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식 출시된 2월 말, 소비자들의 환영과 달리 대한약사회는 건기식 입점에 대해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약사회는 “유명 제약사가 약국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생활용품점에 건기식을 공급하는 것처럼 마케팅을 펼치고 있는 것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입장문을 배포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속 일부 약사들은 다이소에 건기식을 공급한 제약사를 상대로 보이콧을 선언하기도 했다.
제약사들도 약사단체의 반대를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다. 건기식 입점 소식이 대대적으로 알려지기 전, 기자는 제약업계 관계자들에게 “다이소에서 건기식을 파는 것에 대해 약사 단체가 불만을 제기할 것 같은데, 내부적으로는 어떤 입장을 갖고 있나”라고 물은 적이 있다. 그들은 대답을 잠시 망설였지만 “약국에서 파는 프리미엄 제품이 아닌, 온라인에서도 판매하는 저가형 건기식이라 약국의 피해는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약사단체 내부에서도 “일부 불편감을 표현하는 약사가 있을 순 있지만, 약국은 건기식 판매 비율이 매우 적기 때문에 제기되는 우려와 달리 매출엔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의견이 이어졌다.
논란의 불씨는 권영희 대한약사회 회장의 행보에서 지펴졌다. 권 회장은 2월26일 서울시약사회 대의원총회에서 “제약사와 만나 반대 입장을 전달하고 후속 대책 방안을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일양약품은 이날 권 회장과 만남을 가진 뒤 다이소 입점을 철회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를 두고 소비자들은 ‘직능 이기주의’, ‘갑질’ 등을 거론하며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약사회의 지위 남용 여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공정위는 제약사의 진술, 약사회의 입장문 등을 살펴보고 사회 통념적으로 압박감을 느낄 분위기였다면 과징금을 부과할 방침이다. 공정위는 지난 2018년 의사단체가 ‘한약사에게 초음파기기를 팔지 말라’고 기업들에 공문을 보낸 것과 관련해 10억원의 과장금 처분을 내린 바 있다.
약사단체의 갑질 논란은 ‘편의점 상비약 판매’를 놓고도 불거졌다. 보건복지부는 2012년 편의점에서 가정상비약(일반의약품)을 구입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했다. 이때 약사단체는 ‘약의 오남용 우려가 크다’며 크게 반발했다. 하지만 안전성 문제는 극히 적었고, 국민의 만족도는 높았다. 2017년에는 야간과 휴일에 약을 구하기 힘들어 편의점 상비약을 확대해야 한다는 국민의 요청에 따라 정부가 ‘안전상비의약품 지정심의위원회’를 구성하기도 했다. 위원회는 약사들의 반대에 부딪혀 결론을 못 내며 공전했고, 안전상비의약품 품목은 10년 이상 변함없는 상태다. 시민단체로 이뤄진 ‘안전상비약 시민네트워크’는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약사와 정부 간 갈등을 핑계로 할 일을 미루지 말고 연내 안전상비약 품목을 확대해 달라”고 촉구했다.
약사들은 건기식과 일반의약품이 “약사의 전문 영역에 있다”라고 주장하며, 약국 외 다른 유통망에서 이뤄지는 판매에 대해 불편한 시각을 드러낸다. 이들은 복용법, 부작용에 대한 정보 제공이 부족해질 위험을 강조하지만, 건기식은 이미 온라인몰을 비롯해 올리브영 같은 헬스앤뷰티(H&B) 스토어에서 널리 판매되고 있다. 또 일부 약사들은 온라인 판매 사이트를 개설해 일반의약품이나 건기식을 판매하고 있는 상황이다. 약국이 편의점 또는 온라인몰에 비해 접근성이 낮고, 24시간 운영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약사들도 알고 있는 것이다.
최근 소비자 트렌드는 편리성과 가성비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제약사의 유통이 제한되더라도 대중은 “왜 비싼 약국에서만 사야 하나”라는 물음표를 거두지 않는다. 특히 건기식은 이미 시중에서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으며, 그에 따른 부작용 우려가 적다는 사실이 입증됐다. 약사들도 시장의 흐름을 읽고 경쟁력을 높여야 할 때다.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소비자들에게 실질적 혜택을 제공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이번 갑질 논란이 직능 간 갈등을 부추기기 보다는 공정한 시장 환경을 위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계기로 이어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