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인터뷰] 배우 심은경이 '걷기왕'에서 고민을 내려놓고 만난 것

[쿠키인터뷰] 배우 심은경이 '걷기왕'에서 고민을 내려놓고 만난 것

기사승인 2016-10-19 10:29:22

[쿠키뉴스=인세현 기자] 배우 심은경은 일탈 경험이 거의 없다. 살면서 행했던 가장 큰 일탈을 묻는 말에 곰곰이 답변을 생각하던 심은경은 “그런 성격이 못 된다”고 털어놨다. 누군가는 이 말을 믿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심은경을 직접 만나 대화하면 ‘그럴 만 하다’라는 생각이 자연스레 든다. 심은경은 걱정이 많다. 일탈에 수반되는 우려가 너무 크고, 그럴 바에야 하지 않는 게 낫다는 것이 그녀의 생각이다.

일탈을 즐기는 대신, 얼마 전 홀로 떠났던 여행에서 많이 걸었다. 도쿄의 지하철을 타고 공원에 가서 한참 산책하고 사람들을 구경했다. 심은경은 “여행을 가서 걷다 보니 걱정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일탈을 통해 스트레스를 푸는 것이 아닌, 일상을 통해 걱정을 내려놓는 배우 심은경을 최근 서울 팔판로의 한 카페에서 만나 ‘걷기왕’이 된 소감을 물었다.

영화 ‘걷기왕’(감독 백승화)은 선천적 멀미증후군을 앓아 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없는 고등학생 만복이 경보를 하기 시작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리는 저예산 영화다. 심은경은 ‘걷기왕’ 시나리오를 읽으며 마지막 장면을 보고 영화 출연을 결심했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 함축된 메시지가 심은경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주인공 만복은 평소 일상적인 캐릭터를 연기해 보고 싶다는 그녀의 소망과도 부합하는 인물이었다.

“‘걷기왕’이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마음에 들어서 출연을 결심했죠. 평소에 평범하고 일상적인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었는데, 만복이라는 캐릭터가 그것과 부합했어요. 과장된 표현도 없었고, 물 흐르듯 그 안에서 표현해 낼 수 있는 것들이 많겠다고 생각했죠.”

‘걷기왕’의 만복이 되기 위해 심은경은 경보의 규칙과 자세부터 차근차근 배웠다. 영화 안에서 경보를 할 때는 과장된 연기를 하기도 했지만, 기본을 알고 있어야 과장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심은경은 그렇게 만복이 되어 어설픈 자세로 열심히 트랙을 걸었다.

“‘경보’하면 사람들이 자세를 중요하게 생각하잖아요. 만복이 경보를 잘하는 설정이 아니라 뛰어나게 잘할 필요는 없었지만, 규칙과 자세를 제대로 익혔죠. 그런 것들을 알고 있어야 못하는 연기도, 과장된 연기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심은경은 자신이 만복과 많이 닮았다는 얘기를 꺼냈다. 멀미하는 것을 제외하면 어딘가 어수룩한 모습이 비슷하다는 것. 함께 출연한 배우들에게도 만복과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만복과 비슷한 것은 성격만이 아니었다. 만복이 영화 안에서 처한 상황도 심은경의 고민과 맞닿아 있었다.

“영화를 보면서 스스로에 대한 고민으로 불안했던 시기가 스쳐 지나갔어요. 그래서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며 진심으로 뭉클했죠. 만복이 저에게 위로를 건네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사실 제가 출연한 작품을 볼 때는 제 연기 위주로 냉정하게 보는 편이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걷기왕’은 제게 남다른 작품이죠. 보면서 눈물을 흘릴 뻔했으니까요.”

심은경을 불안하게 했던 것들은 무엇이었을까. 심은경은 “고민은 연기하는 사람들의 숙명 같다”고 말했다. 한 작품에서 하나를 깨달으면, 그 다음 작품에서 다른 고비가 찾아오고, 다시 혼란이 찾아온다. 이런 과정을 거듭하는 것이 연기자의 길이라는 것. 심은경은 혼란과 깨달음을 반복하며 결국 중요한 것을 찾았다.

“고민으로 혼란스러운 시기가 지나면 불현듯 깨닫는 순간이 찾아와요. 그런 순간들의 반복은 연기하는 사람들의 숙명 같아요. 이 과정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작품에 대해 끝까지 고민하고 진심으로 즐기면서 연기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해요.”

‘걷기왕’은 심은경이 자신의 고민에 관대해졌을 때 만난 작품이다. 많은 것들을 내려놓은 심은경은 고민을 덜고 ‘걷기왕’에 촬영에 임했다. 그렇게 걷다 보니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다. 역할에 빠져들어 행복해하면서 연기하던 배우 심은경을 만나게 된 것.

“이번에는 많은 것을 생각하지 않고, 연기 자체를 즐기면서 촬영했어요. 이 과정에서 제가 잃어버렸던 감정을 다시 찾았죠. ‘걷기왕’은 다시 초심을 찾게 해준 작품이에요.”

inout@kukinews.com / 사진=박효상 기자

인세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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