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김동운 기자 = #올해 초 A씨는 축농증이 심해져 수술을 받은 뒤 가입했던 실손보험을 통해 보험금을 청구했다. 하지만 보험사에서는 보험가입 전 축농증 통원치료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며 오히려 고지의무 위반으로 가입했던 실손보험을 해지했다. 이에 A씨는 금융감독원에 민원을 넣었지만 금감원에서는 민원이 몰려 일처리가 늦어진다며 약 두달이 넘도록 답변을 들려주지 않았다.
보험업계는 민원이 많다. 보험이 예·적금처럼 단순한 구조의 상품이 아니고, 실손보험을 비롯해 자동차보험, 종신보험 등 생애주기에 맞춘 상품들도 다양하다. 때문에 사건의 관점이나 약관 해석 등에 따라 다양한 판단이 발생할 수 있다.
실제 지난해 금융감독원에 접수된 금융민원은 9만0334건으로 전년동기 대비 9.9% 증가했다. 이 중 보험 관련 민원이 5만3294건으로 전체의 약 60%를 차지했다. 이 중 생보사에 접수된 민원은 2019년보다 11.8%(4000여건) 증가했고 생보사의 민원 역시 1.9%(500여건) 늘어났다. 이처럼 금감원에 접수되는 민원이 늘어나는 만큼 답변 속도도 늦어지고 있다. 지난 2019년 기준 금감원의 금융민원의 평균 처리기간도 24.8일으로 2018년에 비해 6.6일 증가했다.
이같은 문제들이 계속해서 일어나다 보니 금융감독원이 담당하는 보험 민원 중 ‘비분쟁성 민원’들을 보험협회로 이관하는 내용의 법안이 발의됐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한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금감원이 담당하던 보험업권의 민원을 처리하고 분쟁 자율조정 및 상담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내용을 담은 ‘보험업법 일부개정법률안’(보험업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김 의원은 “금융 민원중 다수를 차지하는 보험관련 민원 및 분쟁을 보다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며 “보험협회가 처리가능한 민원의 범위 및 민원처리 절차에 대해 관계당국이 충분히 검토해 금융소비자의 불만과 불편이 줄어들 수 있을 것”이라고 발의 취지를 밝혔다.
‘고양이에 생선’ 논란…‘비분쟁성 민원’ 처리로 효율성 올린다
이번 보험업법 개정안에 대해 금융소비자단체에서는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다’고 반발하고 있다. 소비자들이 금감원에 민원을 제기하는 이유는 보험사를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를 개선하지 않고 이관하는 것은 소비자보호를 포기한다는 것.
하지만 보험협회에서는 이같은 반발에 대해 오해라는 입장이다. 도입될 보험업법 개정안은 금융소비자와 보험사간 의견차이 및 갈등으로 일어난 ‘분쟁성 민원’의 경우 그대로 금감원에서 처리하되, 단순한 문의사항에 해당하는 ‘비분쟁성 민원’들만 협회에서 처리할 수 있도록 변경한다는 것이주요 골자다.
이미 금융투자협회나 여신금융협회에서는 동일하게 소비자 민원을 처리하거나 업체끼리의 갈등을 조율하는 기능을 맡고 있다. 보험업법 개정안을 통해 민원이 집중되는 금감원의 업무를 협회가 나눠 민원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금감원은 현재 보험업권과 지난 3월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보험 민원의 효율적 처리를 위한 개선방안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협회에서 민원을 처리하기까지는 민원 관리 시스템 개편을 시작으로 민원 관련 금감원 내부규정(민원처리규정, 분쟁조정세칙 등) 개정 등 후속조치가 필요한 만큼 충분한 시간을 거치겠다는 방침이다.
손해보험협회 박승호 소비자보호정책팀장은 “아직 구체화된 것은 아니지만 보험민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보험금 산정 문제나 불완전 판매로 인한 피해 등에 관한 분쟁성 민원은 다루지 않을 예정”이라며 “현재 보험협회에서 이미 운영하고 있는 과실비율에 관한 민원과 보험계약과 관련된 사항들만 담당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보험업법 개정안에는 논의 사항들이 적시되지는 않았지만 시행령의 형태로 금융감독원과 협회의 민원 담당 분야를 정해 구체화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보험업계 낮은 신뢰도 지적…협회 “소비자 신뢰회복 위해 노력할 것”
이같은 협회 차원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단체에서는 의구심을 쉽게 거두지 않는 모양새다. 업계에서는 그간 금융소비자들에게 신뢰를 주지 못했던 만큼 충분히 나올 수 있는 반응이라고 털어놨다. 김한정 의원은 “보험협회에 대한 소비자단체의 오해는 보험협회가 자초한 측면이 있을 것”이라며 “개정안의 취지대로 보험관련 민원 및 분쟁을 보다 신속하게 처리하기 위해서는 보험협회가 소비자 권익보호에 더욱 집중, 소비자의 신뢰를 높여야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에 보험협회에서는 현재 보험산업의 신뢰도가 낮은 만큼 보헙업계의 신뢰도를 끌어올릴 수 있도록 다양한 소비자보호 시스템을 운영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손보협회는 홈페이지 내 ‘손해보험 상담센터’를 운영하면서 손해보험 소비자의 보험 관련 궁금증·불편사항을 해소하고 있다. 특히 손해보험 상담센터의 경우 자동차사고 발생 시 과실비율 관련 민원·분쟁에 대한 상담을 받을 수 있다.
이외에도 보험 소비자보호를 위한 보험범죄예방 사업과 교통사고 예방활동, 숨은 보험금을 찾아주는 ‘내보험 찾아줌’ 서비스 운영을 통해 신뢰도를 꾸준히 올리겠다는 계획이다.
박승호 팀장은 “소비자의 신뢰를 얻지 못하는 산업은 도태될 수 밖에 없다. 금융소비자보호법 시행(금소법)으로 금융회사의 책무가 더욱 높아지는 시기”라며 “협회는 금소법의 강화된 규정을 보험사들이 잘 반영해서 소비자보호를 강화하고, 보험소비자들이 보험산업을 신뢰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이어 “협회에서 민원을 처리하게 된다면 보다 공정하고 중립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프로세스를 마련해서 일부 시민단체 들의 우려가 기우였음을 증명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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