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중증·희귀질환 등 꼭 필요한 치료의 보장을 강화하고 효과가 불확실한 과잉진료는 퇴출하기 위한 비급여·실손보험 개혁안을 내놓은 가운데 의료계와 시민단체 등이 적극적 정책 보완을 요청했다.
보건복지부와 의료개혁특별위원회는 9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의료체계 정상화를 위한 비급여 관리 및 실손보험 개혁방안 정책토론회’를 개최하고 의료계와 소비자 등 각계 의견을 수렴했다.
개혁안을 보면 정부는 도수치료 등 과잉 비급여 진료를 ‘관리급여’로 지정하고 환자 본인부담률을 90% 이상으로 올리기로 했다. 급여와 비급여 진료가 동시에 이뤄지는 병행진료(혼합진료)는 환자가 진료비를 100% 부담해야 한다. 5세대 실손보험 계약자는 총 진료비의 81%를 본인이 부담하게 된다. 해당 개혁안은 최종 검토를 거쳐 이달 중 발표되는 의료개혁 2차 실행방안에 포함될 예정이다.
이날 토론회에선 과잉 비급여 진료를 관리해야 한다는 데엔 공감대가 형성됐지만 개혁안이 구체적이지 않다는 의견이 잇따랐다. 보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박현선 인하대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현재 비급여 항목이 정확히 몇 개인지도 모르고 어떤 서비스를 얼마나 보장할지 정의가 안 돼 있다”며 “정부의 진단은 맞았는데 정책은 땜질 수준에 그쳤다. 필수의료와 비급여가 분절되지 않고 연결되는 의료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안에 포함된 비급여 표준화와 모니터링 강화 방안은 기존에 계속 제기됐던 내용이라며 이 방안만 갖고는 비급여 팽창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왔다. 지영건 차의과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비급여 표준화와 정보 공개, 환자 선택권 강화 등은 정부가 10년 넘게 얘기해온 것으로 지금까지 진척이 없었다”라며 “비급여 정보를 공개한다고 해서 비급여 진료가 줄어들지는 않는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비급여 정보를 공개만 하면 이용이 줄어들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심리 때문에 공개를 강화하자는 방안을 내놨다면 그 효과성부터 살펴야 한다”고 덧붙였다.
남은경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무국장도 “비급여 정보 제공은 소비자들한테 그저 이러한 비급여가 있다는 것을 알려줄 뿐이다. 실질적으로 가격을 관리할 수 있는 정책은 아니다”라며 “보고제도를 확대하겠다고 했지만 현재 항목만 1000개에 이른다. 가격 공개 항목이 40개에서 60개로 늘어난 것도 10년이 걸린 만큼 앞으로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했다.
비급여 팽창을 통제하기 위해 의료계 내부의 자정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강정화 한국소비자연맹 회장은 “비타민C 주사의 효과나 근거는 부족한데 암 전문병원에서 그런 주사제를 포함한 패키지 상품을 환자에게 팔고 있다. 이를 관리하는 곳이 없다”라며 “국민적 신뢰를 떨어뜨리는 비윤리적 의료행위에 대해 의료계의 자정 노력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급여 관리 제도에 명확한 안이 없어 의료 현장의 불확실성이 크다는 우려도 있었다. 양문술 부평세림병원 원장은 “우리나라가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는 가운데 비급여 항목 상위 랭킹에 근골격계 질환이 집중된 것을 단순히 의사들의 도덕적 해이 때문이라고 보긴 어렵다”라면서 “새로운 치료가 생김으로써 다른 방법을 찾을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전했다. 양 원장은 “정부가 대표적 비급여 항목으로 꼽은 도수치료 등을 필수의료로 규정할 수는 없더라도 의료상 필요도가 없는지에 대해선 더 생각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토론회에선 시민단체 회원들을 중심으로 항의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김미숙 보험이용자협회 대표 등 관계자들은 “정부가 소비자를 사기꾼으로 몬다”, “국민건강보험공단도 보건복지부도 소비자를 외면하는 제도를 추진하려 한다”, “정부가 보험사의 이득만 대변하고 있다”고 외치며 정부 개편안을 비판했다.
정부는 의료계 등과 논의하며 개편안을 다듬어가겠다고 했다. 조우경 복지부 필수의료총괄과장은 “현재 건강보험 체계 안에서 비급여 가격을 관리할 수단이 한정적”이라며 “법적 근거 마련에 대해선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관련 부처와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또 “앞으로 의료계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보완해 걱정되는 부분이 없도록 개편안을 만들어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