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로 밥' 안주니 되레 학교 담을 넘어? 뭐지?

'벌로 밥' 안주니 되레 학교 담을 넘어? 뭐지?

[지리산웰빙팜] 농사꾼 임송의 귀농일기(5)
말썽 피는 학생들에게 벌로 밥을 차려 주었더니...'벌밥' 효과

기사승인 2022-09-01 12:24:48
아내 안명주는 중학교 교사였는데 3년 전에 퇴직했다. 지금은 식품제조회사 웰빙팜의 공동운영자로 일하고 있다. 나는 주로 영업과 관리업무를 하고 아내는 제품 개발, 생산, 배송 등을 총괄한다.

아내는 학교를 그만두기 얼마 전부터 학교에 찾아오는 학부모들이 자기를 교장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고 이야기했었다. 나에게는 그 말이 더는 학교가 자기가 있을 곳이 아닌 것 같다는 말로 들렸다. 그러더니 어느 날 명예퇴직을 신청했다.

'벌밥'. 곤드레나물과 표고버섯이 들어간 나물밥에 다진 고기, 무생채, 달걀, 양념장을 넣고 비벼먹는다. 사진=임송
아내는 천성이 무던하고 성실한 사람이다. 요즘 세상에는 드물게 20여 년간 군소리 없이 시집살이했다. 요즘 들어 가끔 나에게 해 부칠 때 보면 그 시절의 서운함이 묻어나는 것 같기도 하다. 왜 안 그렇겠나. 나는 평소에는 ‘인과응보’다 싶어 이해하려고 하지만 가끔은 인제 와서 왜 저러나 싶을 때도 있다.

우리가 농촌으로 이주하면서 아내는 지방 전근을 신청했다. 공립학교 교사였기에 가능한 일이다. 운이 좋아 차로 약 10분 거리에 있는 중학교로 배정됐다. 이곳에 온 후 아내는 “선생 하는 보람이 있다”라는 말을 자주 했다. 학교 아이들의 가정형편이 좋지 않은 경우가 많아 반쯤은 엄마 역할도 해야 한다고 느끼는 것 같았다.

감자 수확 철에는 감자를 가지고 가서 삶아 먹이기도 하고 흰색 티셔츠에 천연염색을 해서 나눠 입히기도 했다. 서울에서 재즈 뮤지션들을 불러서 재즈공연도 보여주고 서울에서 하는 예술 공연이나 대전의 과학관에 데려가기도 했다. 그 외에도 자기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적극적으로 찾아 묵묵히 해나갔다.

지리산 자락 인월중고등학교 전경. 농촌 인구가 줄어 한 학년에 한 반 밖에 되지 않는다. 중고등학교 모두 합쳐 모두 6반. 한 반 인원수도 10명에서 20명 사이로 들쑥날쑥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는 ‘학생부장’을 해야겠다고 했다. ‘학생부장’이라면 몽둥이 들고 다니면서 말썽 피우는 아이들을 혼내주는 예전의 ‘학주(학생주임)’ 아니던가. 언뜻 아내의 이미지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가 왜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그 자리에 자원했었는지 속 시원하게 말한 적은 없다. 다만, 학생부장이 된 후 진행된 몇 가지 일들을 보면 아내의 속내가 뭐였는지 알 것 같기도 하다.

선생님들이 수업 시간에 떠드는 아이들 때문에 수업하기 힘들다고 하자 아내는 ‘기록노트’라는 것을 만들었다. ‘기록노트’는 그냥 빈 공책이다. 교실에 그것을 비치해 놓고 아이들이 떠들면 거기에 내용을 적으라고 했다. 교사들이 “너희들 떠들면 여기다가 적는다”라고 엄포를 놓자 아이들이 조용해지더란다.

그 노트는 그냥 적는 용도일 뿐이다. 어떤 식으로도 활용되지 않고 학기 말이 되면 그냥 폐기한다. 우리 어렸을 때 반장이 “너희들 떠들면 칠판에 이름 적는다”의 응용이라고나 할까.

‘벌밥’이라는 것도 만들었다. ‘벌밥’은 말 그대로 벌로 밥을 먹는 것이다. 교내에서 말썽을 피운 아이들은 점심시간에 학생부실로 소환된다. 학생부실에 온 아이들은 학생부장이 정성껏 준비한 ‘벌밥’을 먹으면서 심문을 받는다. 조금 이상한 장면이기는 한데 효과는 좋더란다.

아내는 전기밥솥이랑 간단한 음식 재료를 학생부실에 갖다 놓고 실제로 학생부실에 온 아이들에게 나물밥을 해서 먹였다. 그런데 이 따뜻한 밥 한 끼가 마법을 부리더란다. 조금 전까지 싸우 아이들이 같이 밥 먹으면서 화해하기도 하고 선생이 묻지 않아도 숨기던 사실을 술~술~ 불기도 한단다.

인월면소재지 풍경. 시외버스 터미널이 이곳에 있다. 인근 운봉, 아영, 산내 면을 가려면 이곳에서 차를 갈아타야 한다. 뱀사골, 백무동, 칠선계곡 등 지리산 국립공원으로 가는 차들도 이곳을 경유한다.
학교 내에 ‘벌밥’이 맛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말썽 피우지 않은 아이들로부터도 ‘벌밥’을 먹고 싶다는 요청이 쇄도했다. 그 아이들에게도 예약을 받기 시작했는데 보통 2주 정도는 예약이 꽉 차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내는 ‘벌밥’ 시간을 통해 아이들과 친해지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아이들이 유출(?)하는 정보를 수집해서 아이들 속사정을 훤히 꿰뚫게 되었다고 한다.

옆에서 지켜보기에 이 ‘벌밥’은 숨 막히는 학교 분위기에 지친 아이들의 숨구멍 역할을 하는 듯했다. ‘벌밥’을 먹이기 시작한 이후로 학교 내에 소위 말썽이 줄어들었다고 들었다. 아이들이 학교 밖으로 뛰쳐나가는 경우도 훨씬 줄어들고.

재미있는 것은 중간고사 기간이라 ‘벌밥’을 할 수 없게 되자, 아이들이 슬슬 밖으로 나가기 시작하더란다. 재미있지 않은가. 아이들에게 밥 한 끼 해주는 것과 아이들이 학교 담장을 넘는 것 간에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이. 학교는 맨날 이거해라 저거해라 시키기만 하는 곳인데 선생님이 밥을 해주니 아이들도 “이거 뭐지?” 싶었을 법하다.

◇ 임송
중앙대 정외과를 졸업하고 미국 유니버시티 오프 펜실베니아 대학원에서 사회정책학을 공부했다. 1989~2008년 경제기획원, 공정거래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 등에서 공직 생활을 했다. 부이사관으로 퇴직 후 일용직 목수를 거쳐 2010년 지리산(전북 남원시 아영면 갈계리)으로 귀농해 농사를 짓다가 최근 동네에 농산물 가공회사 '웰빙팜'을 설립했다. 

jirisanproduce@daum.net



 

 

 

 

 

 

 

 

 

 

 
전정희 기자
lakaja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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