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는 ‘딱지치기’를 하여 게임에 참가할 사람들을 모집하면서 시작된다. 총 456명을 모집하여 ‘1명당 목숨 값 1억씩, 최종 승자가 총 상금 456억’을 딸 수 있는 게임을 벌인다. 게임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달고나’(설탕뽑기), ‘스페셜 게임’, ‘줄다리기’, ‘구슬치기’, ‘징검다리 건너기’의 순서로 진행된다. 게임이 막바지로 치닫자 VIP를 초청, 그들은 이 살인게임을 즐긴다. 결국, 3명이 살아남지만, 새벽(정호연)은 유리 파편에 의한 과다출혈로 정신을 잃고 쓰러진다. 그러자 부상한 새벽을 상우(박해수)가 살해한다. 나머지 두 사람은 최종 대결을 벌이게 되고, 오징어게임을 하던 상우가 자살을 함으로써, 456번인 기훈(이정재)이 최종 승자가 된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1번 게임자로 기훈에게 깐부(내 팀, 짝꿍, 동지를 뜻함)라고 말했던 일남(오영수)가 바로 게임의 설계자라는 사실이다. 게임이 모두 끝나고 기훈과 만난 그는 가진 자와 못가진 자의 공통점은 ‘인생이 재미없다’는 데 있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가진 자는 게임을 즐기고, 못가진 자는 생존을 위해 게임을 해야만 한다. 어떻게 그게 같을 수 있을까?
이러한 잔인한 살인게임을 벌이지만, 무조건 죽이는 것은 아니다. 참가자들이 ‘① 참가자는 임의로 게임을 중단할 수 없다. ② 게임을 거부하는 참가자는 탈락으로 처리한다. ③ 참가자의 과반수가 동의할 경우 게임을 중단할 수 있다’는 규칙에 동의했으며, 게임을 운영하는 측에서도 게임 참가자 과반수가 게임을 중단하고자 했을 때, 실제로 게임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빚쟁이들에게 쫓기며 사회에서 소외되고 쓰레기 같은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은 지옥 같은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다시 게임을 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러한 규정은 희망이 없는 그들의 삶에 오히려 게임(돈)의 유혹에 다시 빠져들어 갈 수밖에 하는 수단에 불과한 것이다. 그나마 위안은 기훈이 새벽과 상우와의 약속을 지켰다는 점인데, 새벽의 동생을 데려와 상우의 어머니에게 거액의 양육비를 주고 맡겼다는 것이다.
이 드라마는 게임을 통하여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자본주의의 극단적인 폐해를 보여준다.
경쟁(競爭)이란 글자에서 競(다툴 경)자의 원형은 ‘겨루다’(compete)는 뜻을 나타내기 위하여, 머리 부분에 辛(죄인을 처벌할 때 쓰던 칼의 일종)이 첨가된 두 사람(아마 죄인으로 추정됨)이 목숨을 걸고 열심히 달리고 있는 모습이다. 따라서 ‘겨루다’ ‘다투다’는 뜻으로 쓰인다. 爭(다툴 쟁․간할 쟁)자는 물건(亅)을 서로 차지하려고 두 사람[손(爫)과 손(彐)]이 서로 잡아당기며 ‘다툰다’는 뜻이다.(全廣鎭, “(생활한자) 競爭(겨를 경, 다툴 쟁)”, 조선일보, 2005. 7.19. 참고) 그러므로 경쟁은 ‘서로 이기려고 다투는 것’을 뜻한다.
이 경쟁은 사람들이 자신이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격려함으로써 더 열심히 노력하게 할 뿐만 아니라 보다 많은 시간을 쏟도록 만든다. 기업들도 더 많은 고객을 유치하고 또 더 많은 이익을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하도록 북돋우는 역할을 한다.…시장에서 경쟁의 정도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가, 소득이 어느 정도인가,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이 얼마인가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기업들은 광고, 새로운 상품 개발, 품질 향상, 가격인하 또는 상품판매 시 서비스 제공 등을 통해 경쟁한다.(전미(全美)경제교육협의회(National Council on Economic Education)가 초등학교 3~4학년 선생님들을 위해 발간한 경제학 강의 안내서, 조선일보, “(경제교과서 엿보기) ‘경쟁’이란?”, 2003. 7. 3. B7면)
나아가 ‘생존경쟁(生存競爭)’은 ‘모든 생물이 자기의 생명을 보전하기 위하여 벌이는 경쟁으로, 그 결과 적자(適者)는 끝까지 살아남고 부적자(不適者)는 도태(淘汰)된다.’ 따라서 건전한 경쟁은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 성장의 원동력이 되지만, 목숨을 건 경쟁의 끝은 파멸에 이르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