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고유한 정체성을 상징하는 이순신 장군, 세종대왕 동상과 함께 자유 민주주의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장소가 필요하다는 의지에서 시작된 사업입니다.” (오세훈 서울시장)
2002년 월드컵과 2016년 촛불집회의 시작점이었던 서울 광화문광장이 국가상징공간 조성을 위한 논의에 들어갔다. 당초 발표된 100m 높이의 초대형 태극기 게양대 설치 계획을 두고 다양한 의견이 쏟아지자 시민 의견수렴 절차에 돌입한 상황이다.
국가상징공간은 왜…해외 선진사례 살펴보니
상징공간은 도시의 역사와 정치·경제·사회·문화를 총괄적으로 대표하는 공간을 의미한다. 해외 사례를 살펴보면 국가상징공간은 국가 정체성을 보여주는 상징이며 문화 환경뿐 아니라 하나의 ‘도시 브랜드’로서 관광객을 불러 모으고 있다.
서울 중심 도로가 세종로라면, 독일 베를린에는 ‘운터 덴 린덴’이 있다. 길이 1.5㎞, 폭 60m의 운터 덴 린덴은 과거 동서독 분단의 상징인 브라덴부르크문을 시작으로 프로이센 궁전까지 이어진 거리다. 홈볼트 대학교, 베를린 국립 오페라극장 등 중세, 근대 건물이 많이 남겨져 베를린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꼽힌다.
미국의 수도 워싱턴DC를 방문하는 관람객이라면 누구나 찾는 내셔널 몰은 길이 3㎞, 폭 483m에 달하는 거대한 공원이다. 백악관과 국회의사당, 박물관, 미술관이 인접해 있을 뿐만 아니라 워싱턴 기념비, 링컨기념관, 한국전쟁 기념비, 베트남 참전 영웅 기념비 등 미국 역사를 기억하는 수많은 기념비와 기념관이 이곳에 몰려 있다.
이뿐만 아니라 미국 샌프란시스코 시청 광장, 영국 버킹엄 궁전 앞 더 몰 거리, 일본 도쿄역 마루노우치 광장, 멕시코시티 소칼로 광장, 호주 빅토리아 광장, 스페인 시벨레스 광장은 국기 등 국가상징조형물을 품고 있는 국가상징공간이자 유명 관광지로 매년 관람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직장인 이모(30)씨는 “스페인 마드리드 도시 건축물은 시각적으로 아름답고 역사적으로도 가치가 있는 것이 많다. 시벨레스 광장도 의미 있는 공간 중 하나로,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직장인 신모(37)씨도 “영국 버킹엄 궁전, 수많은 유니언잭이 펄럭이는 더 몰 거리는 영국의 웅장함을 느끼게 했다”며 “광화문광장에 국가상징공간을 잘 조성하면 해외 유명 관광지처럼 외국 관광객이 많이 찾는 관광 명소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라고 기대했다.
강병근 서울시 총괄건축가(건국대 건축대학 명예교수)는 “한 국가와 도시 정체성을 어떤 것, 어떤 곳, 어떤 모양으로 만드는가와 국가나 도시의 상징성과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장소에 이를 적절히 표현하는 것은 다르다. 서울시가 집중해야 할 과제는 후자”라고 말했다.
이어 “국가상징공간을 통해 대한민국이 수립되고 오늘의 발전을 이르기까지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 희생된 국내외 군인, 유엔참전 21개국을 오늘의 대한민국이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광화문광장, 국가상징공간으로 적정한가
시는 광화문광장 세종로공원을 거점형 편의시설로 개발하면서 동시에 국가상징공간으로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광화문광장을 국가상징공간으로 만들기 위한 움직임은 하루아침에 일어난 일은 아니다. 광화문광장은 조선시대 주요 관청이 밀집한 육조거리였으며, 6·25전쟁 때 서울을 수복할 당시 해병대가 북한군과의 전투를 승리로 이끌고 태극기를 게양한 곳이다. 또 1987년 6·10 항쟁, 2002년 월드컵 등이 열린 역사의 현장이자 박물관, 미술관 등이 모인 문화의 공간이다.
