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추란 건지 모르겠다.”
최근 만난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융당국의 엇박자 정책을 두고 이같이 탄식했다. 대출금리 인하와 가계부채 억제를 동시에 요구하면서, 시장 혼란만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달 기준금리가 인하되자 금융당국 수장들은 대출금리를 내리라고 공개 압박에 나섰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이제는 대출금리에 기준금리 인하를 반영할 때”라고 지적했고,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그동안 금리인하 효과가 경제 곳곳에 충분히 전달되지 않았다”고 거들었다. 금융당국의 으름장에 시중은행들은 주담대 가산금리를 0.1~0.3%p(포인트)씩 줄줄이 낮췄다.
금리를 낮추면 대출 수요가 늘어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경제 상식이다. 그 여파로 은행권 가계대출은 증가세로 돌아섰다. 금리를 인하한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지난달 말 기준 가계대출 잔액은 736조7519억원이다. 전월(733억6588억원) 대비 3조931억원 폭증했다.
여기에 서울 강남·서초 일대 토지거래허가구역(토허제) 해제도 기름을 부었다. 규제가 풀리자마자 주택시장은 요동치고 있다. 토허제 해제 이후 이들 지역의 주택거래량은 해제 이전 대비 50% 급증했다. 일부 아파트 거래는 신고가를 기록하는 등 일부 부동산 시장이 과열 양상을 보였다.
대출 증가 우려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오는 7월부터 시행되는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3단계를 앞두고 ‘막차 수요’가 몰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된다. 3단계 스트레스 DSR이 시행되면 대출 가능액이 줄어든다. 이미 집을 사려는 사람들 사이에선 ‘지금 아니면 못 산다’는 불안 심리가 번지고 있다. 지난해에도 당국의 스트레스 DSR 2단계 규제 연기로 인해 7~8월 대출 수요가 몰려 가계대출이 폭증한 바 있다.
대출 증가세가 심상치 않자 금융당국은 급한 불끄기에 나섰다. 대안으로는 “운용의 묘를 살린 자율관리를 해달라”며 은행권에 책임 돌리기를 택했다. 정부와 서울시도 토허제 해제 불과 한 달 만에 재지정 검토를 시사하는 등 우왕좌왕하는 모습이다.
금융당국의 오락가락 정책에 서민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금리 인하기 대출 증가세를 억제하기 위해서는 금융사별 자율 규제가 불가피해진다. 은행은 대출 관리를 강화하기 위해 차주에 대한 심사를 강화할 가능성이 크다. 정작 돈이 급하게 필요한 서민·실수요자들이 대출을 받지 못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은행에서 밀려난 차주들은 고금리의 2금융권으로 몰릴 수 있다.
서민의 이자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금리 개입과 가계부채 관리를 위한 대출 규제가 땜질식으로 처방되면서 시장 불안만 부추기는 모습이다. 금융 컨트롤타워의 역할이 무색해진다. 이제 말 한마디도 신중하게, 정책은 정교하고 일관되게 추진해야 한다. 애꿎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금융당국의 ‘신중한 고민’이 필요한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