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쇼 사기’가 연일 진화하고 있다. 단순 예약 부도를 넘어, 대선을 앞두고 정치인 보좌진이나 방송팀을 사칭해 자영업자를 속이는 수법까지 등장했다. 자영업자에게 믿도록 유도하고, 물품을 준비하면 나타나지 않고 잠적하는 형태다.
충남 천안의 한 음식점은 지난달 문진석 국회의원의 보좌진을 사칭한 사기범에게 속아 1000만원 넘는 손해를 입었다. 피해를 본 업체만 무려 9곳에 달한다.
피해 업체들 상당수는 대선 국면이라는 시기적 특수성 탓에 실제 의원실인지 의심하지 못했다고 한다. 문 의원실은 해당 사기 행위자를 형법상 사기 및 업무방해 혐의로 고발할 예정이다.
사기범의 수법은 교묘하다. 2단계 속임 구조를 갖고 있다. 일단 피해자가 운영하는 업체 물품에 대한 단체 주문 또는 예약(1단계)하고, 피해 업체에서 취급하지 않는 물건을 대신 구매해 달라는 요구(2단계)다.
“지금 준비하지 않으면 일정이 취소된다”, “내일 촬영이라 급하다”는 식의 말로 판단 여지를 줄이는 점에서, 단순한 예약 부도를 넘어선 실질적 금전 피해로 번지고 있다.
이 같은 수법은 최근 전북 군산, 경기 수원 등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특히 유명인이나 정당 관계자를 사칭해 급박한 상황을 연출하고, 신뢰를 얻는 점이 특징이다. 자영업자 입장에서는 예약을 잡기 위해 다른 손님을 거절한 뒤 손해만 떠안는 구조다.
이러한 여파로 자영자들은 경계심을 높이고 있다. 강원도에서 분식집을 운영하는 A씨는 “(손님들이) 약속을 잘 지키는 경우가 많았어서 예약금을 안 걸었지만, 노쇼를 몇 번 겪어보니 무조건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며 “시간이랑 돈을 날려도 따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일부 업주는 고가 품목을 요구하는 고객에 대해서는 아예 응대하지 않기로 했고, 온라인 커뮤니티에 의심스러운 번호나 예약 사례를 공유하면서, 자체 대응에 나서기도 했다.
한국외식산업연구원의 지난해 11월 조사에 따르면, 외식업자 78.3%가 최근 1년간 노쇼를 경험했고, 이 가운데 85.5%는 아예 보상조차 요구하지 못했다. 피해를 감수하는 일이 일상이 된 셈이다.
또 뚜렷한 제도적 방어 장치가 없는 현실도 자영업자들의 피해를 키우고 있다. 광화문 인근에서 한식집을 운영하는 B씨는 “사전 결제나 예약금 제도를 도입하고 싶어도 보증금을 부담스러워하는 손님들이 많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예약은 SNS, 오픈채팅, 전화 등 익명성 기반 채널을 통해 이뤄져 추후 피해보상 청구조차 쉽지 않다.
이에 공정거래위원회는 업종별 예약 위약금 기준을 새로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현재는 결제금액의 10%까지만 위약금을 받을 수 있어 고급 식재료를 사용하는 업종은 사실상 무방비 상태였는데 개선하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드러난 것이다.
전문가들은 단순 위약금 제도만으로는 부족하다며 근본적 구조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총금액의 15% 정도를 예약금으로 받고, 재료 준비 전 등 일정 시간 전에는 환불해 주는 방식이 가장 현실적인 모델”이라며 “‘노쇼’가 자영업자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라는 것을 잘 알 수 있도록 소비자 인식 개선 노력도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