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최은희 기자 = 만삭인 여성에게 남편 속옷을 정리하거나 집안일을 하라는 등 성차별적인 내용을 게재한 서울시 임신 정보 사이트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서울시는 공식적인 해명 없이 문제가 된 내용 일부만 삭제하며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6일 ‘서울시 임신출산 정보센터’ 사이트에 올라온 임신 말기 행동 요령에 관해 논란이 일었다. 서울시 임신출산 정보센터 사이트는 서울시가 지난 2019년 6월 임산부들을 위한 정보, 민원 처리를 돕기 위해 개설했다.사이트 내 임신 정보를 안내하는 페이지에는 남편을 위해 밑반찬을 구비해야 한다는 내용뿐만 아니라 ‘3일 혹은 7일 정도의 입원 날짜에 맞춰 남편과 아이들이 갈아입을 속옷, 양말, 와이셔츠, 손수건, 겉옷 등 준비하기’, ‘둘째 아이 출산의 경우 갑작스러운 진통이 시작될 때를 대비해 큰아이를 맡아 줄 사람을 미리 물색하기’ 등의 내용이 적혀있다. 생필품 점검과 문단속, 가스 점검 등을 챙기는 것도 임신한 여성의 몫으로 제시했다.
논란이 되는 내용은 또 있다. “결혼 전에 입었던 옷을 걸어 두어 자극을 받으라”는 문구를 포함한 것은 물론, “남편이 돌발적으로 아내를 덮쳐 과도하게 격렬한 성행위를 하면 조산 위험이 커진다”는 언급도 있다.
피임에 대한 책임을 여성에게만 전가시키는 부분도 있었다. 임신 준비 안내 페이지에는 ‘피임하는 데 있어 남성이 얼마나 협조적인가?’라는 문항에 ‘남편이 콘돔 쓰는 걸 싫어하면 콘돔 계속 쓰자고 하기 어렵겠죠?’라는 답변이 달려있다.
해당 내용을 접한 시민들은 “시대착오적 가이드”라며 비판했다. 경기도 용인시에 거주하는 기혼자 김모(25·여)씨는 “비출산을 장려하려는 취지인지 의심될 정도였다”라며 “남편은 돌봐야 할 대상이 아닌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동반자”라고 비판했다.SNS상에서도 비난이 쏟아졌다. 한 네티즌은 “매뉴얼 검수도 제대로 안하고 올린 것 같다”라며 “이게 한 나라의 기관에서 내놓은 정보가 맞는지 의문이다”라고 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이런 구시대적인 발상을 정보라고 올려놓은 꼴이 한심하다”라며 불쾌함을 드러냈다.
논란이 된 이후 시의 태도도 문제다. 시는 논란이 일자 아무런 사과나 설명 없이 문제가 된 내용 일부만 삭제했다. 피임 관련 문항 답변은 여전히 남아있다. 임신·출산 정보센터 사이트에는 항의글이 지속적으로 올라오고 있지만 소관 부서인 서울시 건강증진과 가족건강팀은 전화 착신을 차단해 현재 통화가 어려운 상태다.
한국성폭력상담소 관계자는 “가이드에는 정책 대상자가 실질적으로 필요로 하는 정보가 포함돼야 한다”라며 “공공기관에서 제공한 가이드라인에 가부장적인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담겨있다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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