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m 간격 무색·출입명부 형식적… 강남·홍대 클럽 코로나19 무방비

1m 간격 무색·출입명부 형식적… 강남·홍대 클럽 코로나19 무방비

[르포] 경쟁적 손님맞이 방역지침 온데간데 집단감염 위험... 이태원 저리가라

기사승인 2020-05-11 00:00:02

지난 2일 경기도 용인에 거주하던 코로나19 확진자가 서울 용산구 이태원 소재 여러 클럽을 방문, 집단감염이 발생했다. 당시 확진자가 방문한 것으로 알려진 킹클럽·트렁크 클럽·클럽 퀸의 출입명부에는 각각 650명, 540명, 320명이 출입했던 것으로 확인돼 향후 피해는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6주넘게 이어지던 고강도 사회적 거리 두기가 종료되고 생활 속 거리두기로의 전환에 앞서 방역당국은 지난달 30일부터 5일까지의 황금연휴 기간 동안 밀접접촉이 예상되는 노래방, 클럽 등의 방문 자제를 거듭 권고했지만, 일탈은 여지없이 발생했던 것이다.   

쿠키뉴스는 30일과 2일 이틀에 걸쳐 유명 클럽이 밀집해 있는 서울 강남과 홍익대학교 일대를 탐문했다. 당시는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으로 유흥업소 등이 영업 시 의무적으로 방역수칙을 준수해야 한다는 행정명령이 발동된 시기였다. 사회적 거리두기 종료를 며칠 남겨둔 강남과 홍대는 술과 음악, 젊은이들로 북적였다. 업소들은 경쟁적으로 손님 유치에 열을 올리는 사이 코로나19 방역은 뒷전으로 밀려나 있었다. 


[쿠키뉴스] 노상우·김양균 기자 = “강남, 홍대, 건대는 코로나19와는 상관없는 지역 아닌가요? 코로나19에 감염돼도 클럽 출입은 어렵지 않다더군요. 입장할 때 전화번호를 받아두긴 하지만 가짜로 적어도 그만이니까요. 동선을 들키지 않으려고 현금으로 결제하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하더라고요. 서울시가 클럽 영업을 막기 위해 행정명령을 내렸을 때에는 근처 술집에는 손님들이 넘쳐났었어요. 확진자가 나오지 않는 것이 신기하다니까요.” 

30일 강남역 인근에서 만난 택시기사가 혀를 차며 말했다. 서울의 대표적 번화가인 강남역 인근은 오가는 행인이 줄어 퍽 한산했지만, 술집과 클럽이 모여 있는 골목에 접어들자 상황은 딴판이었다. 통행이 어려울 정도로 인파로 가득했던 것이다. 모처럼 맞은 황금연휴에 이날 거리에 나온 이들은 들떠 있는 모습이었다. 

‘핫스팟’으로 알려진 술집 앞에는 20대 중후반의 남녀가 길게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술기운이 잔뜩 오른 취객은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하하 호호 웃음을 터뜨렸다. 그들 중 누군가가 외쳤다. “오늘을 추억하자!” 그 사이를 화려한 화장과 옷차림으로 한껏 멋을 낸 이성에게 다가가 말을 거는 개인 인터넷 방송인들이 지나갔다.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보다 그렇지 않은 이들이 더 많았다. 

시계바늘이 오후 11시를 가리키자 유명 클럽 앞은 수십 명의 젊은이들로 만원이었다. 알코올과 분위기에 취한 이들로 줄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길어졌다. 코로나19 예방을 위한 1미터 거리두기는 지켜지지 않았다. 클럽에 들어가려면 두 가지만 갖추면 됐다. 마스크 착용과 신분증만 있으면 출입에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았다. 젊은이 대다수는 클럽에 들어서자마자 마스크를 벗었고, 업소 측의 출입명부는 형식적인 절차일 뿐 연락처의 진위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클럽 바닥은 넘친 술이 엉겨 붙어 끈적거렸다. 내부에 설치된 스피커에서는 쉴 새 없이 요란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현란한 조명이 빙글빙글 돌아가자 환호성과 춤사위도 한층 더해갔다. 두 팔 간격의 건강거리를 유지하라는 코로나19 방역 지침이 애당초 적용이 불가능한 환경이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는 5센티미터나 됐을까. 환기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지하 클럽에서 기자를 포함해 마스크를 쓴 사람은 열 명 남짓이었다. 그러는 사이 클럽으로 사람들은 계속 밀려들어왔다. 클럽 내 손 세정제가 있긴 했지만, 이용하는 사람은 직원밖에 없었다. 자정을 넘어 새벽까지 클럽 앞의 줄은 짧아지지 않았다. 

