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가을 연예계는 ‘범죄와의 전쟁’을 벌였다. 배우 곽도원과 그룹 빅톤 멤버 허찬이 음주운전을 하다가 경찰에 입건되고, JTBC ‘육자회담’ 등 예능 프로그램에 자주 출연하던 작곡가 겸 사업가 돈스파이크가 마약 투약 혐의로 체포되면서다. 곽도원이 출연한 공익광고는 온라인에서 지워졌고 허찬은 활동을 멈췄다. 돈스파이크가 나왔던 예능 프로그램들도 잇따라 다시보기 서비스가 중단됐다.
대중의 시선은 싸늘하다. 쿠키뉴스가 지난 7일 서울 잠실동 일대에서 만난 시민들의 말을 종합하면 ‘인지도 높은 연예인의 범죄는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의견이 우세했다. 김유진(32)씨는 “범죄를 저지른 연예인들이 쉽게 복귀하는 관행 때문에 사회적 경각심이 느슨해질까 걱정스럽다”면서 “특히 하루가 멀게 마약 사건이 보도되는 요즘엔 관련 범죄자를 더욱 엄격히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하진(23)씨 역시 “자아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청소년들은 연예인에게서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런 만큼 연예인들이 모범적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했다.
자숙 기간으로 불리는 공백기가 너무 짧다는 지적도 나온다. 배우 하정우는 2019년 프로포폴을 불법 투약한 혐의가 드러나자 활동을 멈췄다가 지난 9월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수리남’으로 복귀했다. 래퍼 비아이는 과거 지인을 통해 마약을 구입하고 이를 일부 투약한 혐의로 지난해 기소됐으나, 법원 판결이 나오기도 전에 음악 활동을 재개해 질타 받았다. 필로폰 투약 혐의로 구속 기소된 가수 겸 배우 박유천은 연예계에서 은퇴하겠다고 밝혔다가 1년여 만에 입장을 뒤집었다. 이후 일본 등 해외에서 팬미팅을 열다가 이달 개봉하는 영화 ‘악에 바쳐’(감독 김시우)로 한국 활동도 다시 시작한다.
원유현(23)씨는 “범죄를 저지른 연예인들의 자숙 기간이 짧다고 느낀다. 음주운전처럼 사람 목숨이 걸린 사건엔 더 예민하게 반응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20대 청년 임모씨와 김모씨는 “(전과 연예인들이) 1년 정도 짧게 쉬다가 돌아오는 느낌”이라며 “많은 사람들 앞에 서는 직업인만큼 자숙 기간이 더 길어야 한다”고 말했다. “아예 복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많았다.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의 2019년 조사에서 응답자 504명 중 78.3%가 ‘범죄 전과자를 방송에서 퇴출하는 데 찬성한다’고 답했다. 같은 해 오영환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마약·도박·음주운전·성범죄를 저질러 금고형 이상을 선고받은 연예인의 방송 출연을 금지하는 법안을 대표 발의하기도 했다.
연예인들이 활동하는 창구가 다양해지면서 전과 연예인의 활동 복귀가 쉬워진 점도 논란을 불렀다. 그룹 S.E.S. 멤버 슈는 해외 상습 도박 혐의로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아 KBS와 MBC에서 출연 정지를 당했다. 하지만 TV조선 프로그램 ‘스타다큐 마이웨이’와 온라인 방송으로 활동을 재개했다. 방송인 김생민은 과거 성추행 의혹이 뒤늦게 불거진 2018년 “잘못된 행동을 했다”며 방송가에서 자취를 감췄으나, 1년5개월 만에 팟캐스트를 시작했다. 김유진씨는 “각 방송사가 전과 연예인을 일정 기간 출연시키지 않는 것처럼, 연예계가 중범죄를 저지른 연예인들에게 복귀 제한을 걸었으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제재는 과하다는 의견도 있다. 40대 박소영씨는 “이미 법적 처벌을 받은 연예인에 대해 자숙이 충분하다거나 부족하다고 말하는 게 적절한지 모르겠다”면서 “대중이 전과 연예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해당 연예인의 복귀작 또한 자연스레 외면 받지 않겠나”라고 반문했다. 이모(35)씨 역시 “방송사나 제작사 등이 출연을 금지시킨 게 아니라면 복귀 못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면서도 “그러나 범죄를 저질렀던 유명인이 활동을 재개한다고 하면 반성한다는 말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된다”고 했다. 손모(32)씨는 “누구나 잘못된 판단을 할 수 있다. 상습 범죄가 아니고 충분히 반성하면 한 번 정도는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