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 기습적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대통령의 말을 어떻게 믿나.”
12일 쿠키뉴스와의 인터뷰 도중 박소은(여·27)씨가 한 말이다. 박씨는 12·3 비상계엄 사태로 윤석열 정부에게 완전히 등을 돌렸다. 김씨는 “선출 권력인 윤석열 대통령은 오직 국민을 위해 명령을 내려야 하는데, 이번 계엄 선포로 국민과 한 약속을 깬 것과 다름없다”며 “하야하지 않는 한 어떤 신뢰도 얻지 못할 것”이라고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윤 대통령이 자신의 임기를 포함한 향후 국정운영 방안을 당에 위임하겠다고 공언했지만, 민심은 싸늘하다. 국민 10명 중 7명은 윤 대통령의 이같은 ‘2선 후퇴’ 약속을 불신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치권에서도 2선 후퇴가 맞느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 7일 대국민담화를 통해 “제 임기 문제를 포함해 앞으로의 정국 안정 방안은 우리 당에 일임하겠다”며 “향후 국정 운영은 우리 당과 정부가 함께 책임지고 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여당에 사태 수습의 주도권을 내주는 것은 물론, 자신의 거취까지 일임하며 2선으로 물러나겠다는 발언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다음 날인 8일, 한동훈 대표와 한덕수 국무총리도 “국무총리와 당이 협의해 국정을 운영하겠다”며 “윤석열 대통령의 질서 있는 퇴진으로 혼란을 최소화하겠다. 당내 논의를 거쳐 구체적인 방안을 조속히 말씀드리겠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이 2선으로 물러나고, 한 대표와 한 총리가 국정운영 파트너로 나서는 사실상 책임총리 체제에 시동을 건 셈이다.
정치권과 헌법학자들 사이에서는 근거 없는 ‘눈속임’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국내법에 명시된 제도가 아닌 탓에 전례를 찾기 힘들 뿐만 아니라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비판이다. 윤 대통령이 대통령직을 유지한 채로 ‘사실상 직무 배제’가 가능한지에 대한 의견도 분분하다. 당장 윤 대통령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사표 수리 등 임면권을 행사했다.
국민 다수는 정부·여당의 ‘2선 후퇴’ 방침을 믿을 수 없다고 토로했다. 직장인 엄모(37)씨는 “2선 후퇴한다고 해놓고 아직까지 아무런 입장을 내놓지 않는 것은 법적 대응이나 어떤 타개책을 마련하기 위해 시간을 벌고 있는 게 아닌가”라며 “한동훈 대표와의 면담 이후 아무런 움직임이 없는 것도 이상하다”고 의구심을 표했다. 서울에 거주하는 김모(31·여)씨도 “한동훈 대표와 한덕수 총리의 방안에 논리가 없다고 생각한다”며 “국민에게 선출된 적 없는 권력이 어떻게 윤 대통령을 대신해 나라를 다스리겠다는 건가.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이모(42)씨도 “내란 혐의를 받는 윤 대통령이 여전히 인사권을 행사하고 있는데 진짜 2선 후퇴했다고 볼 수 있나”며 “윤 대통령이 직무 배제될 것이라고 한 대표의 말도 거짓이었던 것”이라고 질타했다.
여론조사 수치도 윤 대통령에 대한 국민 불신을 방증한다. 쿠키뉴스 의뢰로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길리서치가 지난 8~9일 전국에 거주하는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윤 대통령의 2선 후퇴 발언 신뢰도’를 물은 결과, 전체 응답자 중 76.9%가 ‘불신한다’고 답했다. ‘전혀 신뢰하지 않음’ 71.6%, ‘별로 신뢰하지 않음’ 5.3%로 집계됐다.
윤 대통령의 2선 후퇴 방침을 불신하는 경향은 연령·지역을 막론하고 두드러졌다. 50대(84.1%), 40대(82.6%), 30대(81.9%), 호남권(91.1%), 충청권(82.1%)에서 특히 높았다. 정치 성향별로도 진보층(91.6%), 중도층(77.3%), 보수층(65.5%)에서도 윤 대통령의 2선 후퇴 발언에 불신의 눈초리를 보냈다.
한편 기사에 인용된 설문조사는 구조화된 설문지를 이용한 유선 전화면접(8.0%), 무선 ARS(92.0%)를 병행해 진행됐다. 응답률은 13.3%,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오차범위 ± 3.1%p다. 표본 추출은 유무선 전화 RDD 표본 프레임에서 무작위 추출 방식이며 통계보정은 2024년 9월 말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 기준 성·연령·지역별 가중값 부여 방식으로 이뤄졌다. 자세한 조사개요와 결과는 한길리서치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