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록이 더해가는 계절의 여왕 5월, 첫날부터 2000만 노동자의 반은 ‘노동절’이라며 자주적으로 쉬었지만, 똑 같은 반은 ‘근로자의 날’이라며 종속적으로 근무를 해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직도 대한민국은 선진국 소리 듣기에 많이 부족한 나라가 아닌가? 참으로 한숨이 나온다. 초석을 바로 놓아야 건물이 바로 서듯이 기본을 지켜야 나라가 바로 서는 것을 모를 리가 없겠지만, 왜 이름을 바꾸고 개념을 왜곡시키는지 그 이유가 궁금하다.
민주공화국이라는 대한민국 헌법에 노동자라는 말이 없다고 한다. 근로자라고 10여회나 있지만 노동자라고는 쓰여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국어사전에 노동(勞動)은 몸을 움직여 일하는 것이고, 근로(勤勞)는 부지런히 일하는 것이다. 그 의미를 새겨보면 노동은 주체적으로 일하는 것이고, 근로는 시키는 대로 부지런히 일한다는 뜻이 있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에도 있던 ‘노동절’을 1963년 3공화국 시절에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근로자의 날’로 바꿨다고 한다. 1989년 May-day 100주년을 맞이하여 민주노총에서 ‘노동절’로 선언했지만, 아직까지 ‘근로자의 날’로 부르고 있다. 대한민국에는 아직까지 종속관계의 근로자만 있을 뿐 자주적인 노동자는 없는 후진 국가인 것이다. 세계 80여개 국가에서 공휴일로 지정된 5월 1일 May-day가, 유독 대한민국에서는 공휴일도 ‘노동절’도 아닌 ‘근로자의 날’이라고 희한하게 부르고 있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민주주의 제도인 노동3권도 보장되지 않고, 약자들의 정당한 권리주장을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 불법으로 몰아 속칭 빨갱이 취급이나 하고 있는 한심한 나라가 된 것이다. 아직 대한민국은 완전한 독립과 완숙한 자유민주국가가 아니다. 분단된 조국과 분열된 국민과 빈부격차가 해소되지 않고 있는 미숙한 국가이다. 근대에 강대국들의 힘에 편승한 사대주의와 현대에 정경유착의 권력에 편승한 황금만능 권위주의에 빠지면서 민족의 얼과 국가의 정의가 흐트러지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다시 한 번 ‘노동자’의 정의를 되새겨보고, 이제는 왜곡된 용어와 역사를 바로잡아나가야 21c의 미래가 밝아진다는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새지 않는다. 평화통일과 4차 산업혁명시대에 접어들면서 과거의 낡은 관념들은 하루빨리 떨쳐버리고, 미래의 새로운 희망을 품어야 한다. 무슨 일이든지 이름부터 잘 못 되면 첫 단추부터 잘 못 꾄 것처럼 모든 것이 삐뚤어져서 못쓰게 되므로, 지금부터라도 ‘노동자’와 ‘노동절’로 정립해야 사회정의가 살아난다.
매년 5윌 1일 May-Day 라는 ‘노동절’은 1886년 5월 1일 미국 시카고에서 8만 명 노동자들이 총파업 하여 하루 8시간 노동을 쟁취한 기념일이다. 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쉬던 원시적인 노동시간을 1일 8시간으로 정하게 된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그로부터 다시 84년이나 지난 1970년 11월 13일 대한민국 서울 청계천에서, 전태일 열사가 1일 8시간 근로기준법을 지키라고 분신을 하였다. 그로부터도 또 35년이나 지난 지금까지도 어찌하여 이 피맺힌 노동자의 이름조차 없다는 말인가?
재삼 사전적 의미로 정리컨대, 노동자란 ‘노동력을 제공하고 얻은 임금으로 생활하는 사람’으로서 고용주와 대등한 위치에서 노동력과 임금을 주고받는 수평적 관계이다. 근로자란 ‘근로에 의한 소득으로 생활하는 사람’으로서 고용주가 시키는 대로 부지런히 일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그러니까 ‘노동절’은 주체적으로 쉴 수 있지만 ‘근로자의 날’은 종속적으로 쉬지 못하는 불평등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법적인 측면으로도 큰 차이가 있다고 한다. 노동자는 광범위하게 일하는 대가로 사는 사람들이지만, 우리나라 근로기준법은 사업장에 고용되어 일하는 사람에게 적용되므로, 노동자라고 해서 모두 다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지 못하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지정된 장소에서 책임 있는 고용주의 지도감독 아래 기본급을 정하여 일하는 경우에만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점점 늘어나고 있는 택배나 화물차기사, 비정규직 등 오히려 노동조건이 더욱 열악한 특수형태 노동자들이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심각성을 통감하고, 노동이란 가치와 노동자란 정의부터 똑바로 세워나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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