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비투명세포 신장암 환자들은 치료제 개발이 진전됐음에도 여전히 제한된 치료 옵션에 놓여 있다. 의료진과 환자단체는 “현실적 치료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박인근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교수는 지난 17일 서울 상연재에서 열린 ‘세계 신장암의 날’ 기념 미디어 세미나를 통해 “신장암은 국내 발병률 상위 10위권 안에 드는 질환으로 비교적 흔한 암에 속하지만 국내에서는 2차 치료제나 비투명세포 신장암 치료 옵션이 제한적이며 국제적 치료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체 신장암 중 80~85%는 투명세포 신장암이다. 나머지 10~15%가 비투명세포 신장암이다. 비투명세포 신장암은 자각 증상이 거의 없어 진단이 늦고, 다른 장기로 전이되거나 동시다발적으로 종양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아 치료 반응이 낮다. 전체 신장암 중 가장 많은 90%가량을 차지하는 신세포암은 신장에서 발생하는 원발성 악성 종양이다. 주로 폐, 림프절, 뼈, 간 등으로 전이되며 초기에는 증상이 없어 발견이 늦고, 증상이 나타날 땐 이미 중증인 사례가 많다.
이러한 특성에도 불구하고 현재 국내에서 비투명세포 신장암에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되는 약제는 템시롤리무스, 수니티닙, 파조파닙, 알데스류킨 등 4종에 불과하다. 이 중 일부는 국제 가이드라인에서 더 이상 권고하지 않는 구약제다.
최신 치료 방식인 병용요법의 활용도 국내에서는 제한적이다. 미국종합암네트워크(NCCN), 유럽임상종양학회(ESMO), 유럽비뇨기과학회(EAU) 등의 국제 가이드라인은 2차 치료나 비투명세포 신장암 치료에서 카보잔티닙과 면역항암제 또는 표적항암제를 병용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반면 국내에서는 카보잔티닙이 투명세포 신장암 1차 치료에 한해 급여가 적용되며 2차 치료에는 일부 비급여인 상태다. 비투명세포 신장암은 1차와 2차 모두 급여 적용이 어렵다. 지난해 중증암질환심의위원회, 올해 초 약제급여평가위원회에서 급여 확대의 필요성이 논의됐지만, 지난달 입센코리아와 국민건강보험공단의 협상이 결렬되면서 무산됐다.
박 교수는 “면역항암제와 표적치료제의 발전에 따라 치료 효과는 향상됐지만, 실제 임상에서는 최신 치료법 적용이 어려운 상황”이라며 “환자에게 최선의 치료를 제공할 수 있도록 급여 체계와 의료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환자단체는 현실적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백진영 한국신장암환우회 대표는 “해외 가이드라인이 변화하고 있지만, 국내에서 카보잔티닙은 티로신키나제 억제제(TKI) 실패 환자에게 제한적으로 급여를 적용한다”며 “1차 치료에서 면역항암제를 사용한 환자들은 급여 대상에서 배제돼 다른 옵션을 선택할 여지가 좁다”고 말했다. 이어 “보다 유연하고 폭넓은 치료제 선택권이 보장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심정환 입센코리아 항암제·희귀질환사업부 전무는 “1차 치료 이후 카보잔티닙을 기다리는 환자와 의료진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급여 기준 개선을 목표로 준비 중”이라며 “보험 재정에 부담을 주지 않는 방향으로 급여 확대 절차를 다시 추진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더 많은 환자가 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