀 활동을 하다가 가족뮤지컬 연출을 시작하게 됐다. 관객이 가만히 앉아서 극을 관람하는 성인극과는 다르게 아동을 대상으로 한 극은 관객 참여의 문이 열려 있다는 점도 허 감독에게는 매력으로 작용했다.
“뮤지컬을 만들 때는 늘 객석에 있는 아이들과 함께 극을 진행한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관객을 한 명 한 명 참여시킬 수는 없지만, 뮤지컬을 보고 극장에서 나올 때는 정말 자신이 겪고 즐긴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하는 게 제 몫이죠.”
성인에 비해 집중력이 약한 아이들을 대상으로 극을 만드는 것이 어렵지는 않을까. 이에 대해 허 감독은 “아이들의 집중력이 40분 정도라고 하지만, 나는 이 말을 믿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아이들은 재미없으면 잠시도 앉아있지 않지만, 재미있으면 2시간씩 앉아서 무대에 집중하기도 합니다. 저는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아이들을 앉아 있게 만들어야 하는 일을 하고 있죠.”
허승민 감독의 가족뮤지컬은 창의적인 무대 연출로 아이들의 시선과 마음을 사로잡는다. 허 감독은 이에 대해 “가족극은 텍스트, 음악, 배우를 합쳐 성인극과는 다른 미장센을 보여줄 수 있는 쾌감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발명도둑’에는 드론 카메라가 등장해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허승민 감독은 이런 새로운 시도에 대해 “쉽지만은 않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새로운 시도를 멈추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는 허 감독 자신이 재미없는 것과 반복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아이들에게 예쁜 꽃이 있다고 하면 모이지 않아요. 신기한 벌레가 있다고 해야 꽃 주변으로 모이죠. 그렇게 모이게 한 뒤에는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게 중요합니다. 일단은 재미있는 것을 만들고 그 안에 휴머니즘이나 교육적인 내용을 녹이려고 해요.”
허승민 감독이 의미만큼이나 재미를 중요시하는 이유는 작품을 관람하는 것이 아이들에게 평생의 기억으로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기억은 부모와 함께했을 때 훨씬 강력해 진다고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허 감독은 아이만 공연장에 들어와 공연을 보는 것보다 부모와 함께 즐기기를 권한다.
“아이들이 언젠가는 그 학문 자체에 재미를 느낄 수도 있지만, 그 전까지는 최대한 재미있게 만들어 호기심을 자극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최소한 저의 공연을 보는 아이들은 그랬으면 좋겠어요. 그게 제 작품의 원칙인 셈이죠.”
10년 넘게 가족뮤지컬을 만든 허승민 감독은 “어쩌다 보니 전문가가 돼 버렸다”고 웃음을 지었다. 이어 “과거에 비해 가족극에 대한 시선이 많이 바뀐 것에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아이들의 반응 또한 허 감독에게는 큰 보람이자 기쁨이다. 전문가로서 책임감도 느낀다. 앞으로의 10년을 지난 10년처럼 작업 할 수는 없다는 것이 허 감독의 생각이다.
“국내 가족극은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할 때입니다. 콘텐츠도 더 다양해져야 하고, 작업 환경도 개선돼야 하죠. 그러기 위해서는 시장이 보다 커져야 할 필요성을 느낍니다. 다음 10년을 위해 여러 이론을 세워놨습니다. 이제부터는 그것들을 하나씩 풀어보려고 합니다. 그 첫 번째 시도가 이번 작품 ‘발명도둑을 잡아랏!’이죠.”
인세현 기자 inout@kukinews.com / 사진=박효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