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으로의 초대] 최금희의 그림 읽기(68)

[인문학으로의 초대] 최금희의 그림 읽기(68)

빈센트의<꽃 피는 아몬드 나무>와<하얀 과수원>
8월 11일부터 하나투어와 '13일간 유럽 예술여행'

기사승인 2025-05-12 11:13:12 업데이트 2025-05-12 13:30:24
빈센트 반 고흐, 꽃 피는 아몬드 나무, 1890년2월, 73.3x 92.4cm, 캔버스에 유채, 반 고흐 미술관 

“엊그제부터 너희 부부 침실에 걸 수 있는 그림을 하나 그리기 시작 했어.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꽃이 핀 아몬드 나뭇가지가 있는 그림이지. 평온한 마음과 안정적인 터치로 그렸어.”

아몬드 나무는 산수유처럼 이른 봄에 꽃을 피워 새로운 삶의 상징이다. 우끼요에, 일본판화에서주제와 굵은 윤곽선 그리고 나무의 위치 등 영향을 받았다. 

빈센트에게 있어 예술은 단순한 창작이 아니라, 가족과 삶에 대한 사랑을 담아내는 행위였다. 그의 동생 테오는 첫 아들의 탄생을 기념하며 형의 이름을 물려주었다. 형 빈센트처럼 단호하고 용감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긴 결정이었다. 그 마음은 곧 한 폭의 그림 속에 형상화되었고,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꽃 피는 아몬드 나무>이다.

밝은 하늘 아래 우아하게 피어난 아몬드 나무는 희망과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이 그림은 단순한 예술 작품이 아니라, 빈센트가 조카를 위해 남긴 따뜻한 축복이었다. 테오와 빈센트의 우애와 가족에 대한 사랑이 한 점의 그림 속에 영원히 새겨진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반 고흐 가족에게도 특별했다. 테오의 아내 요한나는 빈센트의 작품을 한 곳에서 전시할 날을 꿈꾸었고, 그가 남긴 모든 작품을 국가에 기증할 뜻을 품었다. 그녀의 노력 끝에 1962년 빈센트 빌럼은 모든 작품을 반 고흐 재단에 양도하였고, 1973년 공식적으로개관했다.

빈센트 빌럼에게 가장 소중했던 작품은 바로 <꽃피는 아몬드 나무>였다. 가족의 깊은 사랑이 서려 있는 이 그림은 미술관에 기증되었고, 오늘날 나무 시리즈 중에서도 가장 사랑받는 작품으로 남았다.

빈센트의 그림은 단순한 예술 그 이상이었다. 그의 작품은 사랑이었고, 가족의 기억이었으며, 새롭게 피어나는 희망이었다. 그리고 그 따뜻한 마음은 지금도 <꽃 피는 아몬드 나무>를 바라보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있다. 신선한 하늘색을 배경으로 피어나는 아몬드 나무의 생명력이 드레스나 에코백을 만들어도 잘 어울리고 세련되어 인기가 아주 많다.

무엇보다도 이 그림은 ‘생에 대한 찬미’이자 갑작스럽게 찾아온 ‘봄에 대한 송가’이다. 빈센트가 가장 행복한 순간에 그려서 테오는 침실이 아니라 거실 피아노 위에 걸어 놓았다. 1890년5월 파리에 온 빈센트는 이 작품을 보고 연작으로 그리고 싶었지만 몸이 좋지 않아 시기를 놓쳤다. 

빈센트 반 고흐, 하얀 과수원, 1888, 캔버스에 유채, 60x81cm, 반 고흐 미술관 

“오늘 아침, 꽃이 핀 자두나무가 있는 과수원을 그리고 있는데, 갑자기 멋진 바람이 불어오더니 다른 곳에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광경을 보았다. 그럴 때면 작고 하얀 꽃잎들이 햇빛을 받아 불꽃처럼 반짝이곤 한다. 그 장면이 어찌나 아름답던지! 순간순간 땅이 진동하는 걸 바라볼 각오를 하고 그림을 그렸다.”  

빈센트 반 고흐는 단순한 화가가 아니다. 그는 시인이며, 그의 붓질은 시어보다 더 깊은 감정을 담아낸다. 보들레르의 산문시가 철학적 사고를 자극한다면, 반 고흐의 그림은 직관적이고 순수한 감성으로 우리를 휘감는다. 그의 붓끝에서 피어난 풍경은 난해한 기교 없이도 꽃잎 하나하나의 떨림을 섬세히 전하는 힘을 지닌다.

영국 드라마 닥터 후 시즌5의 10화에는 반 고흐가 등장한다. 그가 오르세 미술관에서 자신의 작품을 바라보는 장면은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렸다. 사방에 걸린 자신의 그림, 그 앞에서 감상하는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쏟아지는 도슨트의 극찬.

살아생전 듣지 못한 그 평가를 들으며 감격한 반 고흐의 눈물은, 단순한 드라마의 연출이 아닌, 예술가로서의 갈망과 인간적인 소망을 대변하는 모습이었다.

