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이었다. 궁녀의 일대기를 담으면서 왕과의 사랑을 은유적으로 풀어내야 했다. 7개월간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생각시 시절부터 나인, 승은 상궁, 의빈에 이르기까지. 고민을 거듭하며 성덕임의 일생을 그려낸 배우 이세영의 노력은 시청자에게도 통했다. 지난 1일 종영한 MBC ‘옷소매 붉은 끝동’은 그에게 ‘사극 여왕’이라는 수식어를 안기며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최근 화상으로 만난 이세영은 쏟아지는 극찬에 “과분하다”, “칭찬에 걸맞게 더 최선을 다하겠다”, “더 열심히 성장하겠다”는 등 의연한 모습을 보였다. 담담하다가도 드라마 얘기만 나오면 금세 화색이 돌았다.
큰 사랑을 받은 작품이다. 시청률 가뭄인 요즘 시대에 17.4%(닐슨코리아 전국 기준)를 기록했고 MBC 연기대상에서 8관왕에 올랐다. 이세영은 처음 대본을 볼 때부터 드라마가 가진 메시지에 끌렸다. 그동안의 사극과 다르게, ‘옷소매 붉은 끝동’은 궁녀의 마음에 주목한다. ‘왕은 궁녀를 사랑했다. 궁녀는 왕을 사랑했을까.’ 이 물음에 집중하며 작품에 더욱 몰입했다.
“이전에 했던 작품은 ‘주인공이 목표를 이룬다’는 명확한 주제가 있었어요. 하지만 ‘옷소매 붉은 끝동’은 덕임이가 승은을 입는 게 목표가 아니잖아요. 궁녀에서 후궁이 된 여인의 일대기에 사랑 이야기가 더해진 내용이죠. 궁녀가 왕을 사랑했는지를 묻는 메시지에 매력을 느꼈어요. 궁녀의 마음에는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잖아요. 덕임이를 생동감 있게 그리기 위해 대본에 없는 부분을 고심하기도 했어요. 이산의 연적에 물을 채우는 장면도 각각 다르게 표현하려고 감독님과 상의했어요. 코믹한 장면은 진지하게 임하려 했고요.”
이세영은 7개월간 이어진 촬영에 덕임이 보낸 16년을 담았다. 아역배우로 시작해 다양한 역할을 맡아온 그에게도 한 사람의 일생을 표현하는 건 색다른 경험이었다. 변화를 어떻게 보여줄지도 고민했다. 덕임은 생각시로서 동무들과 행복해하며 일에 자부심을 느꼈다면, 나인으로서는 이산이 보위에 오를 때까지 지켜주겠다는 의지를 되새겼다. 후궁이 된 후에는 공허함과 쓸쓸함, 그리움으로 가득한 시간을 보냈다. 이세영은 상황과 감정이 달라지는 순간들을 면밀히 살폈다. 극에 여전히 몰입 중인 그는 엔딩 이야기할 때 눈물도 보였다.
“엔딩이 참 마음에 남아요. 정조가 꿈에서 덕임이를 만난 게 생사기로에 놓인 순간이라 생각했어요. 깨면 다시 현실로 갈 수 있지만 덕임이와 있으면 죽는 거잖아요. 그럼에도 정조는 별당 안에서 덕임이와 함께하는 것을 택해요. 살아서 이루지 못했던 것을 죽은 뒤 평범한 사내와 여인이 된 후에야 이룬 거예요. 아직도 생각하면 눈물이 나요. 사실 16, 17회는 연기를 준비하면서도 정말 많이 울었어요. 감정을 눌러도 어쩔 수가 없더라고요. 잊어야 하는데 그게 언제쯤일지 모르겠어요. 덕임이와 이별하는 순간이 와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려 해요.”
이세영에게 ‘옷소매 붉은 끝동’은 여전히 가슴 속에 깊이 남았다. 티저 포스터에 적힌 ‘순간은 곧 영원이 됐다’는 말을 보고는 결말을 예상했단다. 마지막 회와 5회 엔딩은 특히나 각별하다.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저하를 지켜주겠다’며 산에게 진심을 드러내는 장면이다. 덕임이 죽으며 이산에게 ‘다음 생에서는 모르는 척 옷깃만 스치고 지나가 달라’고 유언을 남기는 장면도 인상 깊었다. 연모하면서도 자유를 갈망하는 덕임의 마음을 표현한 부분이다. 이준호(이산), 이덕화(영조), 장혜진(서상궁), 궁녀 3인방 등 함께한 배우들과의 시간은 진한 추억이 됐다. 이들과 극에서 호흡하며 이세영은 연기 방향성을 잡았다.
“덕임이는 극에서 많은 사람과 접점이 있어요. 궁녀들을 대할 때, 소중한 사람들과 있을 때, 여인으로서 이산을 대할 때, 궁인으로서 정조를 대할 때, 영조를 대할 때, 혜경궁 저하를 뵐 때… 이런 관계마다 발성이나 태도, 말투를 다르게 하려고 신경 썼어요. 상황 속에 녹아 있으려고 노력한 게 가장 컸고요. 돌이켜 볼수록 모든 배우와의 인연이 소중해요. 저희의 호흡부터 재미있는 대본, 감독님 연출 등이 더해져서 좋은 결과로 나온 것 같아요. 정말 기쁜 일이죠.”
이세영은 MBC 연기대상에서 최우수상을 타고 “시청자가 우리를 선택할 수 있도록 잘 연기할 수 있을까 하는 부담과 걱정이 있었다. 시청자들의 시간이 아깝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소감을 남겨 화제가 됐다. 그에게 시청자는 연기하는 이유이자 원동력이다. “좋은 인물과 좋은 내용을 만나 연기를 해도 봐주는 분이 없다면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말을 잇던 이세영은 “선택받고 사랑받을 수 있도록 고민하며 오래 연기하고 싶다”고 염원했다.
“‘옷소매 붉은 끝동’처럼 좋은 결과가 나오면 정말 기쁘지만, 들떠 있으려 하진 않아요. 앞으로 갈 길이 멀고도 험난하잖아요. 이 일을 오래 하고 싶어요. 여러 경험과 도전을 하며 경력을 쌓을 거예요. 아쉬움을 남기고 싶지 않거든요. 늘 시청자분들이 어떤 모습을 보고 싶어 할지 생각하며 연기해요. 새해에는 그동안 제가 보여드리지 않은 모습으로도 인사드리고 싶어요. 앞으로 50년은 더 연기하며 살고 싶거든요. 시청자께 선택받을 수 있게 계속 노력할 거예요.”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