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정읍시에 조선시대 마지막 어진화사(임금의 어진을 그린 화가) 석지 채용신(1850∼1941년)이 그린 초상화 4점이 기탁됐다.
정읍시는 전주에 거주하는 항일 운동가 김직술의 후손인 김대수씨와 정읍시 신태인읍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정성섭씨가 채용신 화가가 그린 초상화 각 2점씩을 시에 기탁했다고 15일 밝혔다.
김대수씨가 기탁한 작품은 1911년에 그린 김직술(1850~1920)⋅김환규 부자(父子)의 초상화다.
김씨는 “집안의 자랑이지만 더 나은 환경에서 보존해 많은 이들이 보고 기억하는 것이 문화재의 가치를 높이고, 조상을 오래도록 기리는 길이라고 생각해 기탁했다”고 밝혔다.
시 관계자는 “채용신이 그린 부자 초상화는 현전하는 예가 많지 않은데다 보존상태가 양호해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며 “1910년대 채용신의 전성기 작품으로, 당시 태인 고현내(지금의 칠보)에 있던 김직술 집에 머물면서 그린 초상화는 채용신과 정읍의 역사적 인연을 알려주는 대표 유물”이라고 평가했다.
고현내 출신 김직술은 정읍이 낳은 대표적 항일(抗日)운동가로 1889년 동몽교관의 관직을 맡았고, 1903년 7월 내장산에서 열린 항일 호남유림대회에 참석했다. 또한 1906년 4월 면암 최익현과 함께 항일의병 활동을 주도적으로 전개했다.
정성섭씨가 기탁한 작품은 정치열․백춘화 부부를 그린 그림으로, 작품 연도는 각각 1930년과 1931년으로 추정된다. 채용신이 그린 부부 초상화 역시 현전하는 예가 많지 않아 문화재적으로 높은 가치를 평가받고 있다. 채용신이 신태인에 있던 ‘채석강 도화소’에서 주문 받아 그린 작품으로, 1930년대 작가의 기법과 당시 병풍 제작 기술이 그대로 남아 있어 유물로서의 가치를 더한다는 평가다.
조상의 초상화를 기탁한 정씨는 “어렸을 때부터 제사를 지낼 때 꼭 초상화를 걸었다”며 “집안 대대로 물려받은 두 점의 초상화가 더 오래 보존되고, 어진화사 채용신을 아는 데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학수 시장은 “정읍의 소중한 문화유산인 초상화 기탁에 감사드린다”면서 “잘 관리하고 보존해 소중한 유산이 후손들에게 전달되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채용신은 서울 삼천동에서 출생이나, 조선 말기인 20세기 초 호남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초정밀묘사로 머리카락 한 올, 옷 주름 한 자락도 놓치지 않고 사실 그대로 그린 최고의 초상화가이자 어진화사로 평가받는다. 고종의 어명으로 태조어진과 칠조어진의 주관화사(主管畵師)로 참여하기도 했다. 그간 그린 「최익현 초상」이 2007년, 「황현 초상」이 2006년에 보물로 지정, 「운낭자상」이 2012년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1910년 무성서원 일원에 머물면서 정읍과 인연을 맺은 채용신은 1923년 신태인 육리마을에 ‘채석강 도화소’를 세웠다. 이곳에서 본격적인 초상화 주문 제작 방식의 공방을 운영, 초상화의 대중화를 이끌었다.
정읍=박용주 기자 yzzpark@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