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이준범 기자 = 악마와 계약이라도 한 걸까요. 배우 김선호가 급격한 상승 곡선을 타기 시작한 건 지난해 10월17일 첫 방송된 tvN ‘스타트업’에 출연한 다음부터였습니다. 드라마는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서비스되며 인기를 모았고, 서브 주인공 한지평 역할을 연기한 김선호는 인생 캐릭터를 얻었다는 극찬을 받았죠. 이후 출연한 tvN ‘갯마을 차차차’도 두 자릿수 시청률과 콘텐츠 영향력 드라마 부문 1위를 차지하며 만족할 만한 성적을 거뒀습니다. CF가 몰려들었고, 영화도 세 편이나 촬영 계획이 잡혔습니다. ‘갯마을 차차차’가 종영한 지난 17일까지, 정확히 1년 동안 분명 김선호에겐 최고의 시간이었습니다.
마법이 풀린 걸까요. 17일 이후 김선호의 민낯이 만천하에 공개됐습니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언급된 ‘K 배우’는 대중이 알고 있던 김선호와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K 배우는 임신한 연인에게 혼인을 빙자하고 위약금을 언급하며 낙태를 종용했습니다. 아이를 지운 후 병원비 200만원을 준 게 전부였고 이후 태도가 달라졌죠. 출연하는 작품과 제작진, 배우들을 비난하고 쉽게 화를 내는 사람이었습니다. 네티즌들은 K 배우를 김선호로 지목하면서도 확신을 갖지 못했습니다. 의혹 보도가 나온 이후에도 김선호와 소속사의 입장만 기다렸죠.
의혹은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20일 오전 김선호는 과거 연인에게 상처를 줬다며 사과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대중들에게 실망감을 줘서 죄송하다는 말도 덧붙였죠. 의혹을 인정한 이후 후폭풍이 뒤따랐습니다. KBS2 ‘1박 2일 시즌4’ 측은 곧바로 김선호의 하차 소식을 전했죠. 출연 예정이던 영화들도 하차 소식을 전하는 등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가 출연하던 광고업계도 대응책을 마련하는 모습입니다.
떠오르던 스타의 몰락은 많은 관심을 불러왔습니다. 대중들은 그동안 알던 배우의 이미지와 실생활이 완전히 달랐다는 점에 충격을 받았지만, 생각해 보면 그동안 배우의 거짓된 이미지를 봤던 것에 불과합니다. 언젠가 드러날, 드러나야 했을 모습을 이제 알게 된 거고요. 중요한 건 피해자가 있다는 사실이겠죠. 김선호는 과거 연인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전해야 할 일입니다. 그의 용기 낸 폭로를 통해 거짓된 삶을 멈출 수 있었으니 감사의 뜻도 전하는 게 좋겠죠. 작품에 엉뚱한 피해를 끼치지 않으려 했는지, 폭로 날짜를 드라마 종영일로 잡기도 했으니까요.
과거 뮤지컬과 연극무대에서 활동하던 김선호는 2017년 KBS2 드라마 ‘김과장’에 조연으로 출연하며 시청자에게 얼굴을 알렸습니다. 당시 드라마 종영 직후 쿠키뉴스 본사를 방문한 김선호는 인터뷰에서 어떻게 열심히 캐릭터를 준비했는지, 자연스러운 연기로 ‘무플’을 받고 싶었던 마음, 자신을 발견해준 감독에 대한 고마움을 털어놨습니다. 당시 32세로 비교적 늦은 나이로 드라마 연기를 시작한 김선호는 그 후 연기력과 스타성을 인정받으며 빠르게 성장세를 탔습니다. 그리고 5년이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했는지, 손에 쥐어진 돈과 명예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 잊는 데 걸린 시간입니다.
이젠 연인이었던 사람에게 깊은 사죄를 할 시간입니다. 그리고 시청자들이 어떤 점에서 실망했는지, 어떻게 사과해야 할지 생각할 시간입니다. 공식 입장을 발표하기까지 이틀이나 걸렸지만, 이젠 천천히 생각해도 됩니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많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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