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암 환자예요. 병동 앞에 있는 은행을 방문해 예금을 알아보는데 제게 다른 상품을 추천했어요. 그러면서 증권 직원이 와서 저를 증권사로 픽업해 갔습니다. 그때 방사선 치료를 받고 나와서 머리카락도 없는 상태였어요. 직원 차량을 타고 이동했더니 투자성향을 초고위험으로 분석을 다 높여서 제게 홍콩 증시의 ELS를 팔았습니다. 그때는 고마운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사람들은 지금은 다 승진해서 없어요. 그 사람들의 양심에 대해 엄벌해야 해요” (2021년 ELS 가입자)
홍콩 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주가연계증권(ELS)에서 대규모 손실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불완전판매’ 논란이 커지고 있다. 원금 손실 가능성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거나 인지 능력이 떨어지는 암 환자에게 상품을 판매하는 등 가입자들은 판매사의 불완전판매를 주장하고 있다.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시중 5대(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은행에서 홍콩 H지수 연계 ELS를 판매한 잔액은 지난달 말 기준 13조 5790억원에 달한다. 이 가운데 60대 이상 고객에게 팔린 것이 6조 4541억원으로 절반 수준에 육박(47.5%)했다. 90대 이상 초고령자에게도 91억원 어치가 팔려나갔다. 이렇게 판매된 ELS는 기초자산인 홍콩 H지수가 2021년 2월 1만2000에서 현재 6000대까지 떨어져 내년 대규모 손실이 예상되고 있다.
손실을 앞둔 가입자들은 상품 판매 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입장이다. ELS 가입자들은 전날 금융감독원 앞에서 집회를 열고 “어떻게 모든 고객들이 한 결 같이 가입 시 ‘원금 손해 날리 없다. 중국이 망하지 않는 한 낙인될 게 없다’고 똑같은 안내를 받을 수 있나, 이번 사태는 전적으로 실적을 올리는 데만 급급한 시중은행의 치졸한 욕심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고 규탄했다.
쿠키뉴스가 직접 이야기를 나눠본 암 환자와 같이 다른 가입자들 역시 불완전판매를 주장했다. 75세의 ELS 가입자는 “원금이 보장되는 상품이라며, 이게 중국 상품이라는 소리도 안했다”면서 “노후자금인데 금리 1%대 예금에 가입해서는 생활이 안된다고 여기에 가입하라고 해서 가입했다”고 토로했다. 설명 녹취에 대해서는 “그 음성으로 나오는 건 젊은 사람이 들어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며 “글씨도 제대로 안 보이는데 내가 어떻게 알아듣겠냐”고 한탄했다.
여기에 ELS 손실이 가시화되자 은행원이 손실 회복을 이유로 또 다른 투자 상품 가입을 종용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70대의 또 다른 ELS 가입자는 “은행 직원이 손실을 만회해야 하지 않겠냐”며 “나에게 홍콩 증시 ETF를 가입하라고 하는데 전재산 ELS에 들어가 있는 상황에서 무슨 돈이 있어 또 다른 상품에 가입 하냐고 거부했다”고 말했다.
은행들은 판매 과정에서 불완전판매 사례가 있을 수 있지만 모든 판매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원이 수익만을 추구해 ELS를 권유한 것으로 보는 것이 안타깝다”며 “직원들도 판매할 때 한 번도 손실이 난적 없고 수익이 좋다보니 자신 있게 고객들에게 권할 수 있었던 것으로 당시 홍콩 증시도 박스 권에 있고, 미래 전망도 좋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직원들이 관리하는 고객의 자산을 키워주는 것에 보람도 많이 느꼈지만 손실이 발생하니까 일부 고객들이 돌변해 불완전판매를 주장한다”면서 “불완전판매가 있을 수 있지만 케이스별로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ELS 가입자들이 불완전판매를 주장하고 나서면서 금융당국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금감원은 판매량이 가장 많은 KB국민은행에 대해 현장조사를 벌여 상품 선정과정, 고객대응체계 등을 점검했다. 다른 금융회사에 대해서는 서면조사에 나섰다. 여기에 내년 손실이 확정되기 앞서 현장 검사에 조기 착수할 방침이다.
조계원 기자 chokw@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