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이준범 기자] 최근 드라마는 첫 회가 중요하다. 첫 회에서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지 못하면, 시청률 반등의 기회는 잘 찾아오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는 시청률 ‘역주행’ 사례도 어느 순간부터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지금 상황에서 MBC 수목드라마 ‘쇼핑왕 루이’의 사례는 기적에 가깝다. 동시간대 꼴찌에서 1위까지 거침없이 치고 올라갔기 때문이다. 1회에서 시청률 5.6%(닐슨코리아 기준)으로 시작했던 ‘쇼핑왕 루이’는 12회에서 11.0%까지 기록했다. 독주 체제를 갖췄던 SBS 수목드라마 ‘질투의 화신’을 제친 것이라 그 의미는 더 크다.
그 중심에 배우 서인국이 있었다. 지난 25일 서울 삼청로에서 만난 서인국은 초반까지 ‘쇼핑왕 루이’에 대한 시청자들의 기대치가 낮았던 것이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솔직히 ‘쇼핑왕 루이’가 처음에는 주목을 받지 못한 게 사실이에요. 저희도 다 알고 있어요. 기억상실과 재벌 2세, 신데렐라 스토리 같은 소재가 진부하다는 얘기도 많았죠. 하지만 전 이야기의 전개에서 진부하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어요. 에피소드들도 독특한 감성을 갖고 있었고요. 그래서 시청자들이 나중엔 알아주지 않을까 하고 믿었는데, 나중에 많은 분들이 마음을 열어주셔서 기분 좋았어요.”
tvN ‘응답하라 1997’로 배우의 길에 발을 들인 서인국은 조용하게 성장해왔다. SBS ‘주군의 태양’으로 20%를 넘긴 했지만, 자신이 전면에 나선 KBS2 ‘왕의 얼굴’, ‘너를 기억해’ 등의 지상파 드라마 성적은 좋지 못했다. 대신 케이블 채널에선 맹활약했다. tvN ‘고교처세왕’과 OCN ‘38사기동대’에서 원톱 주연을 맡으며 마니아층의 입소문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쇼핑왕 루이’의 성공도 서인국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얘기가 많다. 하지만 서인국은 배우 한 명의 영향력으로 드라마의 흥행이 좌우되진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저 때문에 드라마가 잘됐다는 얘기를 들으면 뿌듯하긴 해요. 칭찬이잖아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절대 드라마의 성공 여부가 가려질 수 없다고 생각해요. 다른 모든 작품도 마찬가지예요. 배우의 영향력도 크지만, 결국 시청자의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매회 시청자들에게 선택 받으려면 그 이상의 노력이 필요하니까요. 가장 중요한 건 현장의 호흡이 어디에서 나오느냐에 달렸다고 생각해요. 제가 누군가와 얘기하는 장면을 찍을 때 그 친구와 얼마나 친밀한지가 드라마에 드러난다고 생각하거든요.”
서인국은 자신이 맡은 루이 역할에 다양한 아이디어를 녹여내며 생동감을 더했다. 신인 오지영 작가가 쓴 대본을 바탕으로 자신의 해석을 디테일하게 덧붙여 서인국만의 루이로 재탄생시킨 것이다. 그 과정에서 감독과 작가, 주변 배우들과 끊임없이 대화를 나눈 건 물론이다.
그가 오랜 기간 연구하고 고민한 결과, 루이는 정서불안으로 손가락을 떨며 복실이(남지현)를 “복실!”이라고 애타게 부르는 캐릭터가 됐다. 김 집사와의 관계를 ‘톰과 제리’처럼 표현하고 싶어 존댓말로 응석을 부리게 된 설정도 그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서인국은 연기하면서 경험한 루이의 세상이 아름다웠다고 털어놨다.
“루이에겐 세상을 아름답게 볼 수 있는 힘이 있었어요. 제가 루이를 부러워한 점도 그거예요. 루이는 뭔가를 함부로 왜곡하거나 비방하지 않아요. 부당한 일을 저지른 사람이 있어도 그를 미워하는 게 아니라, 그 죄만 순수하게 미워하죠. 그런 시선이 부러웠어요. 사실 저희는 누군가가 실수를 반복하면, 그 사람 자체가 미워지잖아요. 저도 그렇고 많은 사람들이 그렇죠. 그런데 루이나 복실에겐 그게 없었어요. 그런 점들이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에게 판타지 같다는 느낌을 줬을 것 같아요. 저도 그 세계 속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서인국은 그 어떤 배우보다 드라마와 캐릭터에 대해 할 말이 많았다. 단순히 루이에 대한 애정 때문만은 아니었다. 연기를 하며 느끼는 즐거움이 인터뷰를 통해 그대로 전해지는 느낌이었다. 서인국 역시 캐릭터를 만들기 시작할 때는 정말 힘들지만, 자신이 만든 캐릭터로 엔딩까지 연기할 때의 느낌이 너무 행복하다고 고백했다.
“제가 아닌 다른 캐릭터로 연기하는 것이 너무 행복해요. 연기를 통해 제가 갖고 있던 것을 발견하게 됐고, 그로 인해서 더 많은 재미를 느끼게 된 것 같아요. 제 능력을 발전시키고 범위가 넓어지는 것이 보이니까 그게 정말 즐거워요. ‘쇼핑왕 루이’에서도 표현에 대해 많이 배웠어요. 루이는 보통 사람들보다 표현의 범위가 더 컸거든요. 제가 생각할 수 있는 표현의 깊이나 범위를 전보다 더 넓혀주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또 인간 서인국으로서 루이를 보며 느낀 아름다운 시각들이 새로운 영역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어주기도 했고요. 내년에 군대를 가려고 검토 중인데 확실한 날짜는 모르겠어요. 잘 다녀와서 또 열심히 활동해야겠죠.”
bluebell@kukinews.com / 사진=박효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