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최고의 공격수’로 불리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유창혁 9단이 칼을 뽑지 않고 부드럽게 상대를 압박하면서 정교한 끝내기로 승리를 가져갔다. 중계석에선 아쉬워했지만, 정작 유 9단은 위트 넘치는 멘트로 팬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바둑계를 호령하며 ‘메이저 세계대회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레전드 유창혁 9단이 19일 오후 9시부터 서울 성동구 한국기원 바둑TV 스튜디오에서 열린 제1회 블리츠자산운용 시니어 세계바둑오픈 8강 2경기에서 이다혜 5단에게 230수 만에 백으로 불계승을 거뒀다. 준결승에 진출한 유 9단은 류시훈 9단과 서능욱 9단 대결의 승자와 결승 티켓을 놓고 일전을 펼친다.
이날 대국이 잔잔하게 흐르면서 끝내기에 접어들자, 바둑TV에서 생중계를 진행한 이현욱 해설위원은 다소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국후 인터뷰에서 예전과 달리 요즘에는 공격 바둑을 구사하는 모습을 잘 볼 수 없다는 질문을 받은 유창혁 9단은 “오늘 보셨지만, 공격을 한다고 했는데 잘 안 됐다”며 미소 지었다.
이어 유 9단은 “예전처럼 빠른 수읽기가 안 되기 때문에, 공격을 안 하는 게 오히려 승률이 좋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중앙에서 공격이 잘 안 됐는데, 이다혜 사범이 느슨하게 두는 바람에 운이 좋아 승리했다”고 총평한 유 9단은 건너편 8강전 관전 포인트도 짚었다.
유 9단은 류시훈 9단-서능욱 9단 승자와 결승 티켓을 놓고 격돌한다. 유 9단은 “류시훈 9단은 일본에서 프로 생활을 오래 했기 때문에 모양이 좋은 정통파 기사”라고 분석한 뒤 “반면 서능욱 9단은 난전이 강하다. 평범한 진행이라면 류시훈 9단의 우세가 예상되지만, 복잡한 난전으로 간다면 서 9단도 승산이 있을 것 같다”고 전망했다. 그러면서도 “류시훈 9단은 원래 실력이 강한 선수이기도 하고, 저와 대국도 많이 했다”며 “류시훈 9단과 대국하면 재밌을 것 같다”는 바람도 밝혔다.
한편 이날 앞서 열린 8강 1경기에선 이창호 9단이 1975년생 동갑내기 양건 9단에게 승리하면서 준결승에 올랐다. 블리츠자산운용이 후원하고 한국기원이 주최·주관하는 ‘제1회 블리츠자산운용 시니어 세계 바둑 오픈’ 우승 상금은 3000만원, 준우승 상금은 1000만원이다. 제한시간은 시간누적(피셔) 방식으로 각자 10분에 추가 시간 20초로 진행하며, 시간 초과 시 경고와 함께 벌점 2집이 공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