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임대차 관행이 심화시켰다" [쿠키인터뷰]

"전세사기, 임대차 관행이 심화시켰다" [쿠키인터뷰]

잘못된 임대차 관행, 여러 전세사기 피해 발생시켜
임차인이 주의해도 피할 수 없는 부당 관행도 존재
지수 위원장 “임차인 보호 위한 제도 만들어야”

기사승인 2023-06-03 06:00:38
29일 민달팽이유니온 지수 위원장이 서울 연희동 달팽이집연희에서 기자에게 주택임대차시장의 잘못된 관행 사례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차종관 기자

주택임대차시장의 잘못된 관행이 전세사기를 심화시켰다고 짚은 이가 있다. 그는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지 않는다면 세입자의 피해와 책임이 이어질 것이라 주장한다. 청년 주거권 보장과 주거 불평등 완화를 위해 활동하는 민달팽이유니온 지수 위원장을 29일 서울 연희동 달팽이집연희에서 만났다.

지수 위원장은 “잘못된 임대차 관행이 실제로 여러 전세사기 피해를 발생시켰다”며 각별한 주의를 당부했다.

잘못된 임대차 관행의 대표적 예시는 임대인이 임대차 계약 당일에 계약을 하러 오지 않는 것이다. 지수 위원장은 “임대인이 바쁘니 대신 계약서에 사인하겠다, 한 달 뒤에 찾으러 오라”고 말하는 중개사가 많다고 증언했다. 이 관행을 믿었던 임차인은 임대 권한이 없는 사람과 계약하고 보증금을 떼이는 피해자 신세가 됐다.

중개사의 중개 자격 여부를 확인하지 않는 점도 임차인이 주의해야 할 부분이다. 국가가 공인한 중개 자격을 가진 중개사 외에도, 그들의 현장 업무를 돕는 중개보조원이 있다. 몇몇 중개보조원은 중개 자격이 없음에도 본인을 중개사인 것처럼 속여 위험한 전세 계약을 진행한다. 실제로 한 전세사기 피해자는 “내가 당한 전세사기에 가담한 중개보조원이 다른 지역에서 중개사 노릇을 하고 있었다”고 고발했다. 지수 위원장은 “뜬소문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 많은 피해자가 중개 권한이 없는 사람을 통해 위험한 매물에 휩쓸리는 상황을 맞았다”고 설명했다.

지난 24일 인천시 미추홀구 길가에 주차된 차량에서 전세사기 피해자인 40대 A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사진은 A씨가 살던 미추홀구 아파트의 모습. 연합뉴스.

임차인이 주의해도 피할 수 없는 부당 관행도 존재한다. 중개사가 위반 건축물 여부를 안 알려주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위반 건축물 자체가 단속이 잘 안되는 실정이다 보니, 임차인은 건축물대장을 떼봐도 입주할 집의 불법 여부를 알 수 없다. 중개사가 위반 건축물 여부를 알려주더라도 임대인이 다 책임을 진다며 걱정할 게 없다는 식으로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임차인이 차후 전세사기를 당해도 중개사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

중개사는 중개대상물 확인설명서를 꼼꼼히 설명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지수 위원장은 “집이 경매에 넘어가면 임차인의 보증금을 다 못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설명했다고 써놓고 실제로는 설명하지 않는 피해 사례도 있다”고 밝혔다.

전월세로 살게 되는 임차인에게는 매매자와 달리 주택의 공시지가를 안내하지 않기도 한다. 하지만 전세사기를 조심하기 위해서라도 임차인에게 공시지가를 설명하는 것은 필수다. 경매에 넘어갈 때 감정가가 어떻게 되냐에 따라 보증금을 못 돌려받는 경우도 생기기 때문이다.

통상 주택임대차 계약은 임대인에게 임차인이 보증금을 빌려주고, 임대인은 임차인에게 집을 빌려주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계약이 끝난다는 것은 임차인의 이사와 동시에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보증금을 돌려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부동산에 내놓은 집이 나가지 않으면 보증금을 못 준다는 식의 태도를 보이는 임대인이 있다. 지수 위원장은 이것이 “가장 기본적으로 국가가 나서서 바로잡아야 하는 주택임대차 관행”이라며 지적했다.

지수 위원장은 “잘못된 관행 앞에 임차인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는 없다”고 강조했다. 주택임대차시장 자체가 지나치게 임대인 편의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다고도 주장했다. 그는 이러한 관행에 힘입어 지금과 같은 전세사기 문제가 심화됐다고 진단한다.

지수 위원장이 기자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차종관 기자

지수 위원장은 임차인이 보증금 미반환 상황에 놓이면, 계약이 끝나기 전에 세 차례 정도 내용증명을 보내서 임대인에게 본인의 의사를 분명히 표시하길 권한다. 만약 보증금을 계약 마감일까지 돌려받지 못한 경우 임차권 등기 명령과 보증금 반환 소송, 지급 명령을 활용하라고도 조언했다.

다만 그는 임차인이 보증금을 못 받을 것이라는 위험을 감지했을 때 즉각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제도가 없다는 점을 아쉬워했다.

실제 임차인이 임차권 등기 명령을 하고, 소송을 통해 승소하고, 경매를 통해 보증금을 보전받는 과정을 진행한다면 어떨까. 아니, 진행할 수 있을까. 지수 위원장은 “그저 집이 필요했던 임차인에게 사회가 너무 많은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라며 “경매부터 판례까지 별걸 다 알아야 한다”고 성토했다. 또한 그는 “누구나 살 집이 필요한데 남의 집에 세들어 사는 사람은 쉽게 삶의 불안을 겪는다. 제도적인 변화가 필요한 이유”라고 말했다.

이어 지수 위원장은 “보증금을 매개로 임차인이 임대인에게 자기 삶을 저당잡히고 있다”며 “보증금 자체를 국가가 관리하고 보호하는 중간 관리 기구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주택임대차시장의 부당한 관행을 관리 감독할 수 있는 감독관 제도의 도입도 제안했다.

한편 민달팽이유니온은 부당한 주택임대차 관행을 개선하고자 2013년부터 청년 세입자를 대상으로 주거 교육과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세입자에게도 주택임대차계약에 관한 충분한 정보가 보장돼야 한다고 국회에 요구하기도 했다. 그 결과 법안 개정을 통해 임대인이 체납한 세금에 대한 세입자의 열람 권한을 얻어냈다. 과거 서울시청년주거상담센터를 운영하면서 세입자 편에서  집을 함께 봐주는 ‘동행 서비스’를 도입한 전례도 있다. 이 사업은 여러 지자체로 확장됐다.

차종관 기자 alonein@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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