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약 투약 혐의로 구속됐던 배우 유아인이 출연해 전전긍긍하던 ‘승부’가 마침내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
19일 서울 한강로동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영화 ‘승부’(감독 김형주)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현장에는 이병헌, 고창석, 현봉식, 문정희, 조우진, 김형주 감독이 참석했다.
‘승부’는 대한민국 최고의 바둑 레전드 조훈현(이병헌)이 제자 이창호(유아인)와의 대결에서 패한 후 타고난 승부사 기질로 다시 한번 정상에 도전하는 이야기다. 윤종빈 감독 사단이자 2017년 ‘보안관’으로 데뷔한 김형주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스스로 바둑을 알지 못한다고 털어놓은 김형주 감독은 “바둑을 몰라도 영화를 보는 데에 문제가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기본 토대에서 디벨롭(Develop)하면서 준비했다”고 연출 포인트를 밝혔다.
가장 신경 쓴 지점은 당연히 조훈현과 이창호의 대국이다. 김형주 감독은 “첫 대결은 격렬한 감정 시퀀스로 보고, 느린 호흡과 인물의 감정 위주로 진행했다. 파이널 대국은 승부에 초연해진 두 사람의 성장을 담고 싶어서 즐기는 것처럼 바둑을 둬달라고 말씀드렸다”고 설명했다.
이창호의 바둑 스승이자 전설적인 바둑 기사 조훈현 역을 맡은 이병헌은 자신의 히트작 ‘올인’을 떠올리기도 했다. 그는 “엄청난 승부들과 도전하는 마음 등 여러 가지가 ‘올인’이라는 드라마랑 비슷하더라”며 “‘올인’도 승부에 대한 이야기고, 승부사에 대한 이야기라서 일맥상통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면서 촬영했다”고 말했다.
‘승부’는 2021년 일찌감치 촬영을 마친 작품이다. 그러나 유아인의 마약 투약 혐의로 공개 여부가 불투명해졌고, 이후 플랫폼과 배급사 변경을 거쳐 겨우 관객을 만나게 됐다.
이와 관련해, 김형주 감독은 “대사처럼 지옥 같은 터널에 갇혀 있는 기분이었다”며 “그 안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막막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이제 출구 쪽에 개봉이라는 한 줄기 빛이 보여서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고 감격스럽다”고 고백했다.
이병헌에 이어 유아인까지 캐스팅한 당시에 대해서는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고 부담감도 많았다”고 돌아봤다. 그러면서 “주연 배우로서 무책임할 수도 있고 실망스러울 수도 있는 사건이었다”며 “배우이기 이전에 사회 구성원으로 잘못했고 처벌을 받는 중이라 말씀드릴 부분이 없다”고 얘기했다.

유아인과 사제 관계로 합을 맞춘 이병헌은 그와의 호흡을 묻는 말에 “기대감이 커지고 설렜었다. 이 배우들과 함께 한다면 재밌겠구나 싶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개인적으로 처음 호흡을 맞춰보는 작품이어서 궁금했는데, 생각보다 굉장히 과묵한 후배였다”고 덧붙였다.
이병헌의 절제된 연기는 이 작품에서도 돋보인다. 그러나 비교적 정적인 소재인 바둑을 다루는 영화에서 극단을 오가는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 점이 어려웠다는 전언이다. 그는 “너무나 많은 기록을 가지고 있는 국수님이 집에서 가르치며 키웠던 제자에게 패배하고 초심으로 돌아가서 정상으로 올라가는 기분은, 영화에서 대사 한 줄로 표현되지만, 실제로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라며 “이 감정을 읽어내고 연기하고 내 것으로 만드는 자체가 힘들었다”고 전했다.
남기철 역으로 특별출연한 조우진도 이병헌의 캐릭터 소화력을 치켜세웠다. 그는 “존경하는 이병헌 형님의 화려한 타이틀 방어전을 목격한 듯한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명언이 많은 작품”이라며 “훌륭한 배우님들께서 읊었을 때 보석처럼 빛나는 순간을 목격했다”고 영화의 또 다른 매력을 짚었다.
‘승부’의 승부수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실화 고증이다. 대국을 촬영할 때마다 프로 바둑 기사의 자문을 받고, 1980~1990년대 서울을 재현하기 위해 로케이션과 소품에 힘을 줬다.
특히 이병헌은 8대 2 헤어 스타일 도전도 서슴지 않았다. 그는 “분장하고 거울을 봤을 때 재밌더라”며 “시대를 이렇게 헤어스타일로 고증하니 굉장히 그럴듯해 보이더라”고 얘기했다. 이어 “현봉식(이용각 역) 씨를 봤는데 ‘졌다, 내가 졌구나’라고 생각했다”고 너스레를 떨어 웃음을 자아냈다.
여기에 바둑 기자 겸 프로 기사 천승필을 연기한 고창석, 조훈현의 아내 정미화로 분한 문정희도 작품의 높은 완성도에 힘을 보탰다. 고창석은 “전체적으로 많이 어려운 시기인데 이 시기를 견뎌내는 데에 이 영화가 조금이나마 이바지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끝으로 김형주 감독은 배우보다 작품에 집중해 달라고 당부했다. 김 감독은 “선택과 판단은 대중의 몫이니까 강요할 수 없겠지만 영화를 있는 그대로 봐주셨으면 하는 어려운 부탁을 드리고 싶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본의 아니게 영화가 세상에 나오기 전에 상처를 받게 됐는데, 연고라도 발라준다는 마음으로 따뜻하게 바라봐 달라”며 솔직한 심경을 전했다.
‘승부’는 오는 26일 개봉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