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고 나서야 이제 조금은 알 것 같아.” 스무 살 나이로 2002년 데뷔한 가수 별은 지난 11일 낸 정규 6집 수록곡 ‘나이’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인생에서 단맛과 쓴맛을 모두 본 자의 달관이 느껴진다. 음반 발매를 앞두고 5일 서울 서교동 한 카페에서 만난 별은 “‘나이’ 가사 한 줄 한 줄이 모두 내 얘기”라며 “화려했던 과거의 나는 어디로 갔을까 상념에 빠지기다가도, 나를 보며 웃는 아이들과 내 곁에 있는 남편 덕분에 지금 내가 빛날 수 있는 것 같다”고 털어놨다.
별은 6집에 실은 노래 10곡 중 ‘나이’ 등 4곡 가사를 직접 썼다. “내가 노래할 때 / 나를 보던 아빠의 두 눈 가득 / 담겨 있던 사랑”(‘노래’), “누가 알아주길 바라지도 않아 / 그렇다고 그냥 혼자 있고 싶진 않아”(‘이런 밤’) 등 구절마다 지난 세월이 스친다. 별은 이번 음반을 만들려고 데모곡을 1000개 넘게 받았다고 한다. 그룹 브라운아이드소울 멤버 영준, 밴드 공일오비 멤버 정석원 등 베테랑 음악인도 힘을 보탰다. 별은 영준이 만든 ‘오후’와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출신 싱어송라이터 박희수가 쓴 ‘유아’(You’re)를 타이틀곡으로 골랐다.
5집 ‘프라이머리’(Primary) 이후 14년 만에 내는 정규음반. 그 사이 별은 방송인 하하와 결혼해 세 남매의 엄마가 됐다. 음악보단 육아가 먼저였다. 별은 “음악 활동이 저조해 20년 차 가수라고 명함 내밀기가 민망했다”고 털어놨다. 특히 팬들에게 미안해 “시간을 초 단위로 쪼개”가며 6집을 만들었다. 그는 데뷔 20주년을 기념해 지난해 음반을 선보이려고 했지만, 막내딸이 갈랑-발레 증후군을 진단받아 일정을 미뤘다. 별은 “지금은 아팠던 게 꿈인가 싶을 정도로 완쾌했다”고 귀띔했다.
갈증이 컸던 만큼 별은 ‘컴백에 진심’이었다. 하루 12시간을 녹음실에서 보냈다. “쥐잡듯이 녹음해 엔지니어가 내게 질렸을 것”이라고 할 정도다. 가족도 힘을 줬다. 하하는 ‘오후’를 듣자마자 ‘사람들이 기다리는 별의 음악’라고 응원했다고 한다. 큰아들에게 ‘(고음이) 터져줘야 한다’는 훈수도 들었다. ‘12월32일’ ‘안부’ 등을 히트시켜 발라드 가수로 이름을 떨쳤지만, 별은 “고정된 이미지에 머무르고 싶진 않다”고 했다. “제가 부르고 싶은 음악과 대중이 원하는 음악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게 늘 숙제예요. 이번 음반은 옛 모습을 그리워한 팬들과 새로운 모습을 기대하는 팬들 모두 만족스러워할 거예요.”
음반은 ‘별의 궤적’이라는 제목(Startrail)처럼 별이 보내온 20년 세월을 압축해 들려준다. 마지막 곡 ‘그때의 난’은 별이 별에게 보내는 위로가. 그는 “데뷔하자마자 아버지가 아프셨다. 그땐 주저앉거나 비틀거리면 안 된다는 생각에 스스로 채찍질을 많이 했다”고 돌아봤다. 20대 초반 청년은 자신이 아픈 줄도 몰랐다. 별은 “자려고 누우면 천장이 내게 내려오는 것 같았다. 그땐 몰랐는데 공황장애와 비슷한 증세였다”며 “어린 내가 가여웠다. 미안하고 딱하고…. 그때의 나와 나처럼 질풍노도를 보내는 이들을 위로하고 싶은 마음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별은 가수이자 아내, 엄마로 사는 지금이 소중하다고 했다. ‘나이’ 가사에 “다시 그때로 돌아간대도 나는 이 삶을 선택하겠어”라는 구절을 쓴 것도 그래서다. 별은 “남편이 이 가사를 듣더니 무척 수줍어했다”며 웃었다. 별의 귀환이 감격스럽기는 팬들도 마찬가지. 음반 사이트와 유튜브 댓글창은 별의 노래를 들으며 청춘을 보낸 이들의 사랑방이 됐다. “고등학생 때 별 노래를 들으며 야간 자율 학습했던 기억이 새록새록”(멜론 high***), “싸이월드 배경음악으로 별 언니 노래를 몇 곡이나 깔았는지 몰라요”(유튜브 YH*) 등 추억담이 오간다.
“오래오래 노래하며 여가수의 생명력이 짧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젊은 팬들과도 계속 호흡하면서요. 저도 어느덧 동생·후배에게 위로를 줄 나이가 됐잖아요. 저는 지금도 고군분투하며 살지만, 누군가는 저를 보며 도전할 용기를 얻도록 열심히 해보려고요.”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