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경 작가가 ‘작은 아씨들’에서 못 다한 이야기 [처돌인터뷰]

정서경 작가가 ‘작은 아씨들’에서 못 다한 이야기 [처돌인터뷰]

기사승인 2022-10-21 06:00:28
tvN ‘작은 아씨들’ 포스터. tvN

처돌인터뷰는 과몰입 상태를 빠져나오지 못한 기자가 작품을 보며 궁금했던 것들을 묻는 쿠키뉴스의 코너입니다. 누군가는 말했습니다. 드라마는 끝나고부터가 진정한 시작이라고요. 가장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나아간 세 자매의 이야기를 그린 tvN ‘작은 아씨들’. 드라마는 막을 내렸지만 여운은 여전합니다.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캐릭터들을 비롯한 드라마의 뒷이야기를 정서경 작가에게 직접 들어보세요.


Q. 12회에서 인혜(박지후)와 효린(전채은)은 인주(김고은), 인경(남지현), 도일(위하준)과 700억원을 나눠 갖습니다. 이들이 돈을 어떻게 사용할지, 인경은 100억원을 받을지에 대해 여러 의견이 나왔어요.

“하하, 저도 궁금해요. 사실 700억원을 얻는 결말을 쓰기에 앞서 사람들이 불편해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어요. 범죄에 얽힌 부도덕한 느낌을 줄 수 있어서 TV로 방영하기 조심스럽겠다는 피드백을 받았거든요. 자문 변호사님께 드라마 속 700억원을 법대로 처리하면 어떻게 될지 여쭤봤더니, 비자금이어서 세금도 떼고 관련자도 처벌받지만 결국 돈은 원령산업과 난초협회로 돌아가는 거래요. 그게 합법적일지라도, 정서적으로는 맞지 않는 결말이라 생각했어요. 자매들이 이 돈을 어떻게 할지 생각하다 마지막 장면에 상상 여지를 남겨두기로 했어요.”

‘작은 아씨들’ 세 자매 스틸컷. tvN

Q. 꼿꼿한 인경은 인주가 20억원으로 아파트를 산다고 할 때 이를 전면에서 비난해요. 인경의 모습을 보고 일부 시청자들은 비현실적인 인물이라는 평을 내놓기도 했어요.

“예상 밖이었어요. 사실 인경에게 불호 의견을 보인 분들이 많을 거라곤 생각 못했거든요. 인경의 반응은 굉장히 전형적이잖아요. 현실에서 갑자기 20억원이 생기고, 비자금으로 700억원을 더 얻을 수 있다고 하면 다들 인경이처럼 행동하지 않을까요? 보통은 큰돈 앞에서 두려움이 앞서고 나와 가족의 안위를 걱정할 것 같아요. 하지만 이번 반응을 보니 드라마는 조금 더 과감하게 표현해도 되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Q. 사랑이 버겁던 인혜는 언니들을 냉소적으로 대해요. 

“인혜는 사춘기 소녀의 삐뚤어진 모습과 명확하게 자신을 인식하는 모습을 담아 만든 캐릭터예요. 언니들에게 자신의 독립을 선포하는 대사를 많이 넣으려 했죠. 극 중 ‘언니들에겐 배울 게 없다’는 인혜의 대사를 두고 여러 반응이 나온 걸로 알아요. 조금은 돌려 말할 걸 그랬나 싶어 반성도 되더라고요. 하지만 굳이 그렇게 쓴 이유는, 이렇게까지 말하지 않으면 독립할 수 없다는 인혜의 심정을 표현하기 위해서였어요. 한편으로는 내가 이렇게 말해도 언니들은 날 사랑할 거란 믿음을 보여주는 대목이에요.”

Q. 인혜와 효린을 보며 영화 ‘아가씨’(감독 박찬욱)의 히데코-숙희가 떠오른단 반응이 많았어요.

“보시는 분들이 인혜와 효린이를 보고 히데코와 숙희의 탈출 장면을 떠올렸으면 했어요. 그래서 인혜와 효린이가 후쿠오카로 떠날 때 비행기가 아닌 배를 타게 했죠. 하하. 인혜와 효린이는 아마 핀란드 오두막에서 잘 살고 있지 않을까 싶어요.”