빈센트는 에밀 베르나르에게 보내는 편지에서“두껍게 칠해진 흰색과 푸른색 물감이 강렬한 에너지를 발산하며, 눈부신 하늘을 채우고 있다”고 표현했다. 그리고 테오에게는 '깔끔하고 차가운 흰색으로' 액자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할 만큼 이 작품에 대한 만족감을 드러냈다. 그는 이 그림을 앙뎅팡당전에 출품하고 싶을 정도로 깊은 애정을 보였다.

빈센트는 과수원 연작에 몰입하며 다양한 구성을 탐구했다. 나무는 생명의 순환과 자연의 힘을 표현하는 데 적합한 소재였다. 땅에 뿌리를 내리고 하늘을 향해 가지를 뻗으며 끊임없이 베푸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 연작은 빛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보여주며, 이는 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인상주의가 빛을 통해 색채의 순간적인 변화를 포착했다면, 빈센트는 강렬한 원색을 대담하게 사용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색이 먼지로 인해 흐려지거나 공기와 반응해 산화되며 부드러워지기 때문이었다.

봄이 오면 기억 속 과수원이 다시 피어난다. 하얗게 흐드러진 꽃들이 마치 꿈속의 풍경처럼 과수원을 덮고, 그 아래에서 시간은 느리게 흐른다. 내 기억 속의 나무는 사과나무였고, 그 나무는 봄마다 할아버지의 과수원을 온통 하얗게 물들이곤 했다.

이번 주말, 봄비가 내린다고 한다. 기상캐스터의 예보를 들으며 문득 떠오른다. 비가 내리고 나면 꽃잎은 눈처럼 흩날릴 것이다. 나뭇가지에서 힘겹게 매달려 있던 작은 꽃잎들이 하나 둘 바람에 실려 나가고, 우리는 또 한 해를 보내야만 한다.


최금희 작가는 미술에 대한 열정으로 전 세계 미술관과 박물관을 답사하며 수집한 방대한 자료와 직접 촬영한 사진을 가지고 미술 사조, 동료 화가, 사랑 등 숨겨진 이야기를 문학, 영화, 역사, 음악을 바탕으로 소개할 예정이다. 현재 서울시50플러스센터 등에서 서양미술사를 강의하고 있다. 

<작가의 말>

오는 8월 11일 하나투어에서는 제가 도슨트로 나서 '11박13일의 유럽 예술여행'을 떠납니다. 이 여정은 단순한 미술 감상이 아니라, 반 고흐가 살아 숨 쉬던 공간을 체험하며 그의 세계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특별한 순간이 될 것입니다. 그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그의 붓질을 따라가며, 그가 남긴 빛과 색의 유산을 온전히 마주하는 길 위에서 우리는 깊은 감동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라익스 뮤지엄.

암스테르담 라익스 뮤지엄(국립 박물관)=유럽의 거리 위로 반 고흐의 붓질이 살아 숨 쉬는 여정을 떠납니다. 그의 영혼이 깃든 색채를 따라 암스테르담에서 시작해 파리를 거쳐 아를의 빛 속을 헤매고, 마침내 오베르쉬르우아르의 고요한 풍경 속에서 그의 마지막 흔적을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37년의 삶을 화폭에 담아낸900점의 작품 중400여 점을 반 고흐 미술관과 크롤뢰 뮐러 미술관 그리고 오르세 미술관에서 마주하는 순간, 그의 열정과 고독, 그리고 끝없는 탐색이 선명하게 다가올 것입니다.

오르베 교회.

오베르 교회=이 여행은 단순한 예술 감상이 아니라, 반 고흐의 삶과 영혼을 온전히 마주하는 길입니다. 아를에서는 황금빛 해바라기와 깊은 밤을 밝힌 카페의 따뜻한 불빛을 통해 그의 열정과 생동감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오베르에서는 그의 마지막 순간까지 붓을 놓지 않았던 그 치열한 흔적을 마주하게 될 겁니다. 

밤의 카페.

밤의 카페테라스, 크롤뢰 뮐러 미술관=
특히<까마귀 나는 밀밭>과<나무 뿌리> 같은 작품을 직접 보게 된다면, 그의 감정과 삶의 무게를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크롤뢰 뮐러에서부터 반 고흐 미술관까지 이어지는<감자 먹는 사람들>의 변화 또한, 그의 초기에서 후기까지 예술적 발전과 색채의 변화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빛과 색채를 따라 반 고흐의 발자취를 좇는 여정이 시작됩니다. 아를의 따스한 햇살 아래 펼쳐진<해바라기>의 황금빛과, 깊은 밤을 밝히는<밤의 카페테라스>의 눈부신 불빛 속에서 그의 열정과 열망을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랑그루아 다리>를 지나 아를의 골목과 요양원을 거닐며, 그의 붓 끝에서 피어난 생동하는 풍경을 그대로 느낄 수 있겠죠.

오베르에서는 그의 마지막 나날을 함께 걸으며<닥터 가셰의 초상>, <오베르 교회>, 그리고 운명적인<까마귀 나는 밀밭>을 통해 그의 내면 깊숙한 곳까지 들여다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의 붓이 그려낸 마지막 흔적인<나무 뿌리> 앞에 서는 순간, 그가 남긴 삶의 조각이 더 선명하게 다가올 것입니다.


홍석원 기자
001hong@kukinews.com
홍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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