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라버니, 덕임이 좀 봐주시어요.” 순수하게 던진 공주의 말은 로맨스의 도화선이 됐다. 세자를 겸사서로 알던 궁녀는 고개를 깊이 숙이다 눈길을 돌린다. 연못에 비친 얼굴을 보고 세자의 정체를 알아챈다. 명장면으로 꼽히는 MBC ‘옷소매 붉은 끝동’ 3회 마지막 장면이다. 극 중 이산(이준호)과 덕임(이세영)의 오작교를 자처한 청연군주의 밝은 모습은 몰아치는 전개 속 쉼표가 됐다. 신예배우 김이온이 노력을 거쳐 만든 결과다.
‘옷소매 붉은 끝동’에서 청연군주를 연기한 김이온을 10일 서울 상암동 쿠키뉴스 사무실에서 만났다. 해사한 얼굴에는 뿌듯함과 만족감이 어려 있었다. 꿈 많은 고3 김이온은 ‘옷소매 붉은 끝동’으로 이상향에 한 발짝 다가섰다. 얼마 전 학교에서 연극 무대를 마쳤다고 이야기하던 그의 얼굴에 또다시 미소가 떠올랐다.
“얼마 전 학교에서 셰익스피어의 ‘겨울 이야기’ 연극 무대에 올랐어요. ‘옷소매 붉은 끝동’과 이 작품을 함께 준비하며 많은 도움을 받았죠. 드라마와 연극을 함께 하면 혼란스럽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기우였어요. 연극은 관객에게 이야기를 전달해야 하잖아요. 발음과 발성을 연습하다 보니 매체 연기에도 좋은 영향을 미치더라고요. 성장하는 기회가 됐어요.”
그가 경험한 두 번째 현장이다. 2020년 짧게 출연한 웹 드라마 ‘아름다웠던 우리에게’로 현장의 맛을 봤다. ‘옷소매 붉은 끝동’은 연기자 생활에 본격적으로 발 들인 작품이다. 드라마가 성공하자 2000명대였던 SNS 팔로워는 1만명 넘게 불어났다. 뜨거운 반응만큼이나 좋은 수확도 얻었다. 선배들의 연기를 직접 보고 배운 경험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순간이다.
“이준호, 이세영 선배님은 열의가 남달랐어요. 그 자체로도 배울 만했죠. 응원과 격려도 많이 해주셔서 감사했어요. 궁녀 4인방과 함께할 땐 많은 대화를 나눴고, 이준호 선배님에게는 많은 배려를 받았어요. 분위기가 워낙 좋아서 촬영 날이 아니어도 현장에 자주 가곤 했어요. 이덕화 선생님은 함께한 장면이 없어도 늘 살갑게 대해주셔서 감사했어요. 정지인 감독님은 대본에 나와 있지 않은 전사(前史)도 상상해서 설명해주셨어요. 좋은 사람들만 모인 좋은 현장에서 좋은 결과까지 낼 수 있어서 정말 기뻐요.”
김이온이 연기한 청연군주는 사람냄새가 가득한 인물이다. 신분 고하와 관계없이 누구나 인간적으로 대한다. 궁녀들과 함께 자수를 놓고 필사를 하는 그의 소탈한 면모에 김이온도 매료됐다. 작품에 들어가기 전부터 캐릭터에 대해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청연군주 이야기가 나오자 김이온은 곧장 자신만의 해석을 풀어놨다.
“청연군주는 궁녀들과도 막역하게 지내요. 예법에 준하는 말투를 쓰지도 않죠. 혼자 이런 생각도 해봤어요. 청연군주가 사도세자 딸인 만큼 영조도 공주만큼은 자유분방하게 자라도록 한 게 아닐까 하고요. 청연군주는 왜 이런 행동을 했을까 늘 고민했어요. 감독님도 많은 도움을 주셨어요. 극에서 덕임이가 반성문을 쓰게 된 걸 알고 청연군주가 놀라는 장면이 나와요. 감독님이 촬영 전에 ‘오라비에게 반성문을 여러 번 써봤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해주셔서 몰입을 더 잘할 수 있었어요. 감독님의 배려 덕에 편하게 연기했어요.”
신인 배우로서는 최고의 환경이다. ‘옷소매 붉은 끝동’으로 김이온은 연기의 매력을 다시금 깨달았다. 연기가 왜 즐겁냐고 묻자 “좋은 결과물을 시청자분들이 좋아해 주고, 그 인물을 공부하며 흥미를 느낄 수 있어 좋다”는 답이 돌아왔다. “만족도를 점수로 매기면 10점 만점에 7점”이라고 말을 잇던 그는 “남은 3점은 앞으로 채워나갈 것”이라며 당찬 포부를 전했다.
“사극도, 공주 역할도 해보고 싶었어요. ‘옷소매 붉은 끝동’으로 그 경험을 할 수 있어 기뻤죠. 앞으로 더 성장할 부분이 많다는 깨달음도 얻었어요. 너무나도 좋은 시작이에요. 이렇게 경험을 쌓아가다 스무살에는 좋은 작품의 주연을 맡고 싶어요. 10년 뒤에는 송혜교, 한지민, 손예진 선배님 같은 배우가 될 거예요. 저 자체가 장르가 되는, 대체 불가한 배우가 되는 게 꿈이거든요. 언젠가는 덕임이 같은 캐릭터도 연기해보고 싶어요. 지금까지 없던,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는 사람이 될 거예요. 그러니까, 저를 꼭 믿고 써주세요.”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