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가 올랐다. 고(高)물가 시대라는 말을 여기저기서 듣는 세상이 도래했다. 가장 먼저 체감되는 변화는 뭘까. 바로 밥값이다. 특히 청년층인 대학생들의 일상생활에 큰 타격으로 다가온다. 식비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는 학생들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11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물가의 기조적 흐름을 보여주는 근원물가 지수인 '농산물 및 석유류 제외 지수'는 4.1%의 상승률로 전월 대비 0.2%p 하락했다. 다만 같은 기간 소비자물가 상승폭 3.3%에서 2.7%로 내린 것과 비교하면 둔화 속도가 느린 편이다.
일상생활에서 소비자들의 구입 빈도가 높은 생활필수품 대상으로 작성된 생활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2.3% 상승했다. 올해 1월에 집계된 6.1%에 비하면 둔화 폭은 큰 편이나 생활물가의 조사 대상 품목 중 80%(116개)가 올랐다. 높은 오름세 순으로 살펴보면 도시가스(29%), 전기료(28.8%), 당근(22.1%), 양파(20.5%), 어묵(19.7%) 등이다. 최근 세간의 관심이 집중된 라면도 13.4% 뛰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2월 이후 14년 4개월 만 최고치다.
생활물가 품목에서도 84개 식품군은 전년 동월 대비 4.7% 증가했다. 동기간 60개의 식품 이외군도 0.8% 올랐다. 개인서비스 부문의 외식비는 6.3% 상승했다. 소비자물가는 낮아지는 추세임에도 불구하고, 일상생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식품과 외식비가 여전히 높다는 얘기다.
청년, “물가 수준 너무 높아”…소비패턴·생활도 변화
고(高)물가 현상은 청년층, 특히 대학생들에게 큰 타격으로 다가왔다. 쿠키뉴스가 서울대, 연세대, 선문대, 동국대, 전북대 등 5개 학교에 재학 중인 대학생 44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현재 일상생활 속에서 체감되는 물가 수준에 대한 인식' 항목에서 '매우 높다'라는 답변이 61.4%를 차지했다. 일반적으로 높다는 의견도 36.4%로 확인됐다. 매우 낮거나 낮은 편이란 답변은 존재하지 않았다.
대학생들은 식비의 물가상승률이 가장 높게 체감된다고 토로했다. 무려 95.5%의 학생들이 식비를 꼽았다. 식비 부담으로 인해 친구나 선·후배의 만남을 피했다는 답변도 65.9%로 나타났다. 일상생활의 만남까지 영향을 미칠 정도로 부담스럽게 올랐다는 얘기다. 식비 때문에 배가 고픈데도 끼니를 거른 적이 있다는 대학생은 56.8%에 달했다. 하루 한 끼만 먹거나 술자리를 나가지 않는다는 재학생도 있었다.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재학생 민모(21·여) 씨는 “수입에 따라 느낌이 다르겠지만, 지방에서 올라와 자취하거나 기숙사를 이용하는 학생들에게 소비의 큰 부분은 식비가 할애한다”며 “결국 물가상승률에 따라 식비가 올라가면 그만큼 부담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대학생들은 식비 절감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할까. 설문조사에 응답한 재학생들은 다양한 의견을 쏟아냈다. 대체로 외식이나 배달음식 주문을 하지 않고, 자취방 등 주거공간에서 요리해 식사하는 비중이 크게 늘었다. 이커머스 업체를 통해 가격이 낮은 인스턴트 식품을 대량으로 주문하거나 지인과 공동구매로 부담을 낮춘다는 대답들도 많았다.
‘천원의 아침밥’ 식비 부담 완화…‘사각지대’ 비판도 상존
이 같은 상황 속에 정부는 '천원의 아침밥'이란 청년을 위한 복지 정책을 확대했다. 천원의 아침밥은 대학생에게 양질의 아침밥을 제공해 청년층의 건강한 쌀 소비문화를 복돋우는 사업이다. 정가에서 농식품부가 학생 1인당 1000원을 지원하고, 학교가 나머지를 부담한다. 이를 통해 학생들은 1000원에 식사를 할 수 있다.
