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상 환경 악화, 경기침체 등 여파에 따라 철강, 석유화학 등 중후장대 산업의 사업재편이 본격화하고 있다. 기존 논의 단계에서 점차 실행 단계로 넘어가면서 업계 전반으로 재편 움직임이 확산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14일 철강업계에 따르면, 현대제철은 포항2공장 무기한 휴업에 이어 내년 10월까지 1공장 중기사업부 최종 매각을 목표로 설비 이설 및 전환배치 등 세부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고 노동조합에 전달했다고 한다. 그간 대주KC그룹을 상대로 중기사업부 매각 물밑작업이 어느 정도 추진돼 온 것으로 알려져 왔지만, 구체적인 일정까지 공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측은 오는 11월까지만 생산을 지속하고 내년 6월 설비 이설 및 관련 승인 절차를 추진할 예정이다. 특히 내년 6월까지 행정 인허가 절차를 마친 뒤 이후 3개월간은 재고 이관, 안정화 기간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중기사업부는 굴삭기 부품인 무한궤도를 소재부터 완제품까지 일괄 생산하는 국내 유일 설비로 약 39년간 운영돼 왔다. 포항1공장 중기사업부 생산 규모는 연간 20만톤으로, 국내에서 무한궤도를 생산하는 곳은 중소업체 등을 제외하면 현대제철이 유일하다.
그러나 중국산 저가 제품 공세 등 영향으로 지난해 기준 중기 판매량이 2021년 대비 65%가량 급감한 데다, 철강업 전반에 불황이 지속하면서 ‘선택과 집중’을 위해 매각 카드를 꺼내 들어야만 했다.
현대제철은 사업부 매각과 함께 전환배치에 주력해 근로자의 고용 보장에 힘쓴다는 계획이다. 김판근 현대제철 포항공장장은 앞서 12일 임직원 대상 담화문을 통해 “우리 회사, 특히 포항공장이 창사 이래 최대의 위기를 겪고 있다”며 “2공장 폐쇄 및 중기사업부 매각은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결정”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직원들의 고용 보장을 최우선 가치로 삼고, 구성원의 인력 재배치와 고충 과정에서 발생하는 어려움을 최소화하며 지원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덧붙였다.

석유화학업계에선 HD현대그룹과 롯데케미칼이 충남 대산석유화학단지에서 가동 중인 나프타분해설비(NCC)를 합치는 빅딜에 나섰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작한 ‘석유화학업계 자율적 구조개편 방안’의 일환으로, 양사는 구체적 내용이 확정된 바 없다고 밝혔지만 업계에선 석화 구조개편의 신호탄으로 보고 있다.
양사는 HD현대오일뱅크가 지분 60%, 롯데케미칼이 40%를 보유한 합작사 ‘HD현대케미칼’을 통해 연간 85만톤 규모의 에틸렌 생산 설비를 운영 중이다. 이와 별개로 롯데케미칼은 대산단지에서 연간 110만톤의 에틸렌을 생산하고 있다.
NCC에서 원유를 정제해 발생한 나프타(Naphtha)를 고온에서 다시 분해해 얻어지는 에틸렌, 프로필렌 등은 석화 기초 원료로서 플라스틱 등 범용 제품으로 생산돼 왔다. 그러나 석화업계 역시 중국산 저가 제품 공급과잉에 직면했고, 스페셜티(고부가제품) 제품 양산 전환이 불가피해졌다.
이번 빅딜에 따라 롯데케미칼이 대산단지에 보유한 NCC 설비를 HD현대케미칼에 넘기고, HD현대오일뱅크가 현금 혹은 현물을 추가로 출자해 설비를 하나의 법인으로 합치는 방안이 유력한 것으로 전해진다. 통합 이후에는 시설 축소 및 중복 인력 업무 재조정 등 효율화 작업이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 자율적 구조개편 방안과 더불어 지난해 12월 정부가 발표한 ‘석유화학산업 경쟁력 제고 방안’의 후속 대책이 새 정부에서 나올 경우 석화산업단지를 중심으로 사업재편이 속도를 낼 전망이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지난 대선 유세 기간 당시 “남부지방 산업벨트, 특히 석유화학이 모두 나빠지고 있다”며 “정부가 비상한 각오로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국내 주요 석화산단으로는 여수, 대산, 울산이 있다. 에틸렌 기준 연간 627만톤 생산능력을 갖춘 여수단지엔 롯데케미칼, LG화학, 여천NCC, GS칼텍스 등이 있으며, 연 477만톤 생산능력을 보유한 대산단지엔 롯데케미칼, LG화학, 한화토탈 등이, 연 176만톤 생산능력을 갖고 있는 울산단지엔 대한유화, SK지오센트릭 등이 소재해 있다.
석화업계 한 관계자는 “중복 설비를 보유한 석화기업뿐만 아니라 산업단지를 중심으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는 예전부터 형성된 상황”이라며 “이번 자율 구조개편 방안과 함께 하반기 중 정부 주도 후속 조치가 나온다면 업계 내 통폐합이 더욱 본격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