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최은희 인턴기자 =“제대로 된 관리 없이 방치된 토끼가 죽어가고 있다는 글을 봤는데 사실인가요?”
인천 송도 센트럴파크 내 조성된 인공섬 일명 ‘토끼섬’에서 수많은 토끼가 혹한 속 방치되어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나아가 한국의 동물권 인식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토끼섬을 관리하는 인천시설관리공단 민원 게시판에는 12일 기준 토끼섬과 관련된 백여 건의 민원이 올라왔다. 해당 사육장의 열악한 환경으로 인해 토끼들이 고통받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시민들은 “토끼가 추운 데 밥도 못 먹고 있다” “주변이 물이라서 토끼가 익사하는 경우도 있다”고 항의했다. 이런 민원은 지난 2016년부터 꾸준히 제기된 내용이었다.
지난 8일 정확한 관리 실태 파악을 위해 동물권 단체 토끼보호연대와 인천시설관리공단 측이 해당 현장을 찾은 결과 학대, 방임 정황이 발견됐다.
토끼섬은 육로 없이 사방이 물로 둘러싸인 인공섬으로, 토끼가 살기에 적합하지 않은 지형이다. 사방이 뚫려있어 한파와 무더위를 피할 수 없는 구조였다. 섬을 둘러싼 펜스 높이는 50㎝에 불과해 토끼들이 물가로 넘어갈 위험이 있었다. 토끼들이 머무를 수 있는 공간 역시 작은 움막뿐이었다. 토끼보호연대에 따르면 점검 당일에서야 공원사업단 측이 짚으로 만든 임시 방한막을 치는 모습이 목격됐다.
충분한 먹이 공급에 대한 의문도 제기됐다. 인천관리공단 측은 “매일 2번 먹이와 물을 준다”고 해명했지만 토끼보호연대가 찾은 당일 오후 2시에는 텅 빈 사료와 건초 그릇, 얼어붙어 마실 수 없는 물통만이 발견됐다. 활동가 요청으로 먹이와 물을 추가 공급하자 토끼들은 기다렸다는 듯 일제히 달려들었다.
개체 수 조절을 위한 대비책은 없었다. 토끼보호연대에 따르면 사육장 내에는 18마리의 토끼가 살고 있다. 토끼는 번식력이 강한 동물임에도, 중성화나 암수 분리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개체 수 조절이 안 되면 섬 내 먹이 부족 문제나 질병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사육장 조성 후 8년간 토끼 전문 사육사·수의사 배치 및 예방접종도 없었다.
토끼섬 접근 방법이 위험해 안전사고와 부실한 관리로 이어질 여지도 있었다. 섬은 호수 내 조성돼 배를 타야만 접근할 수 있다. 탑승자가 직접 섬과 육지를 잇는 밧줄을 잡아당겨 진입하는 식이다. 그러나 영하의 날씨를 기록한 지난 8일은 한파로 물길이 얼어 스티로폼으로 만든 임시 뗏목을 타고 이동 해야만 했다. 안전 장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사고가 날 가능성도 높다.
현장 점검 이후, 토끼보호연대는 인천시설공단에 토끼에게 충분한 먹이를 제공하고 쉼터·울타리 높이 등 관리 시설을 보강해 달라고 요청했다. 또 전수 중성화 수술을 통해 개체 수를 제한하면서 궁극적으로는 토끼섬 폐쇄 및 사육장소 이전을 요구했다.
최승희 토끼보호연대 활동가는 “토끼섬은 물로 둘러싸인 외딴 섬에 생명을 전시한 토끼 감옥”이라며 “지금도 수많은 토끼가 어디선가 고통받고 있을 것이다. 오락의 대상으로 동물을 전시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선 먼저 동물권의 인식을 바로잡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송도공원사업단은 “토끼 생활환경이 미흡했던 부분에 대한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라며 "유관기관과 협의하여 개선 사항을 구체적으로 마련하겠다”라고 밝혔다.
지난 2017년 동물보호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사육관리 의무’가 법에 명시됐다. 자기 소유의 반려동물에게 최소한의 사육공간 제공 등 사육관리 의무를 위반해 상해와 질병을 유발하는 경우는 동물 학대에 해당한다. 그러나 동물에게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는 경우만 학대라고 인식하는 경우가 대다수다.이원복 한국동물보호연합 대표는 “한국은 아직 동물권이나 복지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면서 “서식 환경이 제대로 조성되지 않은 인공섬에 동물을 방치하는 것은 반환경적인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혹한·혹사에 동물을 방치하는 것은 동물보호법 제8조에 위배된다”며 “토끼섬 비극은 인간의 욕심이 만들어낸 또 다른 동물 학대”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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