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항암 병용요법이 환자의 생존율을 획기적으로 높였다는 임상 결과가 잇따라 나오고 있는 가운데 비싼 약가로 인해 치료 접근성은 떨어진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전문가들은 새로운 급여 모델을 정립해 치료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김인호 서울성모병원 종양내과 교수는 17일 국회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에서 열린 ‘병용요법의 암환자 접근성 개선을 위한 정책 토론회’에서 “최근 항암제 병용요법은 새로운 항암 연구의 트렌드로 급부상하고 있다”며 “향후 허가되는 항암제도 병용요법이 대세를 이룰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김 교수에 따르면 지난 2007년부터 2021년까지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승인한 항암제 임상시험 분야는 대부분 병용요법을 적용했다. 단독요법이 차지하는 비율은 70%에서 20%로 줄었고, 병용요법이 80%를 차지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최근 5년간 승인한 신약에서도 75%가 병용요법을 기반으로 한 항암제인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개발도 병용요법에 초점이 맞춰졌다. 영국제약산업협회(ABPI) 보고서를 보면, 영국 제약업계의 항암치료제 파이프라인 절반은 병용요법을 다뤘다.
최근 병용요법이 부각된 이유론 ‘생존율 제고’가 꼽힌다. 김 교수는 “병용요법은 암의 완치 가능성을 높였으며, 새로운 표준요법으로 주목받고 있다”며 “방광암의 경우 기존 단일요법이나 화학요법과 비교해 항체약물접합체(ADC) 신약 기반 병용요법이 생존율을 약 2배 이상 늘렸다고 보고됐다”고 설명했다. 전이성 신장암은 면역항암제 병용요법을 통해 사망 위험을 28% 줄였고, 위암은 표적치료제와 화학항암제를 같이 써서 사망 위험을 25% 낮춘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암 치료를 위한 패러다임은 변하고 있지만 급여 허가가 지연되면서 접근성은 뒤처지는 상황이다. 급여 치료제와 비급여 치료제를 함께 쓸 땐 두 치료제 모두 비급여로 사용해야 하는 문제도 발생하고 있다. 김 교수는 “글로벌 신약이 건강보험 급여로 인정되는 비율이 22%에 그치고, 급여까지 소요되는 시간은 평균 4년이 걸린다”며 “국내에서 허가된 신약 병용요법은 모두 비급여로,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약값을 부담하지 못해 치료를 포기하는 환자들이 많다”고 짚었다. 이어 “병용요법이 필요한 전이성 암환자들의 5년 생존율은 20% 미만”이라며 “신속한 보험 급여가 절실하다”라고 강조했다.
서동철 중앙대학교 약학대학 명예교수는 기존 경제성평가 체계로는 병용요법에 급여를 적용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병용치료의 가격을 개별 약물 가격으로 합산하면 비용효과성을 확보하기 쉽지 않다”며 “효과가 크더라도 평가 점수가 낮게 측정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또 “기존에 급여를 적용 받고 있던 약제가 병용요법으로 허가되면 급여 재심사를 받아야하고, 공정거래법상 두 약물의 개발사가 서로 다른 경우 담합으로 간주될 수도 있어 약가 협상이 더욱 어려운 구조”라고 꼬집었다.

의료계와 산업계는 새로운 경제성평가 기준을 정립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서 교수는 “병용요법이 환자들에게 원활히 제공되기 위해서는 이해관계자 간 협력 모델을 신속히 구축해야 한다”면서 “새로운 가격을 책정하고 급여 적용 체계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피력했다. 그러면서 “기존 평가 방식에서 벗어나 병용요법의 임상적·경제적 가치를 반영하는 ‘가치 배분 모델’을 만들고, 환자 치료 성과에 기반한 가격 조정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민지 암젠코리아 이사(한국글로벌제약협회 병용요법 TF 담당)는 “단독요법에 비해 투약기간이 연장되는 병용요법의 한계를 고려해 혁신성을 입증한 치료법엔 유연한 점증적 비용효과비(ICER) 값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며 “제약사가 다르면 암질환심의위원회의 재정분담안 협의를 생략하고, 이후 검토 단계에서 관련 규정에 따라 양사가 재정 영향이나 상한금액에 대해 논의할 수 있도록 정부가 중간 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전했다.
정부는 병용요법에 대한 대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점에 공감했다. 다만 보험 재정의 한계도 감안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박희연 보건복지부 보험약제과 사무관은 “병용요법 급여화는 약가 제도와 심사, 항암제의 치료 차수 등 다양한 문제가 얽혀 있어 개선이 어렵다”며 “최신 치료 동향에 맞춰 병용요법 급여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관련 부처와 적극 논의하고 있다”고 했다.
김국희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약제관리실장은 “쏟아져 나오는 병용요법을 모두 급여화할 것인지, 건강보험 재정은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 여러 고민이 존재한다”며 “앞으로 더 값비싼 신약이 등장할 텐데, 처음부터 병용요법을 급여화하면 2차, 3차 치료에 급여할 약제가 없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김 실장은 “건보 재정을 고려한 별도의 제도 마련을 고민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