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이준범 기자] 지난 22일 일본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은 한국 영화사에 남을 기록을 한 가지 세웠습니다. 개봉 18일 만에 관객수 300만 명을 돌파한 것이죠. 2004년 개봉한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 갖고 있던 국내에서 개봉된 일본 애니메이션 역대 최다 관객 기록인 301만 명을 넘어선 것입니다. 무려 13년 만에 갈아치운 새로운 기록입니다.
‘너의 이름은.’의 흥행 성적은 놀라울 정도였습니다. 지난 18일 영화 ‘더 킹’에게 자리를 내주기 전까지 ‘너의 이름은.’은 개봉 후 2주 동안 국내 박스오피스 1위를 지켰습니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흥행이 갑작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에서 거둔 성적을 보면 이해가 갑니다. 지난여름 일본에서 개봉한 ‘너의 이름은.’은 관객수 1600만 명을 동원하며 일본 영화 역대 흥행 순위 4위(약 2406억 원)를 기록했을 정도로 대성공을 거뒀습니다. 이미 흥행 폭발력을 갖고 있는 영화였던 것이죠.
‘너의 이름은.’이 남긴 발자취는 또 있습니다. 바로 ‘혼모노(ほんもの)’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진짜’라는 의미의 일본어인 혼모노는 이전에도 종종 쓰였습니다. 하지만 ‘너의 이름은.’의 개봉과 함께 다른 관객에게 피해를 주는 진성 오타쿠, 민폐 관객 등을 지칭하는 부정적인 느낌의 단어로 거듭났습니다.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 정도로만 알고 있던 ‘진짜’ 오타쿠들이 영화를 보러 우리 눈앞에 나타나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일반 관객들의 관람을 방해한 것입니다.
‘너의 이름은.’이 개봉한 이후 일반 관객들의 혼모노 목격담이 줄을 이었습니다. 영화 중간에 등장하는 주제가를 따라 부르는 것은 물론, 다른 관객에게 함께 불러달라고 요청하기까지 했습니다. 상영 시간 내내 영화 속 대사를 혼자 중얼거리며 따라 하고, 영화 시작과 끝 부분에 일어나 박수를 치기도 합니다. 또 극장에서 영화와 콤보로 제공한 팝콘을 버리고 포스터가 그려진 팝콘통만 가져가는 바람에 쓰레기통에 팝콘만 수북이 쌓여있는 모습이 알려지기도 했죠.
흔히 오타쿠라고 불리는 마니아들이 영화를 볼 때 일어나는 에피소드는 외국에도 많습니다. 지난해 중국에서 개봉한 영화 ‘워크래프트’의 경우에도 열성팬들이 영화에 등장하는 종족의 옷을 입고 관람해 화제를 모았습니다. 이들은 호드와 얼라이언스 진영으로 나뉜 설정에 지나치게 몰입한 나머지, 실제로 영화관에서 패싸움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미국에는 영화 ‘스타워즈’와 ‘스타트랙’의 마니아들이 있습니다. 이들 역시 단체로 영화 캐릭터의 복장을 입은 채 소리를 지르거나 박수치며 영화를 관람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죠.
하지만 보통 마니아들이 축제처럼 영화를 감상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일반 관객에게 피해를 끼치지 말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대부분 단체로 상영관을 대여하거나 직접 상영회를 개최하는 경우에만 이렇듯 즐겁게 영화를 감상합니다. 이는 혼모노라고 불리는 일부 마니아들이 다수의 마니아와 일반 관객들에게 비난받는 원인이기도 합니다. 그들의 원하는 대로 관람할 수 있는 때와 장소를 골랐다면,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거나 비난받지 않고도 영화를 마음껏 즐길 수 있었겠죠.
혼모노의 등장과 목격담은 ‘너의 이름은.’을 높게 평가할 근거가 되기도 합니다. 극성 마니아층과 일반 관객들을 동시에 만족시킨 것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화를 즐기는 관객의 범위가 다양해야 한다는 영화 흥행의 조건을 충족시킨 것으로 해석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자신들이 ‘너의 이름은.’을 얼마나 반복해서 관람했는지 자랑하던 혼모노들은 이제 집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집에서 컴퓨터를 켜고 자신들에게 대해 쏟아지는 비판을 확인했다면, 다음에 이들이 다시 영화관을 찾았을 때 더 성숙해진 관람 태도를 보일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