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듀, CES [기자수첩]

아듀, CES [기자수첩]

기사승인 2022-01-09 09:58:39
“slow”

미국 출장 5일째. 시차에서 해방되지 못한 난 밤잠을 설치고 이른 아침 택시에 몸을 실었다. 목에 건 배지를 보더니 기사가 말을 건넨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라스베이거스에서 택시를 하는 그에게 있어 CES는 우리나라 명절과 같다. 전 세계에서 사람이 몰리는 행사라 이동 수요가 잦고, 수입이 그만큼 낫다는 거다. 그런 그가 올해 CES는 ‘느리다’고 평했다. 이전만큼 북적이지 않기 때문이란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참여율이 절반 수준으로 줄어서인데, CES가 처음인 나조차 동의할 정도다.

한적했다. 대기 시간이 ‘T익스프레스’를 기다리는 수준도 못 된다. 입국용 PCR 검사를 하려고 섰던 줄이 오히려 길었다. 볼거리가 많고 회전율이 빠른 대신에 방문객은 적어서다. 올해 2200개사가 참여했다. 기록을 보면 2018년엔 4015개사가 참여했고, 18만4000명이 방문했다. 현지인이 빠르다고 느낄 정도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간다.

CES도 그렇고 미국 자체가 처음인 내게 장소를 찾아가는 건 고달픈 과제였다. 숙소 맞은편엔 층고 낮은 주택이 다닥다닥 붙어있는데, 행사장과 숙소를 이웃 마냥 붙여놓은 건 신의 한 수였다. CES가 처음이면 주변 지리를 파악하고 가는 게 좋다. 코엑스나 킨텍스 규모를 생각했다가 호되게 당했다. 행사장이 넓고 군데군데 퍼져있어서다. 무작정 택시를 잡기 보다는 무료 셔틀을 권한다. 대형 전세버스라 공간도 넓고 이동도 빠르다. 물론 일정이 급하면 어쩔 수 없으나 기본요금이 높고, ‘콜’을 부르지 않으면 정말 잡기 어렵다. 급한 마음에 호텔에서 대기 중인 택시를 잡았는데 요금을 내자 해맑게 팁을 부르던 기사를 잊을 수 없다.

올해 CES는 여러 화두를 남겼다. 그 중 하나는 ‘우주테크’다. 하늘을 동경해 날개를 발명한 인류가 이제는 지구 밖 영역을 도전하는 시대다. 행사 기간 동행한 기자 권유로 ‘시에라 스페이스’ 부스에 들렀다. 우주방위산업체로 요즘 가장 ‘핫’한 기업이다. 재사용이 가능한 우주왕복선 ‘드림 체이서’ 모형을 보며 기술 발전 속도가 어느 궤도에 도달해있는 지 알 수 있었다. ‘드림 체이서’ 동체에 태극마크가 달릴 날이 어서 오길 바라본다. 다른 하나는 ‘푸드테크’다. 유비무환. 식량이 부족해 모두가 배고픔에 시달릴 순간을 준비하는 인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미국에 머물며 인상 깊은 점이 있다. 만나는 누구나 안부를 먼저 묻더라는 점이다. ‘How are you’ ‘How’s it going’을 초면인데도 아무렇지 않게 던진다. 한국으로 치면 ‘밥 먹었니’ 정도일 텐데, 기분을 묻는 건지, 상태를 묻는 건지 가늠이 안 된다. 나 역시 시큰둥하게 ‘good’과 ‘fine’으로 ‘화답’했다가 피곤에 절어있을 땐 ‘찐’ 대답이 나왔다. 화를 낸 건 아니고 ‘Not bad(나쁘지 않아요)’라고 했다. 깊은 한숨과 함께.

딱 봐도 낡아 보이는 중고차가 주위에 흔하다. 라스베이거스가 잘 사는 동네는 아니라는 걸 지인에게서 들었지만, 오래되고 수리도 안 한 채 돌아다니는 차들이 많았다. 번호판을 한 개만 달고 다니고 ‘메이드인 코리아’가 많으며, 평도 좋다는 점. 이날 만난 기사도 한국 차를 칭찬하며 ‘제니시스’를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 또 이곳에선 약이 합법이라고 한다. 실내건, 실외건 흡연자를 심심찮게 보는데 약인지, 담배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현지 문화를 모두 접한 건 아니지만, 이곳이 왜 ‘자유의 국가’라로 불리는지 조금은 알겠다.

송금종 기자 song@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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