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세포 잡는 유도미사일’로 불리는 항체약물접합체(ADC) 시장이 급성장할 것으로 전망되며 연구개발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임상 현장에서는 높은 치료 효과와 낮은 부작용이 강점인 ADC 치료제로 미충족 의료 수요가 큰 질병을 치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면서 기존 치료제와의 병용요법이나 새로운 적응증 확장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은 27일 서울 용산 나인트리 로카우스 호텔에서 ‘2024 제약바이오산업 혁신 포럼’을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국내외 ADC 개발 동향과 미래 전망, 국내 주요 기업들의 차세대 플랫폼 개발 동향 등이 소개됐다.
ADC는 항체에 세포를 파괴하는 독성 약물(페이로드)을 접합체(링커)로 결합한 복합체로, 특정 표적 세포에 약물을 전달해 기존 치료법에 비해 정확하고 강력한 치료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ADC 시장은 일본 다이이찌산쿄의 유방암 ADC 치료제 ‘엔허투’(성분명 트라스트주맙데룩스테칸)가 출시 5년 만에 수조원에 이르는 블록버스터급 실적을 내보이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이밸류에이트에 따르면 ADC 시장 규모는 2015년 약 10억달러(한화 약 1조4000억원)에서 8년 만에 10배로 성장해 2023년 약 100억달러(약 14조원)가 됐다. 2028년까지 280억달러(약 39조원)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ADC 치료제는 제조 과정이 까다로워 현재까지 출시된 의약품은 10여개에 불과하지만, 치료하기 어렵고 예후가 좋지 않았던 여러 난치암 치료에서 ‘게임 체인저’로 활약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현재 진행 중인 ADC 관련 임상시험만 150개 이상으로 리가켐바이오, 에이비엘바이오, 피노바이오, 인투셀 등 ADC 개발 전문 바이오텍 기업들의 약진이 이어지고 있다.
리가켐바이오는 ADC의 핵심 기술인 링커-페이로드 플랫폼 ‘콘쥬올’(ConjuALL)을 보유했다. 페이로드의 독성을 낮춰 종양세포에서 높은 농도로 활성화되는 방식으로 설계돼 고형암과 비소세포폐암, 림프종 등을 타깃하는 신약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앞서 ‘DLK1’을 표적으로 하는 ADC 항암 후보물질인 ‘YBL-001’(LCB67)을 개발해 2020년 미국 픽시스 온콜로지(Pyxis Oncology)에 성공적으로 기술을 수출한 바 있다. 지난해 12월엔 존슨앤드존슨 자회사 얀센과 약 17억달러(약 2조3700억원) 계약에 성공하며 기술 가치를 입증했다.
에이비엘바이오는 리가켐바이오와 ‘ROR1’을 타깃하는 ADC 후보물질 ‘ABL202’(CS5001)를 개발한 경험과 이중항체 기술 전문성을 살려 이중항체 ADC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이중항체 ADC의 경우 페이로드를 단일항체 ADC 대비 암 세포에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어 안전성과 효능을 모두 높일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에이비엘바이오는 이중항체 플랫폼 ‘그랩바디’(Grabody)를 기반으로 ADC 파이프라인을 개발해 내년 중으로 최대 3건의 임상시험계획서(IND)를 제출한다는 계획이다.
이날 유원규 에이비엘바이오 부사장(연구소장)은 “ADC를 개발하려면 항체·페이로드·링커의 궁합이 잘 맞아야 하는데 이를 위해 최적의 조합 발굴에 집중하고 있다”며 “임상에서 좋은 결과를 기대하고 있다. 미래에 항체 기반 혁신 신약을 넘어 성장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피노바이오는 셀트리온과 손잡고 2종의 고형암 ADC 후보물질(CT-P70·CT-P71)을 개발 중이다. 피노바이오가 2022년 셀트리온에 비독점적 라이선스 형태로 기술 이전한 ADC 플랫폼 ‘피놋-ADC’(PINOT-ADC) 기술이 적용됐다. CT-P70은 비소세포폐암 등 고형암을 대상으로 하는 ‘세포성장인자 수용체’(cMET) 타깃 ADC다. CT-P71은 방광암 등을 목표 적응증으로 하며 ‘넥틴-4’(Nectin-4)를 겨냥한다. 두 치료제 모두 비임상 연구가 진행 중이며, 종양억제 효능과 안전성이 입증됐다.
인투셀은 ADC 신약 분야에서 가장 핵심적인 항체와 약물을 연결하는 링커 플랫폼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링커 기술은 ‘항체와의 연결기술’(앞쪽 항체 연결 링커)과 ‘약물과의 연결기술’(뒤쪽 약물 연결 링커)로 나뉘는데, 인투셀은 구현이 더 어려운 뒤쪽 약물 연결 링커에 특화돼 있다. 뒤쪽 약물 연결 링커는 약물이 암세포에 도달하기 전까지 혈액 내에서 안전하게 있다가 연결이 끊어져 선택적으로 암세포를 죽이는 기술이다. 약물 링커 범용기술을 가진 곳은 이전까지 미국 씨젠이 유일했다.
글로벌 위탁생산개발(CDMO) 기업들도 ADC를 주력 파이프라인의 하나로 삼아 증산 경쟁에 시동을 걸었다. 가장 빠른 곳은 삼성바이오로직스로 올해 안에 ADC 생산 시설 공사를 마무리하고 우수 의약품 제조 품질관리 기준(GMP) 승인을 받아 연내 준공할 예정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현재 여러 고객사와 수주 협의를 진행 중으로, ADC 공장이 본격 가동되면 글로벌 빅파마와 위탁생산 계약을 맺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ADC 신약이 암 치료 환경을 바꿀 것으로 전망했다. 남도현 삼성서울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환자를 치료할 때 항암제 하나만 쓰는 게 아니라 여러 개를 함께 복합해서 사용한다”며 “기존 치료의 효과를 배가시킬 수 있는 ADC 치료제가 앞으로 가장 중요한 모달리티(치료 접근법)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