강 총괄건축가는 “조선시대부터 광화문광장이 있는 공간은 국가 중심공간으로 자리매김해 왔다”며 “일제강점기에도 이곳에 일본의 상징건물(조선총독부)을 세워 경복궁을 대체하려 했고, 해방 이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리되고 이 건물을 ‘중앙청’으로 활용해 대한민국의 정점으로 삼았다. 1950년 9월27일 당시 서울을 수복했던 국군이 중앙청에 태극기를 게양했던 광경을 세계가 기억하고 있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실제 많은 시민은 광화문광장을 이미 역사와 문화의 공간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환경영향평가학회가 낸 ‘광화문광장의 인식 분석 연구-텍스트마이닝과 소셜네트워크 분석을 중심으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역사’ ‘세종대왕’ ‘이순신’ ‘육조거리’ 등 역사와 관련된 빅데이터 키워드가 도출됐다.
연구자들은 이를 통해 “광화문광장을 역사성을 띤 국가대표 광장이자 차별화된 공간으로 인식하고 있다”며 “광화문광장 인식을 높이려는 방안으로 광화문광장의 역사성과 조경시설 등을 지속적으로 보존 및 관리하고 이용자와 공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시는 광화문광장 국가상징공간에 국기·국가·국장·국화·국새 등 5가지 상징물과 그밖에 국민적 공감대가 있는 상징물까지 적극 반영하겠단 입장이다. 다만 시는 태극기 상징물에 조금 더 무게추를 두고 있다. 역사적인 사건 때마다 태극기가 의미 있는 역할을 해왔던데다 대부분 국가가 국가 상징물로 국기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시민 의견 수렴 중요…국민 공감대 얻어야
전문가들은 시민 의견을 청취하고 국민 공감대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서경덕 성신여대 창의융합학부 교수는 앞선 쿠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국가상징 조형물을 조성하는데 공론화 작업을 거치고 국민의 아이디어나 의견을 경청하며 추진하는 과정이 중요할 것 같다”며 “이러한 논의 과정을 거치고 합의점을 찾아 조성된 국가상징 조형물은 국가 브랜드 강화에도 일조할 것이라 생각한다. 사회적 합의가 잘 돼 국가상징 조형물이 조성된다면 전 세계인이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세계적 관광지로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정란수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는 “광장이란 곳은 굉장히 열린 공간인 만큼 그 안에 콘텐츠를 누군가 만들어내고, 계속 담아내는 것이 중요하다”며 “그래서 시민들의 의견이 중요하다. 공간에 콘텐츠를 담는데 국가나 서울시가 톱다운(하향식) 방식으로 방향을 결정하면 위험할 수 있다. 시민, 민간 등의 의견을 모을 수 있는 개방적인 플랫폼을 만들어 의견을 듣고 기관이 움직이는 형태가 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기 상징물에 대해선 “사회 합의가 먼저 이뤄져야 할 것 같다”며 “국기가 곳곳에 많이 걸린 튀르키예는 민족에 대한 자부심이 상당히 강한 국가”라며 “많은 국민이 원하고 합의가 됐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시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광화문광장 국가상징공간 조성 관련 다양한 의견이 접수되고 있다. 시는 지난 15일부터 다음 달 15일까지 한 달간 홈페이지에 의견 수렴 창구를 마련해 시민 의견을 듣고 있다.
시 관계자는 “시민들의 아이디어나 의견을 듣는 창구로, 찬반 조사는 아니”라며 “국가상징공간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폭넓게 들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국가상징공간 조성을 위한 예산 제안부터 다양한 시설물에 대한 의견까지 시민들의 관심이 높다는 의견이다. 해당 관계자는 “반대 의견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의견이 많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