‘작은 아씨들’ 스틸컷. tvN

Q. 도일과 인주의 ‘썸’에 대해서도 반응이 뜨거웠어요. 도일이 정말로 인주를 사랑하는 건지 많은 추측이 오갔죠.

“도일은 인주를 사랑했어요. 자신의 의지만으로 사랑하게 된 첫 사람이 인주일 거예요. 삶을 누군가와 함께해야 한다면 인주를 생각하지 않을까요.”

Q. 돈만 보고 달려가던 도일이 인주를 배신하지 않고 끝내 사랑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처음부터 인주에게 매력을 느꼈을 것 같아요. 도일은 자신을 위해 일을 했을 뿐인데 인주는 친절하다고 하잖아요. 자신에게 그런 반응이 돌아온 건 처음이지 않았을까요? 인주의 순수한 기대에 부응해야겠단 생각이 점점 들었을 거예요. 하지만 드라마를 쓰는 입장에선 도일을 끝까지 의심해서 마음 놓지 못하게 하고 싶었어요. 11회 재판 장면까지 긴장감을 가져가려 했지만, 시청자들은 이미 도일이를 믿고 계시더라고요. 인주의 돈이 사라져도 도일이를 계속 믿어주시는 거예요. 감독님은 시청자가 실망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말이에요. 하하.”

Q. 도일을 비롯해 도일의 아버지 희재와 어머니의 복수를 위해 달려가던 화영 등 많은 인물들이 인주에게 무른 모습을 보여요. 주변을 무장해제시키는 인주의 힘은 무엇일까요.

“극 중에도 나왔지만, 인주의 최대 매력은 잘 믿는다는 거예요. 인주를 도와주는 사람이 유독 많아요. 인주가 누군가를 믿으면 그 믿음에 자연스럽게 부응하고 싶을 것 같아요. 도일이 이제껏 사람을 믿지 못한 건 사람들이 자신을 신뢰하지 않아서예요. 누군가가 기대면 받쳐주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잖아요. 그게 인주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 이유라 생각해요.”

‘작은 아씨들’ 스틸컷. tvN

Q. 푸른 난초는 미스터리 장르와 판타지를 오가게 한 매개체로 작용했어요.

“푸른 난초는 극 중 인물들이 죽음이나 사건을 수월히 받아들이게 하는 매개로 사용하려 했어요. 처음에는 정란회를 결속시키는 상징으로 생각했죠. 정란회 사람들이 베트남에서 살아 돌아온 건 생명력과 우연, 행운 덕분이에요. 하지만 그들은 그 순간에 발견한 푸른 난초 때문이라고 믿잖아요. 고국으로 돌아와서 보이지 않는 전쟁을 치르면서도 ‘푸른 난초가 있으니 우리는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죠. 새 사람을 들일 때도 네가 더 강해질 수 있다며 푸른 난초를 내밀고요. 이 같은 묘사를 통해 시청자에게도 정란회가 강력하고 사악하다는 인식이 심어지길 바랐어요. 하지만 6회에서 난초의 환각효과가 부각되면서 ‘난초가 사람을 어떻게 조종하냐’는 반응이 나온 건 다소 부담됐죠. 현실과 환상의 비율을 6:4 정도로 가져가려 했는데, 난초로 인해 균형감이 조금은 흔들린 것 같아요.”

Q. 세세한 연출이 많았던 드라마로 알고 있어요. 일례로, 극 중 원상아를 연기한 엄지원에겐 싱가포르에선 노란 원피스를 입는 등 의상 색깔을 직접 지정했을 정도였죠. 극 말미엔 푸른 옷을 입은 원상아가 스스로 푸른 난초가 된 것처럼 보였어요.

“김희원 감독님과 류성희 미술감독님이 신경 쓴 부분 같아요. ‘작은 아씨들’에선 돈의 의미가 계속 달라져요. 푸른 난초 역시 처음에는 죽음, 이후에는 욕망, 말미에는 한 개인의 원한으로 변해가죠. 상아 역시 사악하고 강력한 집단의 그림자 속에 놓였다가 자신이 푸른 난초로 변한 듯한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Q. 원상아는 기존 작품에서 볼 수 없던 새로운 악역상을 제시한 것 같아요. 여성 악인이 모성애나 복수심이 아닌 다른 이유로 악행을 벌이는 게 신선했죠.

