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연예대상’이 위기라고 했지만, MBC는 인물 구도로 가고 있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지난주 방송된 방송사의 연말 ‘연예대상’ 주인공은 방송인 김구라였습니다. 평소처럼 별 감흥 없이 인상을 쓰고 자리를 지키던 그에게 마이크가 넘겨진 순간, 구태의연한 시상식의 구도가 흥미롭게 바뀌었죠. 28일 ‘SBS 연예대상’에서 지상파 3사의 구색 맞추기를 비판하고 통합 시상식의 필요성을 역설한 그는 29일 ‘MBC 연예대상’에서 "자고 일어나니 스타가 됐다"며 후일담을 전했습니다. 그러던 중 슬쩍 최근 방송가의 흐름을 언급했습니다. MBC 연말 시상식 자리를 의식하며, 다른 방송사에 비해 MBC가 나은 이유로 ‘인물’ 중심 예능이라고 말한 것이죠.
김구라의 진단은 정확합니다. 인물, 하나의 캐릭터가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시대입니다. 지난해에도 다양한 캐릭터가 대중에게 사랑받았습니다. ‘타짜’의 곽철용 신드롬을 비롯해, EBS의 연습생 펭수와 MBC ‘놀면 뭐하니’의 유산슬, JTBC ‘슈가맨 3’가 발굴한 양준일까지. 이들은 특정 프로그램이나 작품에 나온 캐릭터로 기억되지 않습니다. 이젠 캐릭터가 프로그램이나 방송사를 대표할 정도로 영향력이 커졌습니다. TV 화면 밖으로 나와 현실에서 움직이기도 합니다. ‘런닝맨’을 대표해 받은 유재석의 대상과 ‘슈퍼맨이 돌아왔다’ 아빠들의 대상 수상보다, 유산슬과 박나래의 대결 구도를 보여준 ‘MBC 연예대상’이 더 성공적이란 평가를 받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10년 전만 해도 그룹 예능이 인기였습니다. KBS2 ‘1박2일’이나 MBC ‘무한도전’처럼 멤버들의 끈끈한 정이 사랑받았고, 종편 채널을 중심으로 한 수십 명 패널의 ‘떼 토크’가 웃음을 자아냈죠. 하지만 함께 단순히 재미있는 개그맨, 예능인으로 인기를 얻을 수 없게 됐습니다. 새로운 기획과 새로운 캐릭터가 중요해졌을 뿐 아니라, 기존 연예인의 지위를 내려놓는 것이 공감을 사고 있습니다. 신인 트로트 가수에 도전한 유산슬이나 글로벌 스타를 꿈꾸는 연습생 펭수의 공통점이기도 하죠. 최근 팬 미팅을 매진시킨 양준일 역시 가수의 꿈을 접고 미국에서 식당 서빙을 하는 사실이 화제가 되기도 했고요. 일반인 예능이 인기를 얻는 것도 비슷한 이유로 볼 수 있습니다.
이제 캐릭터 인기는 대중의 선택으로 결정됩니다. 시청자와 관객들이 직접 자신이 좋아하는 캐릭터를 결정해 키우고 소비하는 시대가 된 것이죠. 방송사와 제작진의 영향력은 점점 줄어들고 있고요. 2020년엔 어떤 캐릭터가 대중의 사랑을 받게 될까요. 유산슬과 펭수, 양준일의 뒤를 이을 멋지고 신선한 캐릭터 스타를 기다려봅니다.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