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민수미 기자 =여기 한 남자가 있습니다. 그는 바퀴 네 개 달린 자동차를 보면 허리를 90도로 숙여 인사해야 하는 운명을 타고났습니다. 땀이 비 오듯 쏟아지는 삼복더위, 에어컨 밑에 앉아 온갖 눈치를 봐야 하죠. 아들뻘 청년에게 욕을 들어도 침묵해야 합니다. 손주 나이의 학생이라도 존대해야 하고요. 막말을 들어도 참고, 맞아도 삭여야 하는 기구한 인생, 그의 직업은 경비원입니다.
또 한 명의 경비원이 안타깝게 생을 마감했습니다. 병도 사고도 아닌 ‘갑질’ 때문입니다. 지난 10일 서울 강북구 한 아파트에서 경비원으로 일하던 50대 남성 A씨가 자신의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생전 A씨는 아파트 지상 주차장에 이중 주차해놓은 차량을 옮기려다 차주인 주민 B씨와 시비가 붙었고 이후 B씨의 지속적인 폭행과 폭언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머슴 주제에 말을 안 듣느냐”는 폭언과 코뼈가 부러지도록 가하는 폭행보다 아픈 건 가슴에 박힌 모멸감이었을 겁니다.
기억합니다. 사고로 아들을 잃은 경비원을 전보 조치하라던 전 의원, 근무 조끼를 입지 않았다고 경비원의 멱살을 잡던 노인, 입구 차단봉을 늦게 열었다며 경비원을 때린 한 회사 대표와 고성을 제지하던 경비원의 얼굴을 담뱃불로 지진 남성을 말입니다. 우리는 그때마다 절망하고 공분했지만, 달라진 건 없습니다. 비정규직, 간접고용 계약 사슬에 묶인 약자에게 사회는 여전히 폭력적입니다. 공동주택관리법을 개정해도 경비원들을 보호하기에는 역부족입니다. 현행 경비업법 또한 이들의 울타리가 되어 주지 못합니다.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경비원들을 위해 지금이라도 촘촘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더불어 이들의 인권을 짓밟는 가해자들을 일벌백계해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공개된 고인의 근무환경을 보니 가슴이 아픕니다. 낡은 화장실 변기 위에 놓인 전자레인지와 커피포트. 그가 처해있던 열악한 상황의 축소판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들이 보기에 경비원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경비원은 제 맘대로 켰다 껐다 할 수 있는 스위치 같았다”라는 책 ‘임계장 이야기’ 속 구절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습니다. 출근길에 나선 주민에게 환한 웃음을 짓던 A씨는 이제 없습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자문해 봅시다. A씨의 죽음은 자살입니까, 사회적 타살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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