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APEC’ 겨냥 테러 가능성…“탄저균 대응체계 강화 필요”

‘경주 APEC’ 겨냥 테러 가능성…“탄저균 대응체계 강화 필요”

호흡기, 소화기, 피부 등 거의 모든 경로로 감염
“다중이용시설 등 밀집 장소 주요 테러 대상 될 것”
‘배리트락스’ 품목허가…5만명분 백신 비축 예정
“실제 테러 시 대처 프로세스 구축 중요”

기사승인 2025-07-02 06:00:09
지난해 10월23일 세종기동단 연경장에서 진행한 ‘2024 대테러 종합훈련’ 모습. 세종경찰청 제공

오는 10월 말부터 11월 초까지 경북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보안 당국이 테러 가능성을 경고했다. 탄저균 같은 생화학무기를 이용한 테러 위협에 대비해 백신·치료제를 충분히 구비하고, 실제 테러가 일어났을 때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일 질병관리청 등에 따르면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제1급 감염병으로 분류돼 있는 탄저균은 공기 중에 살포되면 눈에 보이지 않으며 냄새도 없어 인지와 대응이 어렵다. 탄저균에 의한 탄저병은 호흡기, 소화기, 피부 등 거의 모든 경로로 감염된다. 호흡기를 통한 감염 시 치사율이 90%에 달하고, 소화기 감염은 25~60%, 피부 감염은 20%에 이를 정도로 위험성이 높다. 탄저균 100㎏을 공기 중에 살포하면 최대 300만명의 사망자가 발생할 수 있다는 연구도 있다. 흙 속에서 8~10년가량 생존할 정도로 생명력도 강해 탄저균에 감염된 동물의 시체와 볏짚 등은 소각해야 한다.

한국도 테러 위협으로부터 안전하지 않다. 지난 3월 국정원은 ‘2024년 테러정세·2025년 전망’ 보고서를 통해 APEC 기간 중 다수의 정상이 한국을 찾는 만큼 국제 테러 단체들이 이들을 노리고 테러 공격을 가할 수 있다고 짚었다. 전 세계에서 테러 사건은 증가 추세다. 국정원에 따르면 2024년 전 세계에서 발생한 테러 사건은 1337건으로 2023년 1182건과 비교해 13.1%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테러로 인한 사상자 수도 1만3426명으로 2023년 9820명에서 36.7% 늘었다.

국정원은 “APEC에 다수의 해외 정상들이 참석할 것으로 예상되는 바 전 세계가 이목을 집중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이에 따른 다양한 테러·위해 가능성이 제기된다”며 “특히 아시아·태평양 국가 정상들을 노린 국제 테러 단체들의 공격 위협 등이 예상된다”고 전했다. 이어 “국제 안보 변동성 확대로 테러 세력들의 활동이 강화되면서 특히 다중이용시설 및 운집 장소가 주요 테러 대상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 세계에서 탄저균 관련 사건·사고는 꾸준히 발생해 왔다. 지난 1993년 일본에선 사이비 종교단체인 옴진리교가 도쿄에서 고압 분무기로 탄저균을 살포해 역한 악취로 시민들이 고생한 ‘카메이도 악취 사건’이 있었다. 2001년 미국에선 우편물을 통한 생물 테러가 발생해 22명이 감염되고 5명이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또 2015년엔 미국 군연구소에서 살아있는 탄저균 샘플을 미국 내 다른 연구기관으로 보내는 일이 있었는데, 주한 미군 오산 공군기지에도 이 샘플이 배달되는 사고가 발생해 한바탕 소란이 일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탄저병에 감염돼 목숨을 잃은 사례가 있다. 1994년 경북 경주에서 탄저병에 걸린 소를 주민들이 섭취해 23명이 감염되고 이 중 3명이 사망했다. 작년엔 북한이 계속 날려 보낸 ‘오물 풍선’이 생물 테러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하며 긴장감이 높아졌다.

질병관리청 전경. 쿠키뉴스 자료사진

탄저균은 백신과 항생제로 예방·치료할 수 있다. 현재 미국과 영국, 중국 등 일부 국가는 자국민과 정규군 보호를 목적으로 자체 백신을 보유하고 있다. 미국은 성인 인구의 최대 7.5%의 탄저 백신 물량을 공급하고 있으며, 영국은 성인 인구의 3.7% 물량을 확보하고 있다.

한국은 최근 국산 탄저 백신 개발에 성공했다. 질병청과 GC녹십자는 공동으로 탄저 백신 ‘배리트락스’를 개발해 지난 4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품목허가를 받았다. 배리트락스는 2종의 탄저균 독소인자를 세포로 전달하는 방어항원(PA) 단백질을 유전자 재조합 기술을 이용해 만들어 낸 백신이다. 질병청은 배리트락스의 비임상 효력시험 수행 작업에 들어갔다. 이를 통해 탄저포자 흡입 노출 방어 능력과 접종 후 시간 경과에 따른 면역원성 변화 등을 평가할 계획이다.

이번 품목허가에 따라 기존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탄저 백신이 국산으로 대체됐다. 문제는 충분한 수량을 비축하기 위한 예산 확보다. 현재 정부가 초동 대응 및 일반 국민 보호를 위해 보유하고 있는 탄저 백신은 1000명 분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올해 유효기한이 만료될 예정이다. 질병청은 올해 48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5만명 분의 탄저 백신을 비축하기로 했다. 이에 더해 1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한 정부 2차 추가경정예산안(추경안) 중 ‘생물테러 대비 대응 역량 강화 사업’의 탄저 백신 구입비가 40억1500만원이 증액됐다.

전문가들은 생물 테러 대비를 위한 백신·치료제 확보와 함께 테러 대처 능력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김광민 대전선병원 진료부장(감염내과 전문의)은 “백신은 탄저균 노출 전 예방에 한해 효과적이어서 실제 탄저균 테러가 일어난 상황에선 백신의 역할이 별로 없다”며 “그보다 중요한 것은 테러가 일어났을 때 큰 혼란 없이 대처할 수 있는 프로세스를 구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탄저는 치사율이 높긴 하지만 백신 외에도 치료제(항생제)가 충분한 상황”이라며 “질병청은 2023년부터 생물테러 포럼을 운영하며 생화학무기 대량 살포와 관련된 시나리오 작성과 대응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탄저균은 조기 감지가 중요하다”면서 “빠르게 노출자에게 약제를 공급해 복용하도록 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했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신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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