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도전을 거듭하면서 역량을 축적해 왔습니다. 하지만 보건복지부, 산업통상자원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를 비롯해 여러 부처가 분절적으로 산업계를 지원하면서 큰 비효율이 발생했습니다. 대통령 직속의 제약바이오산업위원회가 통합 거버넌스가 되어 산업을 육성해야 합니다”
24일 원희목 한국제약바이오협회(이하 협회) 회장은 신년 간담회에서 정부 주도의 제약바이오산업 지원·육성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여러 부처가 분절적으로 처리하는 규제 및 지원 업무를 하나의 책임 조직이 조율해야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축적한 역량이 글로벌 블록버스터 신약 개발 성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백신·치료제 성과 냈지만… 응용연구 지원 되레 축소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19(이하 코로나19) 확산 이후 민·관 협력이 증가했지만, 아직까지 해외의 상황과 비교하면 우리나라는 정부의 지원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 원 회장의 지적이다.
셀트리온은 코로나19 항체치료제인 ‘렉키로나’를 약 1년 만에 개발하며 ‘국산 신약 32호’를 탄생시켰다. 이후 현재까지 국내는 물론 유럽, 브라질, 인도네시아, 호주 등 해외에서 사용 승인을 받았다. SK바이오사이언스가 개발 중인 코로나19 백신 ‘GBP510’는 연내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들 치료제와 백신의 개발은 정부가 TF를 꾸려 신속·밀착 지원하면서 속도를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성과는 현행 제도 내에서는 지속적으로 나오기 어렵다. 산업육성 정책·재정투자·규제 업무가 각각 다른 부처로 분산돼 있어, 정부와 산업계가 효율적으로 협업하기 어려운 실정이기 때문이다. 기초연구·임상시험·글로벌 진출까지 전주기를 관리하는 주체도 현재로서는 없다. 한가지 사안에 대해 부처 사이에 이견이 발생하거나, 칸막이 규제가 나타나는 현상도 산업계의 애로사항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인력 부족도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로 꼽혔다. 우리나라는 규제기관의 심사 인력이 선진국의 보건의료 규제기관들에 비해 고질적으로 부족하다. 협회에 따르면 미국의 심사인력은 8051명인 반면 우리나라는 228명에 그친다. 기업이 거쳐야 하는 각종 인허가 절차에 대한 행정적 지원과 신속한 처리가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원 회장은 대통령 직속의 제약바이오혁신위원회를 설립, 컨트롤타워로 운영할 것을 촉구했다. 실제로 일본의 경우 이와 유사한 기능을 수행하는 의료연구개발기구(AMED)를 2015년 설립했다. AMED는 일본 정부의 제약바이오분야 컨트롤타워로, 의약품 R&D 관리를 통합하기 위해 각 부처에 배분되어 있던 예산 및 연구관리 업무를 총괄해 관리한다.
원 회장은 “연구개발·정책금융·세제 지원·규제개선·인력양성 등을 포괄하는 제약바이오산업의 중장기 전략을 수립하고, 각 부처 정책을 총괄해 효과적으로 조율하는 대통령 직속의 컨트롤타워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신약 개발의 성공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개발 초기부터 전임상, 임상 자문 및 허가심사를 위한 인력이 대폭 확충되어야 한다”며 “이는 행정안전부와 기획재정부가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머리를 맞대고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강조했다.
5조원대 ‘메가펀드’ 조성… 정부 인력 확충 절실
기업들이 신약 개발에 적극적으로 도전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자본을 조성해야 한다는 제언도 이어졌다. 신약 개발은 10년 이상의 시간과 조단위의 자본이 투입되는 과제다. 특히, 임상 3상을 진행하는 단계에는 몇백억이 소요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 때문에 정부의 지원금을 받더라도 비용을 충당하기 어렵다는 것이 원 회장의 지적이다.
선진국과 비교하면 정부의 제약바이오 산업 지원 범위와 규모도 제한적이다. 협회에 따르면 정부 각 부처(복지부·산업부·과기부)의 올해 연구개발(이하 R&D) 예산 15조7000억원 중 바이오분야는 1조8000억원으로, 11.4%를 차지했다. 미국은 해마다 30%, 벨기에는 40% 수준의 R&D예산을 제약바이오 분야에 투입하는 것과 비교하면 적은 비중이다.
특히, 보건의료 분야 ‘응용연구’에 대한 투자 비중은 축소됐다. 응용연구는 대규모 임상시험과 같이, 신약 개발 과정 가운데 중·후반기에 이뤄지는 연구다. 우리나라의 정부 보건의료 연구개발 사업 중 응용연구 비중은 앞서 2010년 22.5%에서 2019년 15.4%로 감소했다.
이에 원 회장은 5조원 이상의 메가펀드를 조성해 기업들이 신약 개발을 완주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씨드머니를 출자하고, 다양한 민간 자본을 참여시키는 방식으로 펀드 규모를 키우면 제약바이오 기업의 R&D에 충분한 투자가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이다.
원 회장은 “제약바이오산업 강국으로 도약하려면 우리나라 기업도 글로벌 신약의 생산을 대신하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자체적인 블록버스터 신약을 개발해야 한다”며 “국내 기업들이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연구개발 투자를 보다 확대하고, 정부가 유망한 신약 후보물질을 선정해 임상 3상까지 전폭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품질 관리 박차… 원료의약품 자급률 남은 과제
한편, 원 회장은 국내 생산 의약품의 품질을 제고하기 위한 고민도 언급했다. 협회는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 가운데 스마트공장의 경우 50여개사(전공정, 일부 공정 포함)가 운영 중이며, 44개사가 미국 식품의약국(FDA) 의약품 시설등록을 마친 것으로 파악 중이다.
다만 아직까지 QbD 도입률은 10% 수준에 머물고 있다. QbD는 의약품 생산공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성을 사전에 예측하고 체계적으로 대처하는 첨단기술 기반 품질관리시스템으로, 미국과 유럽을 비롯해 국제적으로 통용되고 있다. 협회는 대형 제약사, 신규 품목, 주사제 생산설비를 중심으로 오는 2025년까지 50%, 2030년까지 100%로 QbD도입률을 확대한다는 목표다.
계속해서 하락세를 보이는 원료의약품 자급률을 제고할 대책도 필요하다. 협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원료의약품 자급률은 앞서 2010년대 중반까지는 20~30%로 유지됐다. 하지만 점차 하락해 2019년에는 16.2%를 기록했다. 협회는 원료 및 필수의약품의 자급률 제고를 위해 기술개발, 허가, 생산설비, 약가, 유통, 사용 등 체계적인 종합 지원대책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판단 중이다.
원 회장은 “기술집약적인 생산 인프라를 구축하고, 높은 품질의 제품을 생산할 수 있도록 산업계의 전반적인 체질 개선에 초점을 둘 것”이라며 “지금도 산업계는 품질 개선을 위해 부단 노력 중이지만, 제도적·재정적으로 많은 부분에서 민관협력이 수반되지 않으면 목표를 이루기 어렵다”면서 정부에 적극적인 지원을 요청했다.
이어 원료의약품 자급률과 관련해서는 “결국 가격의 문제가 가장 크다”며 “원료의약품, 백신과 같은 필수적인 의약품이 국내에서 안정적으로 생산될 수 있도록 기업의 개발 동기를 강화하고, 가격을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한성주 기자 castleowner@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