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향 “15년 만에 만난 아니타, 더 깊어졌다” [쿠키인터뷰]

김소향 “15년 만에 만난 아니타, 더 깊어졌다” [쿠키인터뷰]

기사승인 2022-12-21 09:00:02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서 아니타를 연기하는 배우 김소향. 쇼노트

부푼 꿈을 안고 이주한 미국에서 연인이 살해당했다. 범인은 죽은 연인의 여동생과 달콤한 밀어를 나누던 사내. 사랑하는 이를 잃은 여자는 무너진다. 범인을 감싸려는 연인의 여동생에게 원망을 쏟아내기도 한다. 그러나 여자는 분노에 압도되지 않는다. 연인의 여동생이 사랑과 자유를 찾을 수 있도록 돕는다. 지난달 17일 서울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개막한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속 아니타의 이야기다.

배우 김소향이 시간을 달려 아니타로 돌아왔다. 2007년 공연 이후 무려 15년 만이다. 한 배우가 이렇게 긴 시간을 건너 같은 역할을 맡는 일은 공연계에서 흔치 않다. 최근 서울 흥인동 한 카페에서 만난 김소향은 “15년 전 아니타를 처음 연기할 땐 마냥 섹시하게 표현하려고만 했다”면서 “지금은 아니타가 가진 카리스마와 내면의 힘을 보여주려 한다. 그의 감정 변화가 전보다 깊게 와닿아서 표현도 부드러워진 것 같다”고 말했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영국 극작가 셰익스피어의 걸작 ‘로미오와 줄리엣’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뉴욕 서부지역 빈민가를 배경으로 원수처럼 으르렁대는 두 갱단 소속 남녀의 비극적 사랑을 그린다. 폴란드계 백인 청년 갱단 제트 출신 토니와 남미 푸에르토리코 이민자 청년 갱단 샤크 리더의 여동생 마리아가 주인공이다. 아니타는 샤크를 이끄는 베르나르도의 연인이다. 베르나르도가 토니 손에 죽고 깊은 절망에 빠지지만, 용서와 사랑을 잃지 않는 인물이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공연 장면. 쇼노트

김소향은 “아니타를 연기하고픈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오디션을 볼 생각은 없었다”고 했다. 공연 제작사가 젊은 배우를 찾는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불혹을 넘긴 그는 ‘내려놓는 법을 배울 때’라며 아니타를 포기하다시피 했다. 이런 김소향을 무대로 부른 이는 김문정 음악감독이었다. 그는 “감독님 제안으로 오디션을 봐서 공연에 합류했다”면서 “분량이 많지 않아도 갈등의 중심에 선 인물이라 아니타를 다시 만나고 싶었다. 제작진도 아니타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영혼을 보여주는 캐릭터라며 용기를 줬다”고 돌아봤다.

20년 넘게 무대를 누비며 30개 이상의 작품에 출연한 김소향에게도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쉽지 않은 작품이다. 노래와 연기는 물론, 모던 발레부터 라틴 댄스까지 다양한 춤을 소화해야 해서다. 매일 발레를 하며 아침을 열고, 하루 10시간씩 춤 연습을 하면서 공연을 준비했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발바닥은 새카매지기 일쑤였지만 김소향은 “늘 즐거웠다”고 했다. 동료 배우들과 주고받는 에너지, 캐릭터를 향한 애정이 그의 원동력이었다. 요즘 그는 공연 전 스페인어로 ‘그리타’(Gritar·소리 질러), ‘바모스’(Vamos·가자)라고 외친다. 동료들의 에너지를 채우는 그만의 마법 주문이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엔 주요 춤 장면이 세 번 있어요. 에너지가 중요해서 배우들은 지쳐도 지친 티를 내면 안 되죠. 제가 선배인 만큼 앞장서서 사기를 북돋으려고 해요. ‘아메리카’(America)를 부를 땐 정말 신이 나요. 원작에선 남자 배우와 여자 배우가 함께 등장하지만, 이번 프로덕션은 여자 배우들끼리만 꾸며요. 우먼 프라이드를 보여주자는 제작진 아이디어였어요.”

김소향. 쇼노트

새 삶을 꿈꾸며 미국으로 정착한 아니타처럼, 김소향도 도전에 도전을 거듭하며 연기 인생을 채웠다. 2001년 뮤지컬 ‘가스펠’로 데뷔한 그는 10년 만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브로드웨이 문을 두드렸다. “칼을 뽑았으니 무라도 썰자”는 마음으로 수백 번 오디션을 본 끝에 2013년 현지에서 뮤지컬 ‘미스 사이공’의 지지 역할을 따냈다. 이듬해 한국에 돌아와 뮤지컬 ‘모차르트!’와 ‘마타하리’ 등 대작에 출연하고, 미국 활동에도 꾸준히 도전했다. 2017년엔 뮤지컬 ‘시스터액트’에서 견습 수녀 로버트로 브로드웨이 무대에 다시 올랐다. 백인 배우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배역을 동양인 최초로 손에 넣었다.

그는 “미국에서 수도 없이 오디션에 낙방하며 내가 얼마나 뮤지컬을 사랑하는지 깨달았다”고 했다. 그가 공연마다 아낌없이 자신을 쏟아내는 것도 이때 경험 때문이라고 한다. 강산이 두 번 변하고도 남을 시간을 무대에서 보냈지만 김소향은 “연기가 지겨운 순간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자신했다. 어느덧 중견 배우가 된 그는 창작 뮤지컬을 선보이는 데도 열심이다. 최근 일본으로 라이선스를 수출한 뮤지컬 ‘마리 퀴리’를 비롯해 ‘프리다’ ‘안나, 차이코프스키’ ‘스모크’ 등 공연 규모를 가리지 않고 창작 뮤지컬에 헌신했다. 그는 “공연을 준비할 땐 힘들어도 작품이 호응을 얻으면 자식이 잘 되는 기분이 든다”고 했다.

“20대 땐 욕심이 컸어요. 감사함을 몰랐고 주변을 돌볼 여유도 없었죠. 그만큼 치열하게 살기도 했어요. 그렇게 질풍노도의 시간을 보낸 덕분에 지금 제가 있는 것 같아요. 제 공연을 본 관객들에게 ‘무대에서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최선을 다하는 배우’로 기억되고 싶어요. 때론 벅찬 일을 만나 헐떡댈지도 몰라요. 하지만 그런 경험마저도 저를 성장시키리라고 믿습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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