최근 농식품부는 해당 사업의 규모를 크게 늘렸다. 앞서 지난 4월9일 ‘쌀 수급 안정 관련 민·당·정 협의회’에서 천원의 아침밥 사업을 희망하는 모든 대학으로 확대할 거란 방침에 기인한다. 고물가 영향으로 대학생 식비 부담도 증가하면서 지원 확대 요구가 늘어난 영향이다. 농식품부는 기존 41개교 외에도 2차 추가모집에 신청한 전국 104개 대학을 모두 선정했다.
이에 따라 총 145개 대학의 식수인원 234만명을 모두 지원한다는 게 농식품부 측 설명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해당 사업이 시작하는 일자는 대학교별 사업계획서마다 다르다"면서 "신규 참여 대학은 5월부터 진행하고, 사업 종료일은 11월30일이다"고 설명했다.
현재 천원의 아침밥을 시행하는 대학의 재학생들은 뜨거운 관심을 보인다. 쿠키뉴스 설문조사에 따르면 재학생들은 천원의 아침밥에 대해 51.5%가 매우 만족한다고 답했다. 만족한다는 의견도 27.3%였다. 전체의 78.8%가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셈이다. 식비 부담을 완화해 준단 의견도 90.7%에 달했다.
그러나 이같은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재학생들도 다수 존재한다. 우선 통학생들의 경우 천원의 아침밥을 이용하기 어렵다. 아침이라는 시간적 특성상 이동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선착순 제공에 대한 불만도 많다.
천원의 아침밥을 실시하는 한 대학교에 재학 중인 A 씨는 “이용해 본 적이 없다”며 운을 뗐다. 그는 “한정적인 장소와 시간, 적은 인원에게 선착순으로 제공이 되는 점에 따른 불확실성과 수고스러움을 겪고 싶지 않다”고 불만을 표했다.
서울의 모 대학 재학생 B 씨는 “1교시가 오전 9시부터 시작되는데, 통학하는 학생들은 수업 전에 도착해서 밥을 먹고 들어가기 어렵다”며 “거의 기숙사 사는 학생들만 이용한다”고 지적했다.
서울대, 조·중·석식 모두 ‘천원’ 제공…본보기 될까
그러나 재학생들에게 '천원'의 가격으로 모든 식사를 제공하는 대학교도 있다. 앞선 불만 사항들을 말끔히 해소하는 방침인 셈이다.
바로 서울대학교다. 서울대는 과거부터 천원의 식사를 운영해 왔다. 지난 2016년 3월 천원의 저녁식사를 시행한 이후 2018년 1월 경 점심까지 확대했다. 모두 서울대의 자체 재원으로 운영된다. 아침의 경우 농식품부 재원과 서울대 재원을 합해 천원에 제공 중이다. 서울대 관계자는 “학기 중 외에도 방학까지 상시 운영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서울대학교 재학생 C 씨는 “편의점에서 삼각김밥 하나도 천원으로 사기 어려운 시대에 간단한 백반류를 먹을 수 있다는 점은 큰 장점인 것 같다”며 “메뉴는 주로 밥, 국이나 찌개류, 나물, 반찬 2개, 김치 등으로 구성된다. 조식과 중식, 석식의 차이는 크지 않다”고 설명했다.
농식품부는 천원의 아침밥 규모를 늘릴 방침이다. 대학 지원 확대를 위해 지자체와 협력체계도 마련했다. 일부 지자체는 추가 지원 계획을 검토 중이다. 지자체에 이어 교육부도 일반재정지원사업 집행 기준 규제를 완화해 해당 사업비로 천원의 아침밥 사업 집행이 가능하도록 조치했다.
김인중 농식품부 차관은 “더 많은 대학 학생이 ‘천원의 아침밥’ 사업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예산확보 및 지자체 협력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며 “향후 해당 사업의 지원규모를 지속적으로 늘리기 위한 방안을 적극 강구하겠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자체적 재원으로 점심, 저녁까지 천원에 식사를 제공하는 서울대가 본보기가 될지 주목된다. 지자체에 이어 교육부까지 지원에 나서는 만큼, 대학의 비용 부담이 다소 완화될 거란 전망 때문이다. 이 경우 사각지대에 놓인 재학생들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다만 전문가들은 중·석식까지 확대하기는 무리수라고 평가한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육학과 교수는 “점심까지 확대해 제공할 경우 예산은 천문학적으로 늘어나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정책을 펼 때 공평성 부분을 따져줘야 하는데 초·중·고에 들어가는 급식 예산도 엄청난 만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12일 [끝모를 물가쇼크③]에서 계속.
이창희 기자 window@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