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짓 잘하기로 이미 소문 난 ‘이서리’가 교장실 소파에서 의젓하다. 이제 그는 금메달리스트인 것이다. 4일 전북 완주군 고산면 고산초등학교(교장 김지훈). 서리란 이름이 궁금했다.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은 아마 제가 겨울에 태어나서 그럴걸요.” 6학년인 그의 생일은 12월 29일이다. 이서리. 서리는 지난달 25일부터 28일까지 15년 만에 전북에서 열린 전국소년체육대회(제48회) 금메달리스트 명단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전북선수단은 36개 종목이 펼쳐진 대회에서 금메달 32개, 은메달 25개, 동메달 30개 등 모두 87개를 획득해 지난해(67개)보다 좋은 성적을 냈다. 서리가 출전한 체조 종목서 전북은 금메달 두 개를 땄다. 하나는 도마(이서리)에서 또 하나는 안마(임은성·전북체중)에서다. 평행봉(설치현·전북체중)에서는 은메달이 나왔다. 선수층이 얇은 종목으로선 성공적이다.
서리는 3학년 때인 2016년 5월 처음 매트에 섰다. 유니폼이랄 것도 없이 시작한 기계체조지만 구르고 뛰고 텀블링한지 3년 만에 도마 종목서 전국 최고의 자리에 섰다.
서리는 체조 여러 종목 가운데 도마에서만 메달을 땄다. 텀블링 힘으로 도마를 짚은 다음 공중제비를 한 뒤 도마를 등진 채 서야 하는 ‘라운드 훌턴’을 보기 좋게 소화하며 우승했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고전규 감독교사는 서리가 지금은 체력이 조금 부족해서 평행봉이나 링처럼 많은 힘이 필요한 종목은 약하지만, 성장하고 훈련을 열심히 해서 힘이 붙게 되면 훌륭한 선수로 클 재목이라고 말한다. 시키는 것만 하던 서리가 지금은 “이거 해보겠다”며 자율학습에 열중하는 모습에서 장래의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실제 서리는 “자율운동을 좋아한다”고 했다.
웃음도 많아졌단다. 체육중학교에서 훈련을 할 때 중·고교 지도자들로부터 칭찬을 많이 들었기 때문이란다. 학교생활은 즐겁지만 더 큰 자신감을 갖게 된 때문일 것이다. 서리는 체육중에 진학할 예정이다.
그럼에도 서리는 “요리가사 되고 싶다”고 말했다. 맛있는 것을 많이 먹고 싶어서란다. 금메달리스트인 그에게 던진 ‘꿈은?’이란 질문에 돌아 답은 어쩐지 어색했다. 대한민국 올림픽 출전 역사상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처음으로 금메달을 딴 ‘도마의 신’ 양학선을 떠올리며 “5년 후 국제무대에 서서 그런 선배처럼 화려한 기술을 선보이고 싶다”는 말을 기다린 것은 고정된 시각에 불과하다. 의사가 된 뒤에도 올림픽 무대에서 세계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외국 선수들을 떠올린다면, 10년 후 요리사 꿈을 이룬 서리가 주방의 ‘도마’뿐 아니라 체조 ‘도마’까지 정복하도록 용기를 줘야 하는 일은 어른들의 몫이다.
메달에는 수많은 사연과 기록이 숨어 있기 마련이다. 특별한 재능을 갖고 있으면서도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서리는 사실 다문화 가정 어린이다. 아버지 이일수 씨와 어머니 김닥 씨 사이에 형 이두리(고산중 1) 군과 이서리 군이 있다. 그의 외가는 베트남이다.
웃는 모습이 무척 귀여운 서리는 “금메달 소식에 무척 기뻤다. 엄마가 보고 싶었다”고 할 만큼 엄마는 그의 가장 든든한 후견인이다. ‘엄마와 함께 하는 시간, 가족과 여행할 때가 가장 행복한’ 어린이다. 그런 엄마는 체전이 열리고 금메달을 따 온 지금까지 다니러 간 외가에서 돌아오지 않고 있단다.
서리는 엄마를 아마도 더 닮았다고들 말한다. 예쁘게 웃는 모습, 건강한 신체, 빠른 두뇌회전 등. 엄마는 외가인 베트남에서 사범대를 나온 이른 바 배운 사람. 그래서 그런지 연년생인 중학생 형은 여전히 공부를 잘하고, 공부는 좋아하지 않지만 서리 역시 재능이 있는 어린이란다. 서리는 “국어보다 수학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다문화 가정 자녀가 한국어 습득에 애를 먹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듯이 서리도 그런 모양이다.
이역만리에서 15년을 살아 온 엄마는 어쩌면 ‘양1’ 기술로 올림픽서 금메달을 딴 양학선처럼 아들 이서리가 ‘이1’ 기술을 구사해 새로운 ‘도마의 신’에 등극할 날을 고대하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요리사를 꿈 꾸는 서리는 “다치지 않고 메달을 따고 싶다”고 말할 만큼 다치지 않는 것이 우선인 성숙한 금메달리스트다.
이 학교에 체조 육성을 시작하고 지도자와 함께 금메달리스트를 키워 낸 고전규 감독교사는 서리가 베트남 영웅 박항서 축구감독처럼 한국이 키워낸 국제적인 체조 지도자로 성장하길 기대했다.
완주=소인섭 기자 isso2002@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