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은행이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연 2.75%로 동결했다. 내수 침체 우려가 여전하지만, 대내외 금융 불안 요인을 고려해 속도 조절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17일 서울 중구 한은 본관에서 열린 통화정책방향(통방) 결정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현 수준인 연 2.75%로 동결했다고 밝혔다. 앞서 금통위는 지난해 10월과 11월, 두 차례 연속 기준금리를 인하한 데 이어 올해 2월에도 추가로 금리를 낮춘 바 있다. 계엄·탄핵 정국 속에서 내수가 극도로 위축되고, 미국의 관세 정책 여파로 성장률이 1% 중반에 머물 것으로 예상되자 금리 인하 카드로 대응했다.
경기 둔화 우려는 여전하지만, 이번 동결 결정에는 환율 등 복합적인 변수들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금통위는 이날 통방 의결문에서 “미국 관세정책 변화, 정부 경기부양책 추진 등에 따른 전망경로의 불확실성이 크고, 환율의 높은 변동성과 가계대출 흐름도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는 만큼 현재의 기준금리 수준을 유지하면서 대내외 여건 변화를 점검해 나가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미국 관세정책에 따른 환율 불안정성이 금리 인하의 가장 큰 걸림돌로 지목된다. 최근 달러지수는 100선대로 3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내려왔지만 원·달러는 여전히 1420원대에 머무르고 있다. 국내 정치 불확실성에 미국 트럼프 정부의 관세정책 충격이 겹치면서 환율 상승세가 좀처럼 꺾이지 않고 있다. 특히 미·중 간 관세 전쟁이 격화하면서 환율이 하루에 30원 이상 급등락하는 등 높은 변동성이 지속되고 있다. 한은 입장에서는 금리 인하에 따른 환율 리스크를 감당하기엔 부담이 큰 상황이다.
부동산 시장 가격과 가계부채 동향도 이번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지난 3월 서울 일부 지역의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 이후 집값이 반등세를 보이며 6개월 만에 최대 상승폭을 기록했다. 한은 역시 관련 대출 영향이 2분기에 본격 반영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가계부채 추이는 한은이 통화정책을 결정할 때 주요하게 보는 지표 중 하나다. 주택거래량 증가는 1~2개월 시차를 두고 가계부채 증가에 영향을 미쳐왔다.
불투명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정책 경로도 신중론에 힘을 보탰다. 미국 경제 둔화 조짐에 시장은 연준의 금리 인하를 기대하고 있지만, 트럼프발 인플레이션 우려에 파월 의장은 금리 인하에 신중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행이 선제적으로 금리를 내릴 경우, 금리 차 확대에 따른 외국인 자금 이탈과 환율 불안을 초래할 수 있다.
관심은 향후 금리 인하 시점이다. 한국은행이 다음 달 수정 경제전망에서 관세 충격을 반영해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현행 1.5%에서 크게 낮춘다면, 5월 금리 인하 가능성도 점쳐진다. 반면 금융시장 불안정이 장기화될 경우, 한은이 한 차례 더 숨 고르기를 택하고 7월 금통위에서 금리를 내릴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