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전세사기 이후 빌라 기피 현상인 ‘빌라 포비아’가 지속되고 있다. 정부가 비(非)아파트 시장 활성화 정책을 발표했지만 아파트 쏠림 현상을 해소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29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 6월 전국 주택 매매거래량은 5만5760건이다. 이중 아파트 거래는 4만3300건으로 전월 대비 0.1% 증가해 전체 주택 거래량 중 77.65%를 차지했다. 이는 2011년 이후 최고치이다. 그러나 연립·다세대, 단독·다가구 등 비아파트 거래량은 전월 대비 12% 감소해 1만2460건으로 집계됐다.
부동산 급등기이던 2020년~2021년 서울에서는 비아파트 거래량이 아파트 거래량을 추월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서울시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 2022년 6월 빌라 매매량은 3243건으로 아파트 매매(1076건)의 세 배가 넘는 것으로 조사됐다. 2021년 1월부터 19개월 연속 빌라 매매량이 아파트를 추월하는 현상이 이어졌다. 아파트 가격 급등과 금리인상‧대출규제 강화 등으로 인해 주택 수요가 빌라에 몰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2022년 대규모 빌라 시장에서 대규모 전세사기가 발생하며 빌라 거래 기피 현상이 이어졌다. 서울 강서구, 인천 미추홀구, 경기 화성 등 전국 곳곳에서 수백억원대 전세사기가 발생했다. 신축 빌라의 경우 정확한 시세 파악이 어려운 점을 악용한 전세사기가 발생한 것이다.
이후 빌라 시장 기피 현상이 이어지며 인허가, 착공 물량도 감소하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6월 비아파트 인허가는 3019가구로 지난해 대비 35.8%, 전월 대비 13.3% 줄었다. 같은 기간 아파트 인허가 건수는 2만867가구로 전월보다 4.3% 늘어났다. 빌라 등 비아파트 주택은 서민들에게 있어 ‘주거 사다리’ 역할을 해왔다. 아파트 대비 저렴한 가격에 거주 가능하고, 주거 이동이 가능한 역할을 맡았으나 빌라 시장이 붕괴되며 아파트 매매가 과열로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비아파트 기피 현상을 해소하고 수도권 공급물량 확대를 위해 총력을 가하고 있다. 국토부는 지난 8일 주택공급 확대방안 일환으로 비아파트 주택에 대한 수요를 다시 살리기 위해 뉴:빌리지 사업과 함께 비아파트를 공공임대로 추가 공급하는 등 여러 방안을 발표했다.
구체적으로 국토부는 주거 환경을 개선하고 시장 활성화를 위해 연내 노후 단독‧빌라촌 30곳을 ‘뉴:빌리지’ 사업지로 선정해 최대 180억원 지원할 계획이다. 주차장, 체육시설 등 아파트 수준의 커뮤니티 시설을 확충하고 공공신축매입임대 사업과 연계해 2029년까지 비아파트 5만호를 공급한다는 방침이다.
비아파트 수요 활성화를 위해 취득세‧양도세 등 세제 혜택도 확대했다. 먼저 생애 최초로 다가구, 연립·다세대, 도시형 생활주택 등 소형주택을 구입한 경우 제공되는 취득세 감면 한도를 300만원으로 확대하는 혜택을 2027년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또, 빌라 등 비아파트를 보유했더라도 청약에서 무주택으로 인정하는 비아파트 범위를 85㎡(수도권 5억원·지방 3억원) 이하로 확대한다.
비아파트 1호만으로 사업자 등록이 가능한 6년 단기 등록임대 제도도 도입한다. 1주택자가 소형주택을 구입해 6년 단기임대로 등록하면 1세대 1주택자로 특례를 적용한다. 공유주택 등 임대형 기숙사도 앞으로는 취득세·재산세 감면 대상에 포함된다.
다만 전문가들은 비아파트의 근본적인 문제 해결 전에는 활성화가 어려울 것으로 봤다.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장은 “부동산 시장 수요자들은 현재 아파트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 비아파트를 원하지 않고 있다”며 “전세사기, 역전세가 여전히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전세시장이 안정되지 않을 경우 대책이 나와도 효과가 없다”며 “청년들이 안전하게 믿고 계약할 수 있는 전세 시스템 마련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도 “사회인식과 선호도가 확연히 아파트로 쏠린 현상에 대해 공공기관이 ‘정상화’라는 이름으로 개입이 필요한지 의문”이라며 “인위적인 개입보다 시장에 맡겨야 할 사안”이라고 꼬집었다.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지만 그럼에도 필요한 정책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아파트 쏠림 현상이 완벽하게 해소되긴 어렵지만 주택 유형이 다양화돼야 분산효과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