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서울에서 가장 기괴한 장소

[기자수첩] 서울에서 가장 기괴한 장소

기사승인 2021-08-05 07:00:09
성북구 하월곡동 성매매 집결지 ‘미아리텍사스’ 골목길과 ‘보행통로’. 사진=한성주 기자

[쿠키뉴스] 한성주 기자 =지구촌에는 보호할 사람과 방치할 사람을 구분했던 흑역사가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 정책을 통해 시민들을 차별했다. 미국은 짐 크로 법(Jim Crow Laws)으로 불렸던 차별법이 있었다. 두 제도는 인종에 따라 시민들 구분하고 백인 시민의 이권만 보호했다. 백인은 유색인종보다 더 쾌적한 생활공간을 점유했고, 정치·경제적으로 유리한 조건을 보장받았다. 정부는 유색인종의 인권과 복지에 무관심했다.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은 1994년, 짐 크로 법은 1965년 폐지됐다.

이런 법을 시행했던 20세기 사진을 보면 누구나 소름이 돋는다. 인간성의 밑바닥을 고민하게 된다. 청결하고 세련된 모습의 식수대 위에는 ‘백인용’(White), 사용하면 배탈이 날 것 같이 생긴 식수대 위에는 ‘유색인종용’(Colored) 안내판이 붙어있다. 국가의 비윤리성을 체득한 시민들이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인권침해에 동참했다. 백인 시민은 자신들만이 쾌적한 공간과 국가의 보호를 누릴 자격이 있다고 여겼다. 유색인종은 응당 소외되고 방치당할 만한 사람들로 치부됐다.

이런 흑역사 현장 답사를 국내에서도 할 수 있다. 수도권 지하철 4호선을 타고 길음역에서 내려서 돈암1동 주민센터 앞 버스정류장으로 가면 된다. 정류장 벤치 앉으면 정면에 현재진행형 분리 방치의 현장이 펼쳐진다. 성북구 하월곡동의 성매매 집결지 이른바 ‘미아리텍사스’ 골목길 초입, 그 옆으로 나란히 붙어있는 ‘보행통로’가 보인다. 골목길 초입에는 낡고 때가 탄 헝겊 가림막이 있다. 보행통로는 밝은 조명, CCTV, 위급상황에 누를 수 있는 비상벨을 갖췄다. 인터넷 포털사이트가 제공하는 로드뷰 지도에서 이 장소를 검색하면 골목길 초입은 블러 효과로 가려졌고, 보행통로만 보인다.  

20세기 남아공과 미국이 유색인종을 방치했다면, 21세기 우리나라는 성매매 피해 여성을 방치한다. 골목길과 보행통로의 끝은 모두 길음역 10번 출구다. 하지만 성매매 피해자는 골목길로 들어가 범죄 현장에 도착한다. 나머지 시민들은 안전하고 쾌적한 보행통로로 들어가 범죄 현장을 지나친다. 2004년 성매매특별법 시행 이래로 20여년간 성매매는 엄연한 범죄다. 법률은 성매매 업주에게 착취당한 여성을 피해자로 규정하며, 이들의 자활을 도울 책임을 국가에 부여했다. 이 책임이 제대로 이행됐다면 미아리텍사스는 오래 전에 해체되고 성매매 피해 여성들은 모두 구조됐을 것이다. 그 대신 국가는 미아리텍사스 테두리를 따라 담을 치고, 보호받을 자격을 갖춘 시민만을 위한 통로를 뚫었다.

우리나라 시민들도 20세기 백인처럼 국가의 비윤리성을 체득했다. 당연스레 보행통로로 들어가는 이들은 골목길로 들어가는 여성을 방치하는 국가의 폭력에 의문을 품지 않는다. 오히려 ‘자발적 성매매’라는 허상을 굳건히 믿게 됐다. 성매매 피해 여성을 피해자로 인정하지 않으며, 업주와 동일 집단으로 싸잡아 ‘쉽게 돈을 번 범죄자’로 손가락질한다. 성매매특별법조차 성매매 피해 여성에게 비자발성을 추궁하는 조항을 담고 있다. 국제연합(UN) 여성차별 철폐위원회는 전 세계 정부에 ‘성매매에 유입된 여성을 처벌해서는 안 된다’고 권고한다. 

쾌적한 보행통로가 싫어서 제 발로 골목길로 들어갈 여성은 없다. 여성들은 빈곤과 폭력에 노출된 상태로 성매매에 유입된다. 성매매가 합법인 유럽 국가에서도 성매매 종사자 대부분은 저발전국가 출신 이주여성들이다. 성매매가 자의로 이뤄진다면, 업주가 선불금과 사채로 여성의 탈성매매를 방해할 이유가 없다. 성매매가 스스로 선택하는 직업이라면, 다른 직업과 마찬가지로 이직이 자유롭고 일을 할수록 경력이 쌓이며 근로자의 가치가 높아져야 한다. 일각에서는 ‘가난한 남성은 막노동이나 배달을 하는데 가난한 여성은 그보다 편한 성매매를 한다’는 졸렬한 비난도 나온다. 이는 바꿔 말하면 똑같이 빈곤에 시달려도 남성은 여성보다 성매매 유입 위험으로부터 안전하다는 의미다. 성매매는 취약한 환경에 놓인 여성들의 발밑에 파여있는 함정 구덩이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 버젓이 설치된 분리와 방치의 공간에 모두가 생경함을 느껴야 한다. 누군가는 건강하고 안전한 환경에서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16년을 한 번도 방해받지 않고 지나와 번듯한 회사에 들어간다. 어떤 사람은 일찍이 경제적 위기와 학업 중단을 경험하고 성매매에 유입된다. 회사와 미아리텍사스가 오직 개인의 선택에 따른 도착점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성매매 여성들은 방치와 처벌이 아닌, 구조 대상이다.

castleowner@kukinews.com
한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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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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