“원상아는 플롯의 빈 부분으로 만든 캐릭터예요. 큰 생각 없이 쉽게 써 내려간 인물이거든요. ‘작은 아씨들’은 가난한 자매가 위로 올라가려는 이야기와 부를 쌓은 한 가족이 최상층에서 떨어지는 두 이야기로 진행돼요. 원상아는 최상층 권력의 정점이면서도 그림자에 갇혀있죠. 사람들을 제 멋대로 부리고 싶지만, 그에게 부여된 역할이 제한돼 있잖아요. 억제된 감정이 곪아 터진 거라 생각했어요. 저는 악역을 고안할 때 인간의 본질적인 마음에서 자기중심적인 면을 극대화한 모습을 떠올리거든요. 엄지원 님이 잘 표현해줘서 감사했어요. 마음대로 되지 않아 삐뚤어진 어린애 같은 상아의 모습과 그가 느껴왔을 좌절감을 잘 이해해주셨어요.”

‘작은 아씨들’ 스틸컷. tvN

Q. 박재상은 배우 엄기준의 전작 SBS ‘펜트하우스’의 주단태 이미지를 잘 활용했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모두가 박재상을 주단태 같은 악인이라 생각했지만, 실은 지독한 사랑꾼이었죠.

“그래서 엄기준 님이 기존에 갖고 있던 이미지가 좋았어요. 초반엔 박재상을 자세히 묘사하지 않고 그저 권력을 가진 악독한 모습만 보여줬어요. 그래도 시청자분들이 박재상에 많은 관심을 보여주시더라고요. 엄기준 님이 주단태 같다는 반응에도 흔들리지 않고 연기해준 덕에 11회에서 보여준 박재상의 반전이 더 크게 가닿은 것 같아 좋았어요. 스태프 사이에서도 10, 11회를 보고 울었다는 반응이 많았어요. 우리 모두 다 인형일 뿐이라는 동질감을 줘서 더 서글프게 느껴진 캐릭터 같아요.”

Q. ‘작은 아씨들’은 과감한 카메라 구도와 섬세한 연출로도 주목받았어요. 일례로, 원상아가 오인주를 내려 보는 장면에선 카메라 각도가 뒤틀리며 서로를 마주 보는 느낌을 줬죠. 방송을 보며 특히나 감탄한 장면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김희원 감독님은 의미로 가득 찬 화려함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분이에요. 카메라 움직임을 단순한 시선 끌기로 쓰지 않아요. 권력 구도 등 여러 의미를 담아 플롯을 표현하는 장치로 활용하죠.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한 장면은 1회에서 인주가 라커 속 20억원을 발견하는 대목이에요. 시나리오에는 단순히 ‘인주가 라커에서 돈을 발견하고 여러 감정에 휩싸여 눈물을 터뜨린다’고 적었어요. 연출된 화면을 보니 생각보다 인주 감정이 잘 드러나서 좋았어요. 돈 앞에서 삶을 고백하는 고해성사를 보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방송 후 감독님에게 ‘인주와 돈만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 같았다, 어떻게 찍었냐’고 물어보니 그냥 멋있을 것 같아서 찍으셨대요. 본능적으로 연출을 잘하시는 분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Q. 12부작이지만 굉장히 빠른 속도감으로 진행됐어요. 후반부로 치달을수록 ‘이걸 3~4회 안에 마칠 수 있겠냐’는 반응이 나왔을 정도예요. 하지만 결말까지 완벽하게 마무리했죠. 

“이야기는 처음이 힘들지 뒤로 갈수록 쉬워져요. 시작 단계엔 무한대의 가능성이 놓여 있잖아요. 그러다 사건이 발생하며 가능성이 점차 축소되죠. 9회에서 새로운 무대를 제시한 덕에 10~12회는 어렵지 않았어요. 시청자분들이 만족했을지는 모르겠으나, 스스로는 정해진 길로 잘 나아갔다는 느낌이에요. 사실, 8회를 마치자 드라마가 끝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8부작이었으면 조금 더 자신감 있게 썼겠단 생각도 들더라고요. 영화는 계획 없이 써도 괜찮지만 드라마는 계획이 필요한 것 같아요. 물론, 그래도 계획 없이 썼지만요. 하하. 쓰기 편한 건 8부작이지만, ‘작은 아씨들’을 써보니 이제는 12부작도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
김예슬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