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차량 부품업체들이 해외 업체의 무분별한 국내 고속철도 시장 진출을 두고 입찰 제도를 개선하는 등 정부의 근본적인 대책 수립을 호소하고 나섰다.
철도차량 부품산업 보호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1일 ‘국내 철도부품산업 발전을 위한 제언’ 호소문을 한국철도공사(코레일)와 SR 등에 전달하고“경쟁을 명분으로 해외 업체의 무분별한 국내 고속차량 사업 입찰을 허용해서는 안된다”며 “정부 차원에서 어떤 정책적 지원이 필요한 지 숙고해 달라”고 밝혔다.
호소문에는 191개 국내 철도차량 부품업체들이 서명에 동참하며 해외 업체의 국내 고속차량 시장 진입 반대 의사를 피력했다.
비대위가 호소문을 발표한 배경에는 스페인 철도차량 제작사인 ‘탈고(TALGO· Tren Articulado Ligero Goicoechea-Oriol)’의 국내 시장 진출이 자리한다. 탈고는 국내 철도차량 제작사인 A사와 컨소시엄을 맺고 9월 7일 입찰공고 예정인 한국철도공사(코레일)가 발주한 136량짜리 ‘동력분산식’ 고속차량 EMU-320 입찰 사업에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부품 업체들은 “코로나19 영향 등 외부변수로 인해 어려운 환경에 처하기도 했지만 최근 들어 발주 물량 회복에 따라 어렵사리 반등의 기회를 잡고, 재도약을 위한 도움닫기를 하고 있었다”면서 “그런데 최근 고속차량 발주 사업의 입찰참가 자격조건이 완화되면서 해외 업체의 국내 시장 진입이 가시화되고 있다. 발주 물량이 해외 업체에 몰릴수록 기술 자립은커녕 해외에 종속이 될 것이고 이는 국내 산업 생태계 붕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해외 업체의 국내 진출이 본격화하면 순수 국산 기술로 고품질의 고속차량을 생산하는 국내 완성차 업체들이 설 자리를 잃게 되고, 이는 영세 사업장이 전체의 96%에 달하는 협력 부품 업체의 생존에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특히 탈고는 동력집중식 고속차량 제작 업체로 코레일이 입찰에서 요구하는 ‘동력분산식’ 고속차량 제작·납품한 실적은 전무한 상태다. 하지만 국내 입찰 시장에 참여하기 위한 자격요소 문턱이 낮아지면서 아무 제재없이 입찰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부품 업체들은 “고속차량 이전에도 기존 일반 전동차 시장에 경쟁 체제가 도입되면서 기술력이나 품질이 아닌 최저가가 우선되는 난데없는 ‘치킨 게임’이 벌어졌다”며 “완성차 제작사들은 저가의 중국산 부품을 사용해 단가를 낮춰 입찰 경쟁에 나서기 시작했고, 국내 부품제작사들은 물량을 확보하지 못해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었다”고 입찰 제도의 폐해를 설명했다.
국내 철도차량 입찰 제도는 응찰가를 가장 낮게 적어낸 업체가 수주하는‘최저가 낙찰제’를 적용하고 있다. 철도업계 안팎에서는 이 제도가 입찰 업체의 기술력이나 과거 납품 실적 등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해 정작 철도를 이용하는 시민 안전과 편의를 살피지 못한다는 논란이 꾸준하게 제기돼 왔다.
부품 업체들은“외산 부품 사용 확대로 인한 국내 부품 시장 침체는 지속적으로 진행돼 왔다”면서 “하지만 정책적인 도움은 고사하고 가격이 높다는 이유로 외면 받는 등 ‘역차별’을 당해왔다”고 덧붙였다.
입찰 가격을 최대한 낮추기 위해 저가 중국산 부품 등이 해외에서 수입되기 시작하면서 국내 부품 업체들이 설 자리가 사라지고, 품질 개선에 대한 유인이 점점 없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관세청의 수출입무역통계에 따르면 한국이 중국으로부터 수입한 철도차량부품 연간 규모는 2015년 1948만3000달러(약 263억원)에서 2021년 7592만5000달러(약 1025억원)로 코로나19 여파로 인한 공급난 등 외부 이슈에도 불구하고 6년 만에 4배 가까이 불어났다.
같은 기간 한국의 對중국 철도차량부품 무역적자는 –1705만6000달러(약 –230억원)에서 –7300만4000달러(약 -985억원)로 늘어나 중국산 부품 의존도가 심화되고 있음을 나타냈다.
아울러 부품 업체들은 국내 고속차량을 ‘오직 기술 자립이라는 일념 하에 정부와 국내 완성차량 제작사 및 부품 제작사들이 약 30여 년간 2조7000억원을 들여 탄생시킨 첨단 기술 집약체’라고도 부연했다.
이어 “기술개발완료부터 상용화까지 막대한 시간과 자본이 투입되는 고속차량의 특수성과 기술력을 국가 핵심 성장 동력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철도부품산업은 우리나라 철도 산업의 근간으로 ‘철도 주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부품제작사가 지속적으로 사업을 영위할 수 있도록 정부가 국내 시장을 보호해 달라”며 “정책 입안 시 철도산업에 종사하는 지자체와 공공기관, 부품제작사, 완성차량 제작사와 사전 공감대를 형성하고 함께 추진한다면 국내 철도산업의 선순환 구조는 빈틈없이 자리 잡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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