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英 정치·헌법적 차이와 교훈 [기고]

韓英 정치·헌법적 차이와 교훈 [기고]

한국 민주주의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길
민주적 통제와 군 내부 문화 개선
수사와 기소의 분리 필요성
권력 책임성과 국민주권 강화
글‧로버트김 영국 킹스톤 왕립자치시 의원(변호사)

기사승인 2024-12-12 06: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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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김 영국 킹스톤 왕립자치시 의원(변호사)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한국은 세계적으로 선망받는 신흥 문화 중심지였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한국 여행을 꿈꾸고, 문화 선진국으로 찬사를 받았다. 그런데 단숨에 여행 주의 국가로, 무역과 투자에 있어 불확실성이 높은 컨트리 리스크를 우려해야 하는 나라가 되었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영국에 30년을 거주하며 변호사로 시의원으로 활동해온 내게 드는 생각은 우선 한국과 영국의 정치·헌법 체제의 차이다. 40여년전 군사 쿠데타의 망령이 되살아난 듯 정치적 혼란 속에서, 한국의 민주주의는 근본적인 한계를 드러냈다. 비민주적 군사 동원의 용이함, 대통령 유고로 인한 국정 마비, 군 내부의 인맥 문제, 위헌적 명령 체계, 그리고 수사기관의 난맥상 등 민주적 체제의 취약점들이 아직도 많이 존재한다.

두 나라는 각각 독특한 역사와 문화를 바탕으로 민주주의를 구현하고 있다. 하지만 위기 상황에 대한 대응 방식, 권력의 분산, 국민 의견 수렴, 결정, 철회 등 면에서 많은 차이를 보여준다. 

불문법 vs. 성문법: 유연성과 경직성
영국은 불문법(Unwritten Constitution) 체제를 기반으로 수 세기에 걸쳐 형성된 관습법, 판례, 의회법 등이 헌법 역할을 한다. 불명확한 점이 있는 반면 합리적인 국민 의견에 기초해 새로운 상황에 쉽게 적응하는 유연성이 있다. 위기 상황에서 신속한 대응을 가능하게 하며, 시대적 변화에 맞게 제도를 쉽게 조정할 수 있다.
반면 한국은 성문헌법(Written Constitution)을 채택하고 있어 전체 체제를 일목요연하게 파악하기 쉽고, 헌법 개정을 통해서만 주요 변화를 이룰 수 있다. 이는 체계적이고 명확하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위기 상황에서는 경직성으로 인해 효율적인 신속 대응이 어려울 수 있다.

예를 들어 영국의 의원내각제에서는 총리가 의회의 신임을 잃으면 즉시 교체가 가능하며, 이는 정치적 위기를 최소화하는 데 효과적이다. 반면 한국의 대통령제는 대통령의 권한이 강력해 탄핵 등 헌법적 절차를 거쳐야만 리더십을 교체할 수 있다. 이는 때로는 정치적 갈등을 장기화하는 요인이 된다.

의원내각제 vs 대통령제…권력 분산과 책임정치
영국의 의원내각제는 총리와 내각이 의회의 신임이 전체조건이 되므로 정책 집행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쉽고 책임정치가 구현된다. 반면 한국의 대통령제는 행정부와 입법부가 분리되어 있어 권력 분산이라는 이점을 제공한다. 때로는 여야 간 대립으로 정책이 교착 상태에 빠지고, 특히 여소야대 상황에서는 정치난맥상을 드러내는 단점이 있다.

내각제의 또 다른 장점은 ‘순발력’으로. 정책 실패나 리더십 위기 시에 빠르게 총리를 교체하거나 새 정부를 구성할 수 있다. 이는 국민의 신뢰를 잃은 리더십이 장기간 유지되는 한국의 상황과 대비된다.

한국도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를 강화하고, 긴급국가위원회와 같은 제도를 마련해 위기 상황에서 국정이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군사 동원의 용이성과 군 내부 맹목적 인맥 추종 문화
이번 사태는 군이 정치적 목적을 위해 쉽게 동원될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군은 헌법적 질서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인데, 특정 정치 세력의 권력 유지 도구로 너무 쉽게 전락할 수 있다는 현실은 충격적이다.
영국에서는 군의 동원은 의회와 국왕의 명령 하에서만 이루어지며, 모든 절차가 철저히 투명하게 검토된다. 한국도 군사 동원 권한을 엄격히 제한하고, 의회나 독립된 헌법 기구의 승인 하에서만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군 조직 내 학연과 지연 중심의 파벌 문화가 여전히 만연함을 보여줬다. 이러한 문화는 군의 국가와 국민을 위한 효율적 지휘를 방해하고, 공정성을 훼손하며, 위기 상황에서 적절한 판단을 내리는 데 큰 장애물이 된다.
또한 특전부대 중견 지휘관과 병사들이 위헌적 명령을 거부하지 못했던 것은 군내 수직적 명령 체계가 얼마나 비민주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병사들에게는 위헌적 명령을 거부할 권리가 법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윤리 교육이 강화되어야 한다. 군은 단순히 명령을 집행하는 조직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지키는 최후 보루여야 한다.

수사기관 난립과 국민 신뢰의 붕괴
한국의 검찰은 수사와 기소 권한을 동시에 보유하며, 전 세계적으로도 이례적인 구조이다. 정치적 사건에서 검찰의 권한이 자의적으로 과잉 작용한다는 비판을 수십 년 받아 왔다. 

이번 사태에서는 검찰, 경찰, 군 수사기관, 공수처 등 여러 수사기관이 난립하며, 이들 간의 권한 중복과 갈등은 사건 해결을 지연시키고 국민 신뢰를 하락시켰다.
영국에서는 경찰이 수사를 담당하고 검찰은 기소를 결정하는 구조로 역할이 명확히 구분되어 있다. 한국도 수사와 기소의 분리 원칙을 강화하고, 견제와 균형 시스템을 통해 수사기관의 투명성과 신뢰를 높이고, 정치적 영향력을 차단해야 한다.

국민소환제와 권력의 견제
영국에서는 지역구 의원이 유권자들로부터 소환돼 재선거를 치르는 국민소환제(Recall of MPs)가 있다. 이는 정치인이 부적절한 행동을 했을 때 국민이 직접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제도로, 권력의 견제와 국민주권주의를 강화한다. 한국에서는 지방의회 수준에서만 제한적으로 운영되는 것으로 아는데, 국회의원이나 주요 공직자에게 확대한다면 권력의 책임성을 높이고 국민의 신뢰회복에 도움이 될 것이다.

한국은 성숙한 민주주의를 구축해 왔지만, 한국 민주주의가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음을 보여줬다. 영국의 의원내각제, 국민소환제, 검찰의 중립성 제고 등은 한국이 참고할 만한 좋은 사례라고 생각한다. 특히 정치적 위기 상황에서 국민의 의견을 빠르고 합리적으로 수렴할 수 있는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한국전쟁 시 5만 7천명의 젊은이들을 파병해 우리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영국인들에게 뭐라 설명할 지 난감하다. 더구나 중공군과의 사투로 750명의 대대원 중 39명만이 생환했던 글로스터 연대 1대대 참전용사분들은 매년 현충일에 오히려 손을 잡고 우리가 선진국을 만들어 줘 고맙다며 눈시울을 적셨는데, 내년 현충일에는 뭐라 하실 지 걱정이다.

한국이 이번 위기를 계기로 국민의 신뢰와 참여를 기반으로, 위기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민주적 체제를 구축해 더 성숙한 민주주의로 나아가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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