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의 한 민간 아파트 단지를 둘러싸고 관할 지자체인 부산진구청과 입주민 간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입대회)는 “지자체가 법적 권한을 과도하게 행사하며 주민 자치 기능을 침해하고 있다”고 주장한 반면, 구청은 “법령에 따른 정당한 절차”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구청이 주민들에게 “감사 거부 시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취지의 문서를 보낸 것으로 알려져 사태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감사를 둘러싼 갈등… "회계 비리도 아닌데 왜?"
논란은 부산 부산진구 부암동에 위치한 서면동문굿모닝힐 아파트의 입대회 운영을 놓고 불거졌다. 부산진구청은 지난 4월 해당 아파트에 ‘특별감사’를 예고하고 공무원 5명을 현장에 파견했다. 이에 아파트 측은 “회계 부정 등 중대한 법 위반이 없는 상황에서 감사는 명백한 과잉 개입”이라며 반발했다.
특히 구청이 당초 주민 동의를 바탕으로 감사를 검토한다고 했다가, 이후에는 "직권 조사도 가능하다"며 감사 근거를 번복해 주민들의 불신을 키웠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입대회 측은 "구청의 감사 시도는 일방적인 행정지도에 가깝고, 아파트 자치 규약조차 무시했다"며 "일부 공무원이 공동주택관리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주민 간 갈등을 부추겼다"고 주장했다.
"선관위 선출 공고도 간섭"… 평일만 공고하라 강요?
갈등은 입주민대표회의를 구성하기 위한 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 선출 과정에서 본격화됐다. 아파트는 자체 관리규약에 따라 금·토·일 사흘간 공고를 냈지만, 부산진구청 건축관리과 임수민 주무관은 “주말은 법적으로 안 된다”며 평일만 포함한 재공고를 강요했다.
관리소장이 이에 대한 법적 근거를 묻자, 해당 공무원은 “공동주택관리법상 주말 선거 공고는 불가하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아파트 측은 평일로 재공고를 했지만, 그 사이 일부 주민이 소문을 퍼뜨리며 갈등이 증폭됐고, 선출된 선관위원 4명이 일괄 사퇴하는 사태로 이어졌다.
입대회 J회장은 남은 선관위 구성을 위해 사퇴 철회를 요청했으나, 부산진구청은 "선관위 사직서는 즉시 수리돼야 한다"며 오히려 회장의 조치가 위법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이 같은 내용이 공문 형태로 아파트 게시판에 공고되며 입주민 간 갈등은 극단으로 치달았다.
한국아파트협회는 19일 부산진구청에 공식 문서를 보내 "해당 공무원들의 법령 오남용과 갑질 행태에 대해 철저히 조사하라"고 촉구했다. 협회 측은 "부산시 조례에 따르면 선관위 사퇴는 즉시 수리토록 변경됐지만, 해당 아파트는 자체 규약을 아직 개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존 규정을 우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부산시 규약은 "2024년 10월 이전까지는 각 단지의 기존 관리규약에 따라 사퇴 수리 방식을 따르도록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구청 측은 이 같은 전환 규정은 고려하지 않은 채, 아파트 측 결정은 '불법' 이라고 단정 지었다.
협회는 "구청이 규약 해석의 자율성을 무시하고 일방적 해석을 주민에게 강제했다"며 "이는 행정권의 편의적 적용이자 민간 공동체 자율성에 대한 중대한 침해"라고 비판했다.
이번 사안은 단순한 단지 내 갈등을 넘어, 지방자치단체의 공동주택 감독권과 입주민 자치회 권한이 충돌하는 구조적 문제로 해석된다.
입주민 A씨는 “지자체가 동대표 선출 일정까지 간섭하고, 의견을 따르지 않으면 형사처벌 운운하는 건 주민 자치에 대한 억압”이라며 “사실상 자치회 위에 군림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반면 부산진구청은 “감사는 정당한 행정 절차”라며 “민원 다발과 갈등 상황을 고려한 조치”라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