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축팬에게 행복했던 일주일

해축팬에게 행복했던 일주일

기사승인 2022-07-17 12:07:49
지난 13일 팀 K리그와 득점 후 세리머니를 펼치는 손흥민.   연합뉴스

2019년 7월 26일. 해외축구팬들은 잊지 못한다. 당시 ‘우리형’이라 불리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이탈리아 세리에A 유벤투스의 일원으로 방한해 팀 K리그와 맞대결 출전을 예고했지만, 90분 내내 벤치만 달구다 그대로 떠난 순간을. ‘우리형’ 호날두에게 ‘날강두’라는 별명이 붙었고, 한국에 있는 수많은 해외축구팬들은 그를 증오하기 시작했다. 유벤투스 구단도 경기장에 제 시간에 도착하지 못했고, 불성실한 인터뷰 등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약 3년 뒤 손흥민의 소속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토트넘 훗스퍼가 방한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토트넘은 2015년 손흥민 영입 후 국내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받는 해외 축구 구단 중 하나다.

해외축구팬들에게 3년 전 트라우마가 떠오르기도 했지만, 해리 케인, 위고 요리스 등 세계적인 축구선수들을 볼 수 있는 기회였고, 한국을 대표하는 손흥민이 있기 때문에 팬들의 걱정도 싹 사라졌다. 초청 경기 티켓은 예매 시작 30분 만에 전석 매진됐다.

토트넘은 이번 방한 일정에서 모범적인 사례를 보여줬다. 성실하게 모든 사전 이벤트에 참석해 팬들의 기대감을 높였고, 팬들과 호흡하는 데 힘썼다.

지난 13일 팀 K리그와 맞대결도 아무 탈 없이 넘어갔다.

경기 당일 아침부터 내린 폭우로 서울 시내 교통이 대혼란을 빚었으나, 토트넘 선수단은 빠르게 움직여 경기 시작 1시간 30분 전에 일찍 도착했다.

‘노쇼’도 없었다. 경기 전날 “모든 선수가 45분씩은 뛰게 하겠다”고 밝혔던 안토니오 콘테 감독은 약속을 지켰다. 전반에는 일부 주축 선수들이 제외됐지만, 후반에 손흥민과 케인 등이 모두 투입됐다. 토트넘 선수단을 고르게 기용해 최대한 많은 선수가 한국 팬들 앞에 뛸 수 있도록 했다.

지난 13일 토트넘전이 끝난 뒤 팬들에게 인사하는 팀 K리그 선수단.   연합뉴스

팀 K리그도 최선을 다했다. 시즌 도중 합류해 혹사 논란과 토트넘에 비해 들러리가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지만, 팬들을 위해 피곤함을 이겨내고 다가갔다. 선수들은 오픈 트레이닝 중에서도 팬 서비스와 미디어와의 인터뷰 등 홍보 활동을 쉬지 않았다. 또 경기에서는 득점을 올리면 게임 피파온라인 단체 세리머니를 패러디 하며 팬들에게 웃음을 안겼다. 

경기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경기 도중 투입된 손흥민과 케인이 각각 2골씩 넣으며 토트넘이 6대 3으로 승리했다. 양 팀 모두 최선을 다한 경기에 모두가 박수를 보냈고, 팬들은 만족해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지난 15일 오픈 트레이닝이 끝난 뒤 태극기를 들고 단체사진을 찍은 세비야 선수단.   쿠팡플레이

팀 K리그와 일정이 끝난 뒤에는 세비야와 2차전이 펼쳐졌다. 세비야도 토트넘에 뭇지 않게 한국에 진심으로 다가갔다.

선수단은 한글 교실을 통해 인사와 자기 소개 등 짧은 한국어를 배우는 시간을 가졌고, 또 공식 응원가를 한국어로 직접 녹음하는 시간을 가졌다. 또 K-POP 댄스 수업에 참가해 배우기도 하고, 마마무의 솔라, 싸이 등을 만남의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이밖에 코칭 스태프는 창덕궁을 찾아 한국의 전통 문화를 체험했다. 

경기 하루 전날 열린 오픈 트레이닝이 끝나고는 곧장 라커룸으로 들어가지 않고, 태극기를 들고 기념 사진을 찍었다. 이후 경기장을 찾은 약 50명이 넘는 팬들에게 일일이 사인을 해주고 사진을 찍었다. 세비야의 진심에 축구팬들의 마음도 살살 녹았다.

팀 K리그와 맞대결이 친선전 성격이 강했다면, 세비야전은 실전을 방불캐했다. 마치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의 경기를 보는 듯 했다. 두 팀 모두 이번에도 ‘노쇼’ 없이 팀의 주축 선수들을 모두 투입했다.

프리 시즌 경기임에도 양 팀은 진심을 다해 경기를 펼쳤다. 선취골을 뽑아내기 위해 거친 몸싸움도 불사하며 주도권 다툼을 펼쳤고, 주심 역시 대부분의 몸싸움을 묵인하면서 경기의 열기는 더욱 뜨거워졌다. 스페인 팀답게 세비야가 볼 점유율을 높이고, 토트넘이 기회가 날 때마다 역습을 이어가는 모양새였다. 

경기는 1대 1로 마무리됐다. 후반 4분 손흥민의 집념의 패스를 받은 케인이 선제골을 기록했지만, 후반 19분 세비야의 이반 라키티치가 환상적인 중거리슛으로 동점을 만들었다. 이후 추가골이 나오지 않았지만 양 팀은 끝까지 뛰며 기립 박수를 끌어냈다.

세비야전이 끝나고 경기장 전역을 돌며 팬들에게 인사한 손흥민.   연합뉴스

양 팀은 경기가 끝난 후에도 팬서비스도 잊지 않았다. 경기가 끝난 직후 양 팀은 감사 메시지가 담긴 현수막을 들고 경기장 전역을 돌아다니며 팬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특히 손흥민은 경기장을 한 바퀴를 돌며 고국 팬들에게 인사를 전했고, 관중들은 “손흥민”을 화답했다.

경기장을 찾은 10만 여명의 팬들에게는 잊지 못할 일주일이 됐다. 3년 전의 아픔을 씻어낸 최고의 일주일이었다.

팀 K리그와 1차전을 방문했던 김민준(32)씨는 “유벤투스와 경기에도 갔었는데, 이번 경기를 보니 정말 토트넘이 열심히 해준 것 같다”라면서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으로 남은 것 같다. 덕분에 나도 재밌게 즐긴 것 같다. 행복한 경기였다”라고 웃음을 지었다.

세비야전을 참석한 이지혜(24)씨는 “마치 챔스 경기를 눈앞에서 본 기분이다. 손흥민이 토트넘 유니폼을 입고 한국에서 하는 경기를 다시 볼 수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정말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라면서 “세비야도 한국에 진심인 모습을 보여줘서 호감이 갔다. 나중에 한국 선수가 세비야에서 응원을 하면 꼭 유니폼을 사도록 하겠다”고 언급했다.

한 축구계 관계자는 “토트넘과 세비야가 방한의 모범 사례를 보여줬다. 팬들과 소통에도 힘을 쏟고, 무더운 날씨임에도 최선을 다해 경기를 뛰었다”라면서 “그들 역시 프리 시즌에 경기력 향상이라는 목적이 있었겠지만, 한국 팬들에게는 그런 경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좋은 기억이 됐을 것이다. 해외축구를 좋아하는 팬들에게는 마치 축제였던 일주일”이라고 말했다. 

김찬홍 기자 kch0949@kukinews.com
김찬홍 기자
kch0949@kukinews.com
김찬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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