◇ “여긴 코로나19 없다” 

서울 마포구 홍익대학교 인근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2일 땅거미가 내려앉자 이곳의 네온사인도 하나, 둘 불을 밝혔다. 지하철 6호선 상수역 1번 출구에는 ‘홍대 클럽거리’로 향하는 ‘클러버’의 행렬이 이어졌다. 극동방송을 지나 삼거리에 도착했다면 당신은 홍대 클럽거리를 제대로 찾아온 것이다. 양고기를 굽는 연기가 자욱하다면 비로소 클럽거리 초입에 들어선 것이다. 

이곳에는 십여 개의 클럽이 즐비해 있는데, 클럽들이 문을 여는 시간은 오후 9시30분. 소위 ‘잘 나가는’ 클럽 앞에는 이미 입장을 기다리는 클러버의 줄이 길었다. 5개월 넘게 이어지는 코로나19 유행의 여파에도 끓어오르는 피를 주체 못하는 젊은이들로 클럽은 문전성시를 이뤘다. 클럽 문화에 생경한 기자는 근방을 서너 차례 둘러보고 나서야 이른바 ‘젊은이의 거리’에 적응할 수 있었다. 그 사이 개장 준비를 마친 업소들은 오가는 젊은이들을 손짓했다. 인형 탈을 옆구리에 낀 클럽 직원이 담뱃불을 붙이다 말고 기자에게 말했다. “코로나19요? 에이 여긴 그런 것 없어요.” 

“난 뉴욕에서 왔어. 홍대? 핫하잖아.” 한 손에는 맥주잔, 다른 한 손에는 담배를 쥔 금발의 청년이 담뱃불을 빌리며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고도 곳곳에는 술병을 손에 든 이들이 많았다. 두 평 가량의 술집에는 외국인과 한국인이 살을 맞대고 술판을 벌였다. 그 가운데 잔뜩 흥이 오른 한 외국인이 두 손을 번쩍 들더니 “새러데이 나이트”라고 소리를 질렀다. 옆 자리의 여성이 자신의 얼굴에 튄 침을 닦으며 나무라자 이들은 일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술잔에 조명이 비쳐 일렁였다.

사회적 거리두기에 지친 2030에게 클럽과 술집은 일종의 해방구이다. 이곳에서는 짙은 화장과 피어싱, 과감한 노출도 허용된다. 클럽 음악에 몸을 맞춰 춤을 추고, 알코올의 기운에 기댄 젊은이들로 가득한 토요일 밤. 내일의 불안과 코로나19의 위협일랑 이곳에서는 따분한 이야기에 불과하다. 이윽고 자정이 되자 불야성을 이룬 번화가의 음악소리는 더욱 커지고 ‘헌팅 술집’에서는 술과 이성을 찾으려는 젊은이들의 줄은 더욱 길어졌다. 밤이 깊어질수록 취기와 밤의 흥분은 끝날 줄 몰랐다.    

한편, 당초 정부는 생활 속 거리두기 체계로의 전환 이후 클럽 등 유흥업소와 다중이용시설의 방역을 시민 자율에 맡긴다는 방침이었다. 그러나 이태원 클럽 집단발생을 계기로 우려가 커지자 한달동안 전국 유흥업소의 영업 자제 행정명령을 발동키로 했다. 김강립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1총괄조정관(보건복지부 차관)도 “산발적인 소규모의 집단감염 사례는 앞으로도 상당기간 계속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며 “역학조사 과정에서 방역수칙이 제대로 이행되고 있었는지 등을 지자체 등과 점검해 위반사례는 적절히 조치하겠다”고 말했다. 

현재의 생활방역체계에서 강화된 사회적 거리두기로 재전환은 일평균 환자수 50명과 감염경로를 파악할 수 없는 환자 비율이 5%로 나타나는 경우, 그리고 대규모 집단감염이 발생한 경우에 한 해 검토가 가능하다. 

nswreal@kukinews.com

노상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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