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자유롭던 현장이 있을까. 배우 한선화에게 티빙 오리지널 ‘술꾼도시여자들’(이하 술도녀)은 온통 처음으로 가득하다. 그룹 시크릿에서 연기자로 전향해 여러 작품을 해온 그지만, ‘술도녀’만큼 개성 강했던 현장은 처음이란다. 이선빈과 에이핑크 정은지 등 또래배우들이 합심해 반짝이는 순간들을 만들어냈다. 아이돌 활동 당시 예능에서 종횡무진 활약하던 경험을 살려 순발력 있는 연기를 펼쳤다.
‘술도녀’에서 한지연을 연기한 한선화를 최근 서울 압구정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극 중 한지연은 ‘예쁜 또라이’로 표현된다. 청순한 외모와 상반된 말괄량이 같은 면이 도드라지는 캐릭터다. 안소희(이선빈), 강지구(정은지) 사이에서 분위기 메이커를 도맡는다. 회사 대표의 부정을 언론에 제보하는 패기도 가졌다. 당찬 면은 한선화와도 닮았다. ‘술도녀’ 촬영을 앞두고 불안해하는 작가에게 성공을 장담한 한선화의 일화가 회자된 바 있다.
“대본을 보자마자 욕심이 났어요. 어둡고 강한 캐릭터를 주로 해온 만큼 한지연이 더 흥미롭게 느껴졌어요. 마음 편히 웃을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막상 작가님을 만나보니 원하시는 톤이 제 생각과 너무 다른 거예요. 고민이 많아졌는데 갑자기 작가님께서 인생이 너무 안 풀린다며 푸념을 하시더라고요. 이상하게, 그 말이 참 자극됐어요. 그래서 술김에 질렀죠. ‘작가님, 성공시켜드릴게요!’라고요. 하하. 잘돼서 정말 다행이에요.”
자신 있게 성공을 장담했던 그지만 걱정이 많았다. 지나치게 밝은 한지연이 강지구, 안소희와 못 섞일까 염려했다. 인물 간 균형을 맞추는 건 ‘술도녀’를 촬영하는 내내 숙제였다. 그의 불안을 잠재운 건 이선빈, 정은지의 믿음이었다. 급속도로 친해진 세 사람은 서로에게 든든한 지원군이 됐다. 이들의 응원을 받으며, 한선화는 확신을 갖고 캐릭터를 만들어갔다.
“(한)지연이는 타고난 센스로 중도를 지키는 친구예요. 촬영하면서 그 부분을 표현하는 데에 주력했어요. 감독님과도 ‘지연이는 밉지 않고 사랑스러워 보여야 한다’고 이야기를 나누곤 했어요. 애드리브도 자유롭게 했죠. 닭발을 머리에 대며 루돌프 사슴코라고 하는 것도, 소개팅 상대에게 입 속을 보여주는 것도, 머리를 턱 밑에 대고 묶는 것도 모두 즉흥적으로 나온 장면이에요. 감독님의 배려 덕분에 다채로운 한지연의 순간들이 탄생할 수 있었어요.”
한선화는 밝으면서도 진중한 한지연을 만들기 위해 자신이 가진 양면성을 녹여냈다. 고민과 애정을 흠뻑 쏟은 덕분일까. 반응은 어느 때보다도 뜨거웠다. 극 초반 입소문을 탔던 한지연의 소개팅 신은 그가 가장 아끼는 장면이다. 시청자에게 한지연을 강렬히 각인시킨 명장면으로도 꼽힌다. 부친상을 당한 안소희를 조용히 다독이는 의젓한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한선화의 재발견’이라는 반응이 이어졌다.
“관심을 받는다는 게 실감 났어요. 주변에서 연락을 정말 많이 받았거든요. 부담도 됐지만, 늘 하던 대로 해야지 싶더라고요. 저는 역할과 관계없이 언제나 온 마음을 다해 연기해왔거든요. 제 연기는 그대로였지만, 한지연을 예쁘게 봐준 분들이 많으셨을 뿐이죠. 이토록 많은 사랑을 받은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을 거예요. 여러 생각 않고 계속 나아가야겠다는 생각이 커요.”
한선화에게 연기란 숙제이자 삶의 동반자다. 그는 “작품을 할 때마다 스트레스와 불안감을 안고 시작한다”고 토로하면서도 “그 힘듦을 이겨내는 게 행복이자 쾌감”이라며 눈을 반짝였다. 불안, 근심, 걱정은 곧 한선화의 성장점이다. “막막하다가도 자극받게 되는 건 연기뿐”이라던 그는 “이러니 연기를 할 수밖에 없다”며 미소 지었다. 연기와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던 그의 눈가엔 어느새 눈물이 맺혔다.
“일상에서 느끼는 여러 감정이 연기할 때 큰 도움이 돼요. 그럴 때마다 배우가 귀한 직업이다 느끼죠. ‘술도녀’는 제가 연예인으로 살며 다져온 순발력이 십분 발휘된 작품이에요. 덕분에 자유롭게 연기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고요. 제가 행복했던 만큼 전국에 계신 수많은 소희, 지구, 지연이도 행복하길 바라요. 열심히 살고 즐기다 보면 소희, 지구, 지연이도 영원히 행복할 거니까요.”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