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가까이 춤 외길인생을 살던 댄서 트릭스는 6년 전 실의에 빠졌다. 세계 크럼프 대회에 한국 대표로 출전해 우승까지 따냈는데, 알아주는 이가 없어서다. 직접 보도자료를 써 기자 60여명에게 보냈지만 기사는 단 세 건 나왔다. 설상가상, 금전 문제도 그를 덮쳤다. 하루 12시간을 연습에 쏟느라 운영하던 댄스 스튜디오에서 수업 시간을 줄이니 수입이 뚝 떨어졌다. 몸이 부서져라 춤을 춰 번 돈은 한 달에 70만 원. 회의가 몰려왔다. 27일 화상으로 만난 트릭스가 들려준 얘기다.
“드디어 제 커리어(경력)를 인정받는 기분이에요.” 화면 속 트릭스는 이렇게 말하며 뿌듯해했다. 그는 동료들과 함께 Mnet ‘스트릿 맨 파이터’(이하 스맨파)에 출연해 얼굴을 알렸다. 그가 이끈 댄스팀 프라임킹즈는 지난 20일 방송된 5화에서 8개 참가팀 중 가장 먼저 탈락했지만, 인기는 식을 줄 몰랐다. 프라임킹즈가 자체 제작해 유튜브에 공개한 메가 크루 춤 영상은 이틀 만에 조회수 100만 뷰를 돌파했다. 트릭스는 “크럼프 영상으로 이렇게 높은 조회수를 거둔 사례가 거의 없다”며 “작은 역사를 쓴 것 같아 기분 좋다”고 말했다.
프라임킹즈에게 ‘스맨파’는 롤러코스터 같았다. 첫 미션이었던 약자 지목 대결에서 10번 중 9번을 이기며 다른 팀에게 “배틀로는 못 이긴다” “패왕”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이어진 계급 미션에서 쓴 맛을 봤다. 장르 색깔이 워낙 진한데다 즉흥 대결 위주로 경력을 쌓은 까닭에 다른 사람이 만든 안무를 소화하기가 어려웠다. 팀원들의 부상과 건강 문제 등 운도 따르지 않았다. 파이트 저지(심사위원)들은 “총체적 난국”(보아), “걱정했던 약점이 드러나고 있다”(은혁)고 혹평했다.
프라임킹즈는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삼았다. 넉스는 “총체적 난국이라는 평가에 자극받았다”고 돌아봤다. “그전까진 저희가 안일했던 것 같아요. ‘이 정도면 됐다’며 멈추면 안 됐던 거죠. 정신 바짝 차리고 K팝 미션과 탈락 배틀에 임했어요. 마지막 배틀로 기승전결에 마침표를 찍은 것 같아 만족스러워요.” ‘스트릿 우먼 파이터’(이하 스우파)에 출연한 안무가 리헤이의 남자친구로도 유명한 그는 “(리헤이가) 우리의 진심과 절실함을 전달할 수 있게 열심히 하라고 조언해줬다”고 말했다.
분골쇄신하는 자세가 통한 걸까. 프라임킹즈는 마지막 K팝 미션에서 강력한 우승후보인 저스트절크를 상대로 선전했다. 유튜브 조회수는 경쟁팀보다 낮았지만 심사위원 점수에선 상대를 170점이나 앞질렀다. “프라임킹즈답게 나아가는 게 사람들에게 존중받는 길”(넉스)이라며 마음을 다잡은 결과다. 트릭스는 “팀원들의 단결과 노력이 빛을 본 것 같아 뿌듯했다”며 “경쟁 상대였던 다른 팀들에게도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팀원 카운터 역시 “자기 춤에 고집이 있었는데, 다른 팀을 보면서 ‘이렇게 표현할 수 있구나’ 깨달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댄서 팬덤을 만들겠다는 최정남 PD의 포부는 ‘스맨파’의 전신인 ‘스우파’를 통해 현실이 됐다. 트릭스는 “포털사이트에 댄서가 정식 직업으로 등록됐다. 이를 이뤄낸 ‘스우파’ 댄서들에게 존경을 보낸다”고 했다. ‘스우파’가 일군 댄스 토양에서 프라임킹즈도 단단한 지지 기반을 만들었다. 이들은 “보여주고 싶은 무대가 많다. 우리 멋을 알아봐주시는 분들을 위해 스스로를 더 가꿔나가려고 한다”면서 “SBS ‘런닝맨’, tvN ‘유퀴즈 온 더 블럭’, MBC ‘라디오스타’ 등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하고 싶다”고 말했다.
“저를 포함해 팀에 20대 후반, 30대 초반인 댄서들이 많아요. (나이 때문에) 댄서로서 끝에 다다른다고 생각할 때 ‘스맨파’를 만났어요. 경연하면서 우리 가치를 인정받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프라임킹즈는 이제 다시 시작이에요.” (넉스)
“춤을 추면서 살아있음을 느껴요. 제 춤을 보여주고, 관객들에게 환호와 에너지를 받고, 그걸 다시 춤으로 표현하며 느끼는 희열이 엄청나죠. 크럼프는 댄서의 의지, 자유, 투지, 근성, 에너지를 뿜어내는 장르거든요. 감정을 통제하는 대로, 또 통제하지 않는 대로 다양한 매력을 분출하는 춤이에요. ‘스맨파’를 통해 크럼프로 작은 역사를 썼듯 앞으로도 우리만의 역사를 이어가고 싶습니다.”